2010년 1월 18일 월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2:1-1

@hanbaek
예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시는 장면입니다. 네사람이 중풍병자를 메고 에수께로 갔지만 사람들이 많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들은 지붕을 뚷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립니다. 이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그들의 행동엔 문제가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붕을 뚫은 일이 어이가 없어 보입니다. 중풍병은 금방 죽는 위급한 병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많아서 문을 들어 갈 수 없다고 해도 그저 기다리면 언젠가 사람들은 돌아갈 것입니다. 그 때 치료를 받아도 됩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다리거나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밀치고 들어가는 대신 남의 지붕을 뚫는 방법을 생각하고 실행합니다. 상식적인 사람들로는 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이스라엘의 지붕이 쉽게 뚫리는 속성이 있다고 해도 집 주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거나 설교하시는 예수님이나 듣는 회중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가장 몰상식한 행동입니다. 또한 중풍병자를 달아 내리는 행동입니다. 중풍병자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을 달아 내리다가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중풍병자를 영원히 보내는 수가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 틈에서 실수라도 해서 머리부터 떨어지거나 하면 정말로 위험한 일입니다. 이 또한 보통 사람들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이상한 일을 환자의 친구들을 쉽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 큐티하시는 분들 중에서 친구의 입장이었다면 지붕을 뚫고 달아 내리는게 옳은 결정이라는 분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우리의 생각을 폴로 진행해 보겠습니다. (http://twtpoll.com/kqavdh) 링크를 클릭하시고 폴에 참여해 주세요 ^^ 제가 보기엔 몰상식해 보이는 이런 행동은 한명도 아니고 네명이서 동시에 시행했다는 사실에 저는 놀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로 인해 기적이 생겨나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때나 의견을 조정할 때, 나의 눈으로 옳지 않으면 반대하고 움직이려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기적은 조금 엉뚱한 일을 해도 나와는 생각이 다르게 시작해도 함께하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기적은 우리가 연대하여 손에 손잡고 하나되어 나아갈 때 우리 안에서 또 다시 체험됩니다. 이게 본문이 주는 진정한 기적의 의미입니다. 엉뚱해 보이고 몰상식해 보이는 일을 한 친구들이지만 친구를 향한 사랑으로 그들이 한 마음이 되고 한 행동할 때에 주님은 이미 치유의 기적을 허락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나와 생각이 다른 지체들과 나를 낮추어 같은 마음을 품고 협력하여 나아감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limeunuk
사람은 늘 한계상황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네 사람은 무리들 때문에 예수님께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의 선택은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한계를 창조적인 생각으로 이어가느냐 아니면 포기하느냐라는 갈림길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네 사람은 자신들이 처한 한계 상황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지붕을 뚫는 것으로 예수님께 접근을 한 것입니다.
@limeunuk
세상 사람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엄청난 노력과 창의성을 발휘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교회만은 이상하게도 예전의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향이 농후합니다. 21세기 한국 아니면 이민 사회라는 한계상황에서 좀더 창의적으로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저와 우리 모든 교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ukjoseph '네 친구가 지붕을 뜯어 중풍병자의 누운상을 예수께로 달아내리는 모습'에 대해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셨다'고 기록된 것과, 더불어 '서기관들이 마음으로 의심하는 바를 중심에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 예수께서는 외모와 행위가 아닌 중심을 보시고 판단하시며 응답, 역사하신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사람이 아닌 네사람이었기에, 또는 위험과 체면을 무릎쓴 친구를 위한 희생적 행동 때문이라기보다 그 모든 동기가 예수께 대한 그들의 믿음으로 말미암았다는 것을 생각해볼때, 믿음이 없이는 어떤 연합의 모양과 행동력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그 모든 과정속에 결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본문에 대한 저의 묵상입니다. 오늘도 QT 에 함께 하시는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inpreson
주님께선 그 친구들과 중풍병자의 절박함을 보시고 그를 고치셨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후 상황은 나오지 않았지만 친구들과 중풍병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지붕을 고쳐놓았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은혜를 받은 자라면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구요. 다만 경계가 드는 것은 주님의 뜻이라고 해서 믿지 않는 다른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을 정당화 하는데 이 말씀이 쓰일까 걱정입니다.
