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baek
본문에는 안식일에 손마른 사람을 치유하시는 기적이 나옵니다.
수많은 고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님은 손마른 사람을 일으키시고 말씀으로 회복시켜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손 마른 사람이 먼저 예수님께 치유를 요구한게 아닙니다. 게다가 수많은 적대자들이 안식일 문제로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주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서 예수께서는 왜 그를 치유하셨을까요? 손 마른 병은 죽을 병은 아니니 다음날 고쳐 주시든지 아니면 약속을 해서 다음번 만남을 기약하면 될텐데 굳이 의심을 받고 미움을 받으시면서까지 그를 고쳐주신 이유가 무엇인지 묵상해 봅니다.
아마도 이는 주님의 긍휼하심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긍휼이 여기시는 마음이야말로 주님이 가지신 가장 큰 마음이며 우리네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신 힘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긍휼을 기대어 살아야 합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고백은 주님의 은혜가 우리 안에 내리기에 가장 적합한 고백입니다. 저는 오늘도 주님의 긍휼하심이 저의 삶에 내려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주님이 저를 긍휼이 여기시면 내 힘으로 극복할 수 없는 고통과 탄식을 주님의 방법으로 주님이 내밀어주시는 손의 힘으로 회복되리라 믿습니다.
다시금 주님께 이 새벽에 기원합니다. 주여 이 죄인을 불쌍히 여기소서!!
오늘 8시에 혜화동 1번 출구에 있는 학전극장 5층 트윗방송국 사무실에서 성경공부를 진행합니다.(010-2021-8804) 도저히 오실 수 없는 분들을 위해 유스트림을 통해 @hanbaek 과 @twtbs 아이디로 실시간 중계하겠습니다.
@jinsungk
예수님, 기독교. 이 두 개의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가지는 '사회적인 의미'는 굉장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예수님을 존경하고 인정하지만, 기독교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는 주변의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주의깊게' 혹은 그냥 '살펴보는' 사람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삶이 성경적이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치심과도 비슷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록 '고발자'까지는 아니지만, 오늘 우리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사랑과 은혜, 생명을 구하는 일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었으면 합니다. 또한 그로 인해, 우리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가르치시고 항상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높아지시는 일들이 일어나기를 소원합니다.
나의 마음이 완악한 바리새인을 닮지 않았는지 돌이켜 본다....
@inpreson
3절에 보면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란 구절이 있습니다. 평소에는 치유사역을 숨기시는 주님께서 다른 사람들이 잘보이는 한 가운데로 병자를 인도하신 것은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을 조금이나마 깨뜨리기 위한 장치가 아니였나 생각합니다.
같은 이적을 보고도 문둥병자나, 사마리아 여인은 ' 당신은 구주입니다.'라고 고백했던 것은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 복음에 대한 주님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는 생각입 듭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우 마음을 닫고 자신은 만족하단 생각을 가지고 살았기에 그런 갈망이 없었고 그러 인해 주님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것이지요.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란 말씀도 있듯이 마음이 가난하여 주님을 의지하는 것 만이
주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신의 갑옷으로만 두르고 남을 판단하려고만 한다면 결국 메시아를 죽이게 되는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지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저 역시 마음이 가난한가 생각해보면 반에 반품도 그렇지 못하니 낮아진자의 마음으로 업무에서나 다른 일에서나 사람들을 섬겨야 겠습니다.
