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환자의 치유장면입니다. 나병환자란 당시에는 육체적으로 죽어가고 있으며, 종교적으로 더러운 존재의 화신이며, 사람들과 함께 거주할 수도 없는 버림받음 최악의 병입니다.
따라서 문둥병에 걸린 사람은 견딜 수 없는 두려움과 떨림 속에서 고칠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수많은 사람들을 치유하는 예수님의 소식을 들은건 너무나 강한 희망을 본 기쁨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 앞에 서면 돌을 맞아 죽을지도 모르지만 예수께 무릎을 꿇고 치유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기도의 내용이 참으로 특이합니다. 보통 그런 병에 걸렸으면, 예수님을 보자마자 저를 좀 고쳐주세요라고 하든지 제발 저좀 살려달라고 외쳐야 하는데, 이 문둥병자는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믿음의 고백이요, 자신의 삶의 현실에서는 외치기 힘든 고백입니다. 나의 편에서 치료를 바라는게 아니라 주님의 마음에 합하시면 저를 치유하실 수 있다고 치유의 주체를 주님께 드리는 고백의 말입니다.
주님은 이 고백을 기쁘게 들으셨습니다. 그리고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문둥병자가 주님이 원하시면라고 기도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원하노리라고 답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드리는 기도를 들으시고 그대로 응답하시는 감격을 주십니다. 천형에 걸린 문둥병자의 기도를 그대로 들으신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의 기도도 그대로 들으시고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을 주십니다.
더욱 우리의 마음에 감동을 주는 장면은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다는 구절입니다. 아무도 만지기는 커녕 가까이 가려고도 하지 않았던 문둥병자입니다. 사람이 곁에 오지 않아 마음이 외롭고 홀로된 고독에 몸부림치던 이 사람에게 주님은 손을 내밀어 만져주십니다. 이는 세상 모두에게 버림받아도 난 너의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따뜻함이자, 너는 이미 치유받은 사람으로 더 이상 혼자가 아니라고 외치시는 무언의 소리였습니다. 이 순간 문둥병자에게 임한 감동이 얼마나 큰지는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시며 치유하신 주님이 오늘 우리의 삶에 오셔서 우리의 가장 더럽고 아픈 부분에 손을 대시는 주님께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사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 가시리라 믿습니다.
@jinsungk
오늘의 '나병환자'의 말씀을 읽으면서 마음에 드는 첫번째 생각은 '난 건강한 사람인가?'라는 것입니다. 난 비교적 육체적으로 건강하다고 생각하고는 있지만, 과연 나의 영혼은 건강한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정도 건강하다고 생각해서 '예수님께 도움을 청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병 환자만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한 것은 아닐 겁니다. 모든 사람에게. 바로 오늘. 우리에겐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 분이 원하시니. 우리의 삶이 깨끗함을 받을 수 있을 겁니다.
두번째 생각은. '내가 주님앞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간구한 적이 언제였던가' 하는 생각입니다. 인터넷으로 성경을 보고, 이렇게 트윗으로 큐티도 할 수 있으며, 이제는 스마트폰과 같은 기계를 통해서 성경을 읽을 수 있습니다. 저는 나이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책에다가 글로 쓰면서 QT를 하던 어린 시절이 참 그립고 그립습니다. 물질적으로 어느정도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면서, 제 삶에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줄어들고 있지는 않나.. 걱정입니다. 오늘 밤. 집에 가면 작은 방에 들어가서 기도해야겠습니다. 무릎꿇고. 엎드려서 말입니다.
@ukjoseph
문둥병자가 예수께 찾아와 간구했지만, 그보다 먼저 병든세상을 '민망히-불쌍히,긍휼히'(compassion) 여기시고, 하나님 나라에선 허락되지 않는 질병에서 깨끗게 되길 원하셨기에 이 땅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의 은혜를 묵상하게 됩니다. '누군가 먼저 찾아오면' 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성령님의 교통하시는 은총' 을 한 몸에 품은 우리가 먼저 병든세상을 향해 손 내밀때 치유하심의 은혜가 여러모양으로 풍성히 풀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도 하늘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놀라운 뜻이 우리가 머물러 있는 모든 삶의 현장에 넉넉히 펼쳐질 것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더불어, QT에 함께하시는 모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pullipggot
먼저, 새해들어 이렇게 트윗을 통해 QT를 할수 있어서 감사합니다(이상하게 새해부터 1시간씩 일찍 출근하고 있습니다) - 드러나지 않고자 하시지만 사람들이 계속 몰려옵니다. 병을 고치는 분이신 예수님이 필요했지만 그 중에는 이 나병환자처럼 꿇어 엎드려 간구하며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제가그곳에 있었다면 주님앞에 나올수 있었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모든것에 소극적인 저, 주님 믿는 믿음앞에서는 제일 앞장서고 싶습니다.
@inpreson
저는 44절에 예수님께서 왜 아무에게도 보이지 말라 하셨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땅에 죄사함을 하시고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오신 것이지 병에서 해방을 주시기 위해 오신것이 아닙니다. 우선의 목적을 보시고 그 주변것이 더 중히 여겨 지는 것을 경계하셨던 예수님, 요즘 제 생활이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경우가 너무나도 많음을 고백합니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그리고 주님앞에 시간을 온전히 드리는 연습을 해야 겠습니다.
