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막 3: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막 3: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막 3:16) 이 열둘을 세우셨으니 시몬에게는 베드로란 이름을 더하셨고 (막 3:17) 또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이니 이 둘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란 이름을 더하셨으며 (막 3:18) 또 안드레와 빌립과 바돌로매와 마태와 도마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및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이며 (막 3:19) 또 가룟 유다니 이는 예수를 판 자더라
@hanbaek
예수께서 제자 12명을 세우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건 세우신 목적입니다. 먼저는 예수님과 함께 함입니다. 두번째가 전도를 위함이며, 세째가 권능을 주심입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의미 중에 가장 중요한건 말할 것도 주님과 함께 하심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동거동락을 하시면서 주님의 모든걸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주님의 마음과 주님의 행동과 주님의 사고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몸에 담았습니다. 이러한 힘이 제자들에게 쌓여서 어리석었던 제자들이 세상을 바꾸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내가 주님의 사람으로 무엇을 할까에 관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부분은 내가 지금도 주님과 함께 하고 있으며 나의 24시간이 주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마음과 행동에 감격하고 즐거워하는지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의 생각하시는 방법과 주님의 행동하시는 양식이 우리의 삶에 접목될 때 우리는 제자됨의 첫걸음을 때는 겁니다.
두번째는 주님이 보내셔서 전도를 하는 행위입니다. 주님의 보내심은 주님을 닮은 사람으로 세상에 나아가 주님이 말씀하시고 행동하심을 알리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전도가 무조건 교회로 데려 오는거라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옳습니다. 히지만 주님의 삶과 마음을 보여주는게 전도의 기본입니다. 주님을 알리는건 내가 오늘도 동행하시는 그분이 이런 분임을 나의 삶을 통해서 너가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주님 대신 세상에 나선 제자입니다. 나를 통해 세상이 주님을 발견하도록 오늘 나는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은 제자에게 권능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권능이 있습니다. 바로 권능을 나눠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주님을 닮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주님의 권능이 나옵니다. 이게 내것이 아닌 주님이 것임을 고백하고 나는 주님이 주시는 힘을 너에게 나눴을 뿐이라고 끝까지 고백하는 순수와 겸손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완성시키리라 믿습니다.
@YoungYeon
성경은 참 친절하게도 자세히 말씀해주시는데 제가 어리석어 지나칠때가 많습니다. 한동안 전도에 열을 올렸으나 잘 되지 않았던 때가 기억납니다. 내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때, 내가 그분의 말씀으로 삶이 온전히 움직일때라야 입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술술 나옵니다. 내가 병이 있는데 어느 병원가서 나으면 그 병원을 누구에게든지 친절히 알려줍니다, 전에 교통사고 휴유증으로 병원다닐때 그런 경험이 있죠. 숙취후에 뭐가 제일 좋더라 하면 다 따라했죠.
그런데 하니님이 그 아들을 보내시고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말씀은 참 잘 믿기 어려워합니다. 전도는 내가 이미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할수 있습니다. 현재 모습이 잘지내고 있어도 못지내고 있어도 예수님이 함께하시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예수님이 옆에서 내가 너 옆에 있다고 외치셔도 내가 음질좋은 이어폰끼고 볼륨 높여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분이 부르시는 내 이름을 들으수 없읍니다.
내가 좋은 상황일때만 전도할수 있는게 아니라 내가 어려울때에도 기쁨을 잃지 않고 작은 일에 감사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열방에 알리는 것이 마땅히 할일입니다. 오늘 사랑하는 친구와 지인들에게 예수님 이름을 알리시는 하루기 되시기 소망합니다.
예수님이 부르신 12제자들은 모두 너무나 다른 개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를 나타내는것 같기도 하고 여러 인격을 드러내기도 하고, 그러나 그들은 모두 예수님의 부름에 순종한 자였습니다. 진리를, 자유를, 구원을 갈망하던 한가지 소망이 공통으로 있던 자들이죠. 제 맘속에고 간절히 소망하는 것들이 무엇인지 저도 깊이 묵상하는 하루가 됬으면 합니다.
@tirol70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라는 말을 반복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입으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주님이 '부르시면' 망설이지 않고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건지 돌아보게됩니다.
부르심을 기대하며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pullipggot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귀신을 내쫒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라..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음을 받기위해 나아왔을때 예수님은 열두제자를 통하여 주님의 권능으로 그 일들이 계속되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몸과 마음이 병든 사람들이 지금 내 모습, 내주변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먼저 나 자신이 주님앞에 엎드러 기도하고 주님과 매순간 동행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qrafzv80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고 나아오네요.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봅니다. 또한 부르신 이유 중 하나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려고 였다고 합니다. 제자로 부르심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세속적인 축복의 의미는 없었네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길 원합니다.
@fountcsh
주님이 부르신 다양한 사람들 언젠가 web에서 grace와 amazing grace의 차이를 알려주는 그림을 봤습니다. 혹 제 눈에 세상과 제가 만든 편견으로 사람들을 보고 있는 지 묵상해 봅니다. 주님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말이죠.