@YoungYeon
요한복음4:31~42 예수님의 세례와 세례요한의 것과 비교하는 말들이 많아지자 잠시 자리를 피하기 위해 갈릴리를떠나 일부러 사마리아로 지나가시다 한여인을 만나 구원의 메세지를 전합니다. 여인은 예언자가 나타나 자신의 과거를 모두 알아맞혔다고 동네사람들에게 말하고 그들이 다 나와 선지자인줄 알고 왔는데 "말씀"을 듣고 그가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고 함께 있어달라고 청하자 이틀동안 사마리아의 한 마을에 거하십니다. 사람들은 여인의 얘기를 듣고 나아왔지만 한사람 한사람 직접 예수님을 보고 그분을 구세주라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 금식하며 아이티를 위해 기도합니다. 예수님도 당시 사람취급도 안하던 사마리아의 한동네에 거기서도 가장 보잘것 없어 보이는 여인에게 일부러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마르지 않는 생명의 물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사람들의 영적인 갈급함에 말씀으로 채워주셨습니다. 아이티가 우리에게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나라이고 그들 한사람 한사람이 우리에겐 무의미할지 몰라도 하나님께는 완벽한 창조물입니다. 오늘날 이런 사건이 일어난 것은 그들의 죄 째문이 아니라 온 세계가 한마음으로 그들을 도우라는 사명을 주시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재적으로 여력이 없어서 지갑을 통 털어도 많은 금액으로 돕지 못해 한스러울 뿐입니다. 여유가 있어서 도움을 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작은 금액이라도 여러 방법을 통해 아이티를 도웁시다. 당장 먹을 물이 없고 아픈고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이런저런 탁상공론은 그걸 즐기는 사람들에게 맡겨두고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이 온맘으로 도움주시길 기도합니다.
@qrafzv80
바라새인들의 모습을 보며 화가 나고 안타깝습니다. 선을 행하지는 못할 망정,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판단하고 정죄하다니요. 바리새인들의 진정한 문제는 율법주의적인 자신들의 행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판단하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괜시리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모습은 없는지 돌아봅니다. 오늘 아침엔 날씨가 따뜻해져서 김명식 님의 '봄'이 절로 흥얼거려지는 군요. ♬ 내가 염려했던 지난 날들과 영원히 계속 될것만 같았던 추운 겨울은 주님의 약속대로 흔적도 없고~ ^^ 따뜻하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SeungHeeC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연초부터 이런 저런 일이 생겨서 누군가를 심하게 미워했고 평생안볼생각까지도 했었습니다.
오늘 그 두 사람을 불러내어 그동안 화나고 섭섭했던 마음을 얘기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싶습니다.
한동안 교회와 성경에 멀어져있었는데 다시 큐티묵상하면서 주님곁으로 다가가고 싶습니다.
@fountcsh
즐거운 주일되셨는지요?
이틀만에 트윗 큐티에 다시 출석하였습니다. 생명을 구하는 일에 앞장서라는 주님의 말씀을 다시 되내여 봅니다. 어제 예배중에 아이티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왔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제 모습이 오버랩되더군요. 지금이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것 같습니다.
@hayate_Korea
예수님이 그들의 마음 완악함을 보시고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신다는 장면이 스틸컷처럼 제 마음에 찍혔습니다. 저도 마음이 완악한데, 저를 안타깝게, 그리고 노하신 얼굴로 쳐다보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늘하루도 정말 선을 행하는 사람으로 살아야겠다고 다짐합니다. 물론 주님은 선하신 분이시지만, 주님의 선하심을 이용하는 사람이 되면 안될 듯 합니다.
@Zeliaaa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보시고......
주님을 모르고 믿는이들을 탄압하는 자들은 이후 주를 알면될터이나, 주를 알면서도 두려워하지않고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자들에게 자비는 없는것..인거겠죠?
@pullipggot
저도 토,일을 보내고 오늘 다시 이곳에 왔습니다. 도구가 주어졌을때나 그렇지 않을때나 묵상할 수 있도록 기도부탁합니다. /
예수님을 고발하려 어떻게든 틈을 엿보고 있던 사람들, 생명을 구하는 일이 옳은 일인지 그들도 부인할 수 없었지만 사람들이 정해놓은 규칙에 얽매여 모른체하는(그들이 잠잠하거늘) 사람들을 보면서, 내 모습을 돌아봅니다. 사회의 규칙, 인간관계가 끊어질까봐, 회사에서 뭔가 불이익을 당할까봐 중요한 문제들을 그저 조용히 묻어두고 사는건 아닌지..점검해봅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이 오신 이유, 그분을 통해 전해야 할 메세지를 증거할 수 있는 용기를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Samantha_K_Lee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많은 것들을 다시한번 깨달았습니다. 마른 손을 주께 내밀며 주의 긍휼을 기도합니다.