@YoungYeon
하늘나라는 침략하는 자의 것입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은 그 병이 친구의 삶 전체를 얼마나 얽매이게 하는지 잘 아는 사람들이었고, 병자 본인도 예수님께 나아가면 나으리란 확신으로 찾아갔으나 수 많은 인파에 맘이 힘들었을 겁니다. 오래도록 줄서서 기다릴수도 있었으나 그들은 극단의 방법을 사용했고, 예수님은 그들 맘속에 회복되고 싶은 열정을 보았을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때 교회에서 한 공연이 생각납니다. 저 장면을 연극으로 했는데 각기 다른 개성의 4 친구가 의견이 서로 부딪치다가 중풍병자가 꼭 예수님께 가고 싶다고, 지금 당장 예수님을 만나고 싶다고 하자 남의 집 지붕을 뜯어버립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문제와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럼 당장 예수님께 달려가야 하는 걸 알면서도 주저합니다. 급하지가 않습니다. 아이폰 사겠다고 밤새워 줄은 서도 새벽 예배 가겠다고 새벽에 일어나진 않습니다. 태안에 기름이 유출되었을때 모두 당장 달려나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썼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문제, 병 앞에서 어떤 테도를 보이고 있는지 생각합니다. 오늘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면 당장 성경을 펴는 사람이 있기를 바라고 기도가 필요하다면 당장 기도하는 하루가 되길 바랍니다. 저도 문제가 여러가지 있지만, 가장 급하게 찾아야 하는 것은 맘의 중심이신 예수님이라는 걸 고백합니다.
@QTShare
5절의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 친구의 믿음을 보시고 다른 친구에게 도움과 구원을 주신다는 점을 보았습니다. 저의 친구의 믿음과 구원 그리고 그들의 필요에 대해 나는 얼마나 간절하게 주님께 믿고 구했을까 다시 한번 반성합니다. 중보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jinsungk
나에겐 이런 친구가 있나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또 제 주위의 친구들에게 나는 이런 친구가 되고 있는지 물어봅니다. 예수를 향한 단순무식한 믿음과. 그 믿음위에 옥상으로 올라가는 행동과. 쪽팔림을 무릎쓴 간절함이. 내 삶에 있는지. 공유하는 친구가 있는지... 중풍병자과 네 친구들은. 병을 고침을 받지 못하였더라도. 제가 보기에는 참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속한 공동체의 사람들에게. 이런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qrafzv80
하나님의 시각과 인간의 시각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처음 '죄 사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셨을 때, 본문에 나오지는 않지만,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생각해봅니다. 기대했던 바오 다름으로 실망하진 않았을까요? 최소한 당황스러워하지는 않았을까요? 저라면 그랬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신 문제는 '죄'의 문제였고, 우리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한 문제는 '건강'의 문제였습니다.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우면 좋을까요. 물론 인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도 결국은 해결해주셨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전적인 믿음. 그 믿음을 위해 기도합니다.
@pullipggot
예수님께 가까이 가서 고침받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아픈 사람보다 더 한것 같습니다. 지붕을 뚫으면 되겠다! 하는 생각까지 한 친구들도 틀림없이 구원을 받았겠죠! 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이 이땅에 오신 이유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오늘 저에게 원하시는 것도 아주 분명한데 저는 적당히 피하고 살고 있습니다. 죄의 해결자이신 예수님을 증거하는 일..
@eripu
앞에서 중풍병자를 고치기 위해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상을 달아내린 행위, 그리고 그 인과로 중풍병자를 치유한 행위는 솔직히 그동안 많이 봐 왔고 익숙합니다. 하지만 :5부터 다시 묵상해보자면, 예수님께서 갑자기 '죄 사함을 받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6~7에는 갑자기 말씀이 그 안의 서기관들을 주목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해 그들은 '어떻게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사하겠느냐'라고 말합니다. 당연한 반응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중심에 아시고' 그 죄 사할 권세가 있음을 보이기 위해 (:10) 일부러 상을 가지고 나가게 합니다. 그리고 :12b에는 그들이 다 놀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ㄹ'ㅕㅆ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서기관들은 과연 이 기적을 보고 변하였을까요. 아니면 그냥 놀라운걸 봤지만 최대 '이익집단'의 모습 그대로 그 후 예수를 까는데 동참했을까요. 그리고 그들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멋지게 이들을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습니다.