본문에서 우리는 주님을 만나고 그들의 호칭과 신분이 바뀌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를 만나면 주변의 사람들은 그 모습 그대로이지만 예수를 만나면 그들의 이름과 호칭과 심지어는 그들의 가치관까지 바뀔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 세리였고 어부였던 그들이 예수님을 만나 제자라는 새로운 신분을 얻었고 시몬이라 불리우던 갈대같은 청년이 베드로라는 반석 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나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예수를 만나게 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jjoltee
처음에 주님을 따르던 제자는 열둘 이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중에서 부름을 받은 열두 명의 기준에는 학력도, 이력도, 교회에서의 직분이 중요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주님의 기준은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게 되는 아침입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새 이름을 부여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전율을 느낍니다. 평범한 어부였던 시몬에게 너는 이제 반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름이 얼마나 중요하던가요. 저도 저 나름대로 매일 직면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주님께서 부여해주신 새이름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내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samantha_k_lee
원하는 자들을 제자로 부르시고, 이름을 새로 주시는 예수님은 참 즐거우셨을 거 같습니다. 원하는 자가 되기위해서 즐겁게 불러주시는 자가 되기 위해서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예수님을 닮아가야겠어요. 저도 예수님의 즐거움이고 싶습니다.
@hayate_Korea
주님은 베드로에게 세상에 있는 이름을 부르시지 아니하시고 이름을 하나 더해주십니다. 주님은 저를 어떻게 부르실까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에게 어떤 이름을 더하실지 한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하지만, 두렵기도 하네요, 주님이 붙여주신 이름에 걸맞는 하루를 살아야겠다 다짐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잘 살아내야겠지요!
@HAYEA00
오늘 말씀에서 저는 예수님도 믿음의 동력자들을 키우셨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의지하고, 같이 기도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만큼 든든한 일도 없을 겁니다.
예수님도 그러셨으니까요.
힘든일이 있으면 서로 기도해주고, 위로해주는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습니다. ^^
@jhlee926
어렸을 때는 단순히 12제자의 이름을 외운다고 대했던 말씀이었는데, 이렇게 묵상하니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자세,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모습으로 와닿아 많은 은혜가 됩니다. 욕심만 앞서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지 않고 준비되지 않은 자세로 세우심을 받겠다고 조바심을 내기도 했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 보다는 권능에 더 매력을 느끼기도 했던 부족함을 돌아봅니다. 역시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불러주신 하나님께 의지하는 것 뿐만이 부족하고 어리석은 제가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임을 고백합니다.
@nahzen
오늘 hanbaek님의 말씀해설을 한자 한자 특별히 주의깊게 읽었습니다. 또 13절을 부러움에 북받쳐 읽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셨다는 말씀이... 왜 이렇게 부럽고 서글픈지 말이예요. 예수님 곁에서 부지불식간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특별한 은혜를 입었던 그들이... 처음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을 때는 '전 교회만 다닐 꺼예요. 저한테 더 바라지 마세요.' 이렇게 몸을 숨겼었어요. 행여나 신앙 때문에 소중한 것, 소중한 사람을 잃은 사람들을 보면 '혹시 나에게도 저런 삶을 강요하시면 어떡하나...' 그랬었지요. 그런데 지금은 왜 달라진 걸까요? '하나님, 왜 저는 안 불러주세요? 제가 뭘 더 해야 하나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되나요? 혹시 부르셨는데 제가 못 들었나요?' 이렇게 비굴하게(^^;;) 들이대는 모습을 바뀐 건 대체 무엇때문일까요? 하나님 앞에서 고꾸라진다는 표현이 참...
아마도 제가 여전히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있음을 예수님께서 더 잘 아시는 거겠죠. 가족에 대한 부담감이 없을 수가 없네요. 예수님이 가족을 저보다 더 잘 지켜주실 것을 알면서도 떨쳐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이 원하시는 자가 되고 싶다고... 고백해봅니다.
@eripu
열두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자들을 부르셨습니다. 그 당시 살았을 수천만명의 세계 인구 중에서, 그 당시 살고 있었던 수십만명의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단지 그들만을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계획하셨지만 단지 그들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뛰어난 스펙을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부르신 섭리 때문이었습니다.예수님을 팔 가롯유다도 부르셨고, '우레의 아들'같은 야고보와 요한도 부르셨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희생으로 주님을 따르려고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 택함을 받는 자는 정말 적을 것입니다.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Ddaiyobi
제자들에게 맡기신일이 우리들이 해야할일이다. 동행하고 전도하며 하나님을 경배하는것. 지금내가 서있는 곳이 예수님께서 나를 보내신곳이고 예수님을 대신해서 진정한 경배를 드리는 삶을 살아서 다른 사람을 변화시켜야 겠다. 하나님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오늘 하루의 삶을 통해 주님과 동행하고 주변에 전도하며 경배하게 하소서
@wonjho
이 말씀 묵상내용 중에 @tirol70 님이 작성하신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라는 말씀이 저도 와닿네요. 나아오면 주님께서 @hanbaek님이 말씀하셨듯이 주님과 함께하고 전도도 할 수 있으며 권능도 주시는 건데요. 교회에서도 여러가지로 부를일이 참 많은데 그럴때마다 나오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모든 부르심에 나아갔으면 하네요. 그리고 나아갈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합니다.
@graceviky
이 말씀은 묵상 할때마다 제게 순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해요.. 나는 과연 순종 할수 있는가..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주님은 날 부르셨는데 나는 과연 나아가고 있는가.. 모든일에 순종하는 내가 되길 기도합니다.. ( 큐티를 이제야.. 창 열어놓고 못하는 제가 불쌍해요. 흑.. )
@xma1225
난 예수의 제자가 아니다 그것은 확실하다 제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라 다녔으며 그중에 12명을 필요에 따라 뽑으셨다 모든 예수를 믿는 사람이 제자는 아니다 진짜 제자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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