@YoungYeon
나날이 이곳 QT나눔이 번창하길 기도합니다. 요한복음 3:22~30 세례요한은 말라기 이후, 예언에 있었던 것처럼 4백년 만에 나타난 선지자였고 그에게 물로 세례를 많은 사람들이 받았고, 예수님 자신도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제자들도 세례를 주기 시작하자 요한을 따르는 제자들이 사람들이 예수에게로 점점 더 많이 가고 있다고 하자, 요한은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고, 자신은 점점 쇠퇴해져야하고 예수님은 점점 더 번성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믿으면서 우리 자신이 높임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의 달란트를 사용하여 하나님이 좋은 열매를 주실때 어느 덧 내 이름이 퍼지고 있을때도 있습니다. 오늘 요한의 외침에 귀기울입니다. 4백년 만에 하나님이 주신 선지자, 사람들이 아무리 이름을 높이 부르고 칭송해도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흐트러짐이 없습니다. 그는 확실하게 예수님을 만났고, 그분이 하늘에서 오신 것을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므로 자신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예수님에게 집중하였습니다. 오늘 하루 내가 예수님을 따르는 자라고 고백하고 예수님의 자녀임을 선포하고 사람들이 뭐라는 말에,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하나님 안에서 세우는 하루기 되길 기도합니다.
@Zeliaaa
무엇보다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이루어지시고 뜻하시는대로 이루어지시라는 믿음이 부럽고 참 필요한것 같습니다. 나의 뜻대로가 아니라 주님이 뜻하신대로 모든것이 이루어지기에 어려운일도 좋은일도 감사하며 사는것이 우리인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드네요. 물론 주님의 자녀는 주안에서 늘 행복하다는 것도 믿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잃지않도록 해야겠습니다. 오늘말씀이 다시금 제인생에서 이루어지는 모든일이 저의 것이 아님을 깨닫는 좋은 말씀이었습니다.
@graceviky
구하면 얻으리라 하신 말씀이 남네요.. 반면 모든 일이 하나님의 간섭 없이는 이루어질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저도 믿음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자가 되어야 겠어요... (예전에 이 말씀 묵상할때 44-45절 말씀보면서.. 아.. 역시 말도 안듣는 사람들.. 이런생각했던게.. 문득 ㅋㅋㅋ)
@qrafzv80
참 부지런들 하십니다. ^^ '엄히 경고하심'에도 불구하고 나병환자는 이 일을 많이 전파하여 널리 퍼지게 하였다고 합니다. 언뜻, 주님의 뜻은 아니었지만, 시각에 따라서는 그 결과가 선하게 이어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러한 '합리화'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이 겪게 되지요. 하나님은 'no'라고 말하지만, 인간의 생각으로 그 일을 진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를 가지고, 원래의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기도 하지요. 아무리 아름다운 결과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불순종은 불순종 아닐까요?
@fountcsh
44절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중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서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라는 구절을 통해 주님의 사역 방법에 대해 다시금 생각케 합니다. 한 영혼에 대한 온전한 사랑은 그 영혼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있어야 가능한 것 같습니다. 가끔은 우리가 듣는 여러가지 말 중에 기독교인은 참으로 배타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곤 하는데 주님의 모습을 바라보며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러한 벽과 허물들을 온전한 이해와 사랑을 통해 허물어 뜨리는 하루가되어야 할 듯 합니다. 오늘도 메시지 성경 구절을 올려봅니다.
한 나병환자가 그분께 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했다.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못내 측은한 마음이 든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며 말씀하셨다. "내가 원한다. 깨끗하게 되어라." 그러자 그 즉시 나병이 깨끗이 사라졌고, 그의 살갗은 보드랍고 온전해졌다. 예수께서 그를 보내시며 엄히 명하셨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마라. 깨끗하게 되었으니 모세가 정한 예물을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서 네 몸을 보여라. 그러면 네가 나은 것이 사람들에게 입증될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모퉁이를 돌아서자마자, 만나는 사람마다 그 일을 이야기하여 온 동네에 소문을 퍼뜨렸다. 그래서 예수께서 더 이상 시내에 자유로이 드나들지 못하고 외딴 곳에 머무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온 사방에서 그분을 찾아왔다.
@awakers
오늘 말씀을 통해서 겸손함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라면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다면 드러내고 남들에게 알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엄히 경고하신 예수님.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은 정말 어려운것 같습니다. 그러나 나날이 삶이 고루어져 예수님을 닮아가는 삶을 살고자 다짐하고 기도합니다.
@hayea00
모든이에게선 향기가 납니다.
좋은 사람에게선 좋은 향기가..
나쁜 사람에게선 나쁜 향기가..
그 향기는 누가 없앨수도 없는 향기입니다.
아마 예수님께도 그런 향기가 났기에, 사람들이 모이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써,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는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
@nahzen
오늘 저의 key verse는 45절입니다. 지난주에 들은 설교 예화가 떠올랐어요.