@hayea00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는 모습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질투를 하는 모습이 그려지는 순간이였습니다.
예수님은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했지만,
바리새인들은 혹시나, 예수님이 백성들에게 인기를 얻어,
권력을 쥐거나 할까봐 불안 했지는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약자를 순수히 도와주려는 예수님의 마음을 우리는 본받아야 합니다.
약자를 도와주려는 사람들을 너무 색안경만끼고 바라봐서는 안될 듯 합니다.
@archegon
바리세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예나 지금이나 정치에는 도저히 섞일수 없는 근본이 다른 두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할 때는 야합을 하는 경우가 빈번한가 봅니다..하나님께로 구별된자와 왕권을 옹호하는 자가 어찌 같이 머리를 맞댈수 있으랴...이게 현실인가...내가 정치를 너무 모르는가...
@wonjho
여기서 묵상을 3번 정도 했는데 그 때마다 예수님께서 누군가를 고쳐주시는 것 같네요. 예전에 안식일의 의미가 얼마나 컸는지 감이 잘 오지는 않지만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것도 다 사람의 사랑이 먼저여야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이웃에 죽어가는 생명을 돌보는 것도 중요하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많은 형식적인 기도, 찬양, 예배 그런 것들에 앞서 내 이웃을 먼저 사랑하고 돌보아 줄 수 있는 마음에 여유가 있었으면 하네요.
@graceviky
어제 우리 셀원들과 나누었던 이야기가 기독교인은 어디까지 관용해야 하는가 였어요.. (어느 선까지 용납해야 하는가, 믿지 않는 사람들, 이단, 돈, 이런문제들이요)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사랑 하시는 것 처럼 우리도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을때가 있는거 같아서요.. 오늘 말씀을 읽다 보니 내가 바로 바리새인 같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크리스찬이라는 우월감에 사로잡혀 다른 사람을 정죄하지는 않았는지 또는 마음으로 다른 이를 미워하는죄를 짓지는 않았는지 반성이 됩니다.. 항상 깨어 있는 내가 되기를
@eripu
오늘도 예수님은 고치십니다. 안식일도 개의치 않으셨고, 언제나 병자들이 다가올 때마다 오셔서 고치셨습니다. 아무리 누구라도 예수님이 가셔서 하시는 일을 결국 막으실 수 없었고,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일을 언제나 예수님은 행하심으로 거짓 진리를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 사역의 현장을 방해했고, 그러한 일을 하지 못하도록 강한 압력을 넣었습니다. 완악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 일하셔야 할 자리에서, 우리가 바리새인들처럼 그 사역을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을 우리 안으로 제한하지 맙시다.
어떤 선교사님의 말씀을 기억합니다. "개야 짖어라! 기차는 달린다."
@xma1225
성령으로 난 사람은 기꺼이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며 기뻐하고 영광을 돌릴줄 압니다.하지만 육의 사람은 자신의 나이와 학식 종교적 지위를 앞세워 하나님보다 위에 서려 하고 저 어린것에게 저 가난한 자에게 저 정규학력도 없는 자에게 하나님의 이적이 일어날리 없다고 생각하며 질투하고 심지어 마귀의 일로 치부합니다 제주변의 어떤 아이라도 약한자라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느껴질때 무릎꿇고 경배드릴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은 실로 약한자들의 보호자되시며 인간의 약함을 들어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movenations
율법(형식 혹은 규칙, 질서 혹은 플랫폼)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인 본질, 그것이 가장 우선순위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장면. 선악 논리를 벗어나 모든 사안의 중심에는 '생명을 구하는 것' (구원 혹은 복음)의 가치가 우선한다. 때론 본질의 가치와 형식의 그것이 '한계적인' 인간 삶의 테두리 안에서 길항되고 충돌할 때가 발생한다. (우리의 삶에서도 충분히) 난해한 결정 앞에서 최우선해야할 가치는 역시 '생명을 살리는 일'에 있다. 어떤 명분도 뒤 엎을 수 없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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