@fountcsh
오늘 묵상 말씀을 통해선 2가지 단어가 눈에 확 들어 왔습니다. 2장 1절의 집과 2장 5절의 작은 자, 두 단어입니다. 우선 집이 눈에 들어왔던 이유는 누구의 집일까? 누구의 집에서 말씀을 전하셨을까? 이런 의문과 왜 하필 집에서 말씀을 전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2장 6절에 서기관이 거기 앉아 마음에 생각하기를 이란 구절을 봤을 때 작은 집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주님께서 내가 가진 것을(특히 물질) 내 놓아라 하실 때 이렇게 선뜻 내어 드릴 용기가 있을까 의문이 들었습니다. (요즘 새로 집을 장만 중이라 이런 묵상이 더 든 것 같기도 하네요;;;) 그리고 2장 5절의 작은 자라는 단어를 봤을 때 주님이 오늘도 저를 부르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도 주님이 저를 부르시는 음성에 귀기울였으면 합니다. 메시지 성경 본문은 셀을 나누어 밑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fountcsh
며칠 후에 예수께서 가버나움에 돌아오시자. 그분이 집에 계신다는 소문이 퍼졌다. 무리가 문 앞을 꽉 메워서 아무도 드나들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가르치고 계셨다.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 들려서 예수께 데려왔다. 사람이 많아서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자. 그들은 지붕을 뜯어 내고 중풍병자를 들것에 달아 내렸다. 그들의 담대한 믿음에 감동하신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내가 네 죄를 용서한다." 거기 앉아 있던 몇몇 종교 학자들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말했다. "저렇게 말하면 안되지! 저것은 신성모독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죄를 용서하실 수 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곧바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 그리 의심이 많으냐? 중풍병자에게 '내가 네 죄를 용서한다'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아가라'고 말하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쉽겠느냐? 내가 인자인 것과, 내가 어느 쪽이든 행할 권한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겠다."(그러고는 중풍병자를 바라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어나거라. 네 들것을 들고 집으로 가거라." 그 사람은 그 말씀대로 일어나서, 들것을 가지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걸어 나갔다. 사람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아 자신들의 눈을 비볐다. 그러고 나서 하나님을 찬송하며 말했다. "우리 평생에 이런 일은 처음 본다!"
@Zeliaaa
그저 우리가 상식으로 이해할수 없는 이러한 일까지도 포용하는 주님이시라는거죠. 아마 주님께서는 중풍환자가 올것을 이미 알고계셨을테고, 많은 사람들로하여금 이러한 기적을 볼수있게 해주신건 아닐까요? 사람으로 어찌 모든일을 헤아릴수야 있겠습니까.. 이 모든것이 예견된 것이겠지요.
@nahzen
오늘은 4절을 곰곰히 상상해 보았습니다.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가 누운 상을 달아 내리는' 시간이 그리 짧지 않았을텐데... 그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예수님도 보셨을텐데... 예수님은 어떤 마음으로 그들을 보고 계셨을까? 사랑이 많으신 우리 예수님은 '저런 저런 쯧쯧...'이렇게 보시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지붕을 뜯는 사람들의 갈급한 표정과 갈급함 뒤에 감춘 창피함을 보시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시는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그들의 마음에 '내가 욕 먹더라도 친구를 고쳐주고 싶다'는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싶어하시지 않았을까... 저는 원래 정죄감이 많아서 늘 제 마음 속엔 예수님이 팔짱을 끼고 딱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고 계셨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기도하다가 예수님이 제 옆에서 어깨를 감싸안고 저와 같은 방향을 바라봐 주시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많이 울었던 적이 있어요. 예수님은, 우리 마음에서 정죄감과 수치심을 거두려고 사셨던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azpace
다양한 요구를 가지고 인간은 신을 찾아 나서지만,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죄'문제의 해결을 통한 관계의 회복이라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교회도 찾아오는 사람들의 다양한 요구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더 중요한 교회의 목적을 이해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데 더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발견합니다.
@hayate_Korea
친구들과 중풍병자는 병을 고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으나, 예수님은 병고침의 사역뿐만 아니라, 죄 사함(즉 구원)의 문제까지도 해결해주셨습니다. 우리는 항상 작은것을 이루고자 하는데 예수님은 더 큰 것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이루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hayea00
중풍병자는 서기관과는 달리, 기적을 보지 않고도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는 믿음의 친구들을 두지 않았나 싶습니다. 살아가면서, 믿음의 친구들이 있다는 것 만큼 의지가 되는 일은 없겠지요.. 살짝 부럽습니다. :)
@awakers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서 어느 것이 쉽겠느냐" 오늘은 말에 대하여 묵상해 보게 됩니다. 크리스찬들은 참 말이 많고 잘 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습니다. 말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 자신도 너무나 쉽게 "이렇게 하면 되잖아"하는 내 모습을 반성해 봅니다. 내가 처한 상황, 내가 할 일이 아니기에 너무 쉽게 말하지 않았나 합니다. 말로만이 아닌 행함이 있는 믿음을 가지는 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sanayum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면서 이제 내 일이라 생각하며 뛰어다니고 있다. 하지만, 정말 나는 내 힘껏 최선을 다하고 있을까? 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지붕으 뚫어 전달하는 그 친구들의 추진력 만큼.. 나도 그렇게 하고 있을까? (나는 올바른 방향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내가 하는 일들이.... 바로 주님앞에 친구의 침상을 내리는..정확히 친구의 병을 고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진 그 친구들처럼.. 정확하게 하고 있을까? 그리고 그 일이 주님보시기에 합당한 일일까? 주님께선 그 친구들의 마음을 아시고, 그 친구들의 믿음을 아시고, 그 친구의 병을 고쳐주셨다. 그러면 내가 지금 달려가고, 펼쳐나가고 있는 이 일은 주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주님보시기에 자랑스러운 일일까? 내 방향이 맞게 가고 있을까? (나는 사랑하고 있는가?) 내 주님을 만날 때, 친구의 아픔을 알고 같이..힘들게 메어 오고, 또 주님께 내보이려는 열정.. 그 친구를 많이 사랑한... 그 친구들처럼... 나는 내 일을 하면서 같이 동행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 혼자만 잘되려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내 주위의 사람들도 이끌고 격려하여 주님 앞에 나가려는 마음을 가져야할텐데.. 나조차도 감당하기엔 쉽지 않은 현실이지만.... 하나님. 오늘의 말씀..어려서부터 많이 듣고 배운 말씀이지만.. 세가지를 또 생각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생각만이 아니라 내 삶에 녹게 하시고.. 모든일에 최선을.. 하나님을 향한 바른 전진.. 그리고 다른사람과 동행하는 삶을 주님께 보일 수 있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wonjho
오늘은 말씀보다 상황이 더 재밌네요. @hanbaek님 말대로 왜 굳이 지붕까지 뚫었을까요? 제가 생각했을때는 예수님의 소문에 병자를 치료한다고 들었는데 그래서 부랴부랴 쫓아온것이죠.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요. 본문에 중풍병자를 4사람이 메고 오지만 그 외에도 여러사람들이 함께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뭐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매우 사랑받는 사람이거나 중요한 사람이었나 봅니다. 그래서 매우 다급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기다리다 혹시 예수님이 그냥 떠나가시면 고침을 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지붕으로 올라간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그들의 믿음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중풍병자에게는 작은자라고 하지만 그를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의 간절함이 예수님의 치유를 이끌어 내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예수님의 뜻도 들어 있지만... 주변에 돌아보면 본인의 힘으로 신앙생활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들을 중풍병자를 메워 가지고 온 네 사람처럼 이끌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ddaiyobi
1. 예수님은 병자를 고치시다가 뜬굼없이 죄사함이야기는 왜 꺼내셨을까? => 당시에 유태인들은 죄때문에 몸이 아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님이든 귀머가리든 앉은뱅이든 성치 못한것은 죄가 있기때문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며 이 환자의 간절한 욕구는 죄사함에 있었기 때문일것이다. 중풍병자 본문을 큐티할때 항상같이 생각나는 본문은 요한복음 5장의 베데스다 연못가의 서른여덟 해 된 병자이다. 예수님께서는 그환자를 고치시면서는 죄사함의 이야기가 없으시다. 다만 낫고자 하느냐하고 물으셨다 그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이실것이다. 2. 왜 급하게 지붕을 뜯어야 했을까? => 1장에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시몬의 장모를 고치시고 저물어 해질때까지 병자를 고치시고 는 새벽 아직 밝기 전에 그곳을 떠나셨다. 중풍병자의 친구들로서는 급할수 밖에 없었을것이다. 몇일전 온동네를 떠들석하게 만들었던 분이 다시 오셨다는데 친구를 침대에 매달아 급하게 왔는데 오늘 또 날이 저물어 저분이 휴식을 취하셔야 한다면 친구는 나을수 없을것이고 몇일이 될지 모르는 시간을 또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지붕은 고쳐 주면 될것이다. 저 수많은 사람들을 기다릴수 없다. 너구나 친구가 간절히 죄사함 받고 낫기를 기다리지 않는가? 베데스다 연못의 병자를 고쳐서 안식일의 주인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셨던 주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고쳐서 예수님의 권능이 하나님께로 부터 온것임을 보여주신다. 중풍병자 친구들의 뜨거움은 나의 미지근함을 챙피하게 한다. 나의 주변의 사람들의 필요에귀를 기울야 겠다 그리고 믿음의 은사를 사모하고 갈구해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높여야 겠다.
@graceviky
능동적인 믿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믿음을 가지고 있고 구원을 믿고 보혈을 믿지만.. 제게 친구들과 같은 능동적 믿음이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수동적으로 움직였던저를 반성해 보면서 아까 설문에도 답했지만 아마 전 집회가 끝나길 기다렸을것 입니다. 어떤 신앙이 맞는 신앙인지 혼란한 시대에 절 반성해 보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큐티 너무 늦었네요. ㅜㅜ 정신없는 목요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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