한 이발사가 있었답니다. 하루는 스님이 머리를 밀러 오셨대요. 종교인이고, 별로 힘 안들이고 면도 몇 번 해준 거라서 돈을 안 받겠다고 했답니다. 미안해하던 스님이 그냥 가셨는데, 다음날 아침 이발사는 출근하다가 이발소 문 앞에 고맙다는 편지와 함께, 귀한 산더덕 열 뿌리가 놓인 것을 보았어요.
기분이 좋아진 이발사가 열심히 일하는데, 그 날은 신부님 한 분이 구렛나루를 정리하러 오셨습니다. 역시 종교인이고, 별로 힘 안드는 면도라서 또 돈을 안 받겠다고 했답니다. 신부님 역시 미안하고 고맙다며 그냥 가셨고, 다음날 아침 이발사는 출근하다가 이발소 문 앞에 신부님이 보내신 귀한 포도주(원래 양주라 하셨지만ㅋㅋ) 열 병이 놓인 것을 보았답니다.
오가는 정성에 행복해진 이발사가 그 날도 열심히 일하는데, 이번엔 목사님 한 분이 이발을 하러 오셨답니다. 아주 까탈스럽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던 목사님은 돈을 안 받겠다는 이발사의 말에 신이 나서 가셨대요. 다음날 출근길에 이발사는 스님과 신부님을 떠올리며 은근 기대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는데 이발소 앞에 도착해보니 목사님이 친구 목사님 열 명을 데려와서 큰 소리로 외치고 있더란다. "여기, 목사는 공짜로 깎아준대!"
아이들이 죽는다고 웃었고 저도 웃었습니다. 설교하시던 목사님이 '좋은 것은 이렇게 나누어야 하는 거죠?'하며 아이들에게 아멘을 강요(?)하셨으나 아멘 소리는 그닥 크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웃었다는 것은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 스님, 신부님, 목사님에 대한 사회의 보편적인 인식을 반영한다는 방증일테고 아멘 소리가 작았던 것은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방증이겠지요. 왜 우리는 이토록 스스로를 자조하는 모습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런데 문득 '그 이발사가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셨다면?'하는 물음이 생겼습니다. 시간과 자원이 유한한 이발사는 자신이 베푼 것에 물질로 보답해준 스님과 신부님을 더 좋아하겠지만, 무한하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증거하고 자랑하는 목사님이 너무나 사랑스럽지 않으셨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결코 그것을 감출 수가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45절의 나병환자도 그랬던 것처럼요.
많은 분들이 45절의 나병환자가 불순종하고 결국 예수님의 사역을 가렸다고 나누셨는데... 저도 동감하긴 하지만... 저는 그 나병환자의 흥분한 마음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번주 설교 예화가 참 은혜스러워서 블로그에도 같은 글을 적었었는데... 이렇게 같은 감동을 주는 큐티를 나누게 되어서 너무나 행복합니다. 예수를 자랑하는 자... 되겠습니다.
@hayate_Korea
오늘 새벽 2시부터, 태어난지 2개월된 딸아이가 심상치 않아 응급실에 갔었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는 시간이었네요. 이렇게 아침에 출근했는데 치유에 관한 말씀을 묵상하니, 주님이 저를 위로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주님은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이라면 쨔잔 하고 고치면 될텐데 고치기 전에 먼저 환자를 위로하고 마음을 같이 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주님만큼 저희를 더 잘 아시는 분은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주님 사랑합니다.
@eripu
목사님은 앞쪽을 중심으로 보셨으니 저는 뒤쪽을 볼까요. :44절에는 '아무 말도 하지 말고'와 '네 몸을 제사장에게 보이고 모세가 명한 것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라고 명령하고 계십니다. 여기에서, 예수님이 아무에게도 예수님 자신이 고쳤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한 것은 그저 자연히 나았으니 이제 나도 정한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율법사회에 속한 것을 증명하라, 그리고 나를 홀로 내버려두라는 의미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그 예상은 여지없이 깨집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나가서 많이 전파해서 널리 퍼지게 했습니다. 왜 여기에서 나병환자는 온전히 순종하지 않았을까요. 아니 이런 계약의 파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고치지 않기 위해 도망가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된, 그러나 결국 찾아내어졌기 때문에 병자들을 고쳐주셔야 했던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셨을까요. 이전에 묵상했듯이 예수님의 사역은 말씀에 더 중점을 두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보다도 표적을 바라는 대중들을 위해 예수님은 과연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셨을까요.
@movenations
나병환자의 정직한 자기고백, '나는 아프다'라고 솔직히 말할 수 있고, 도움을 구하는 자세가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생각합니다. '원하시면' 이라는 그의 고백이 와 닿습니다. 그 원하시면 이라는 말 안에 그 사람이 살아왔던 '슬픈' '억업된' 사회의 맥락을 유추해볼 수 있을 거 같아요. 아무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었을테고, 아무도 그를 가까이하지 않았을테니까요. 가끔은 저도 이 나병환자와 같은 마음, 아무도 알아줄 수 없고 고쳐줄 수 없고 가까이 할 수 없는 '아픔'이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것은 사람에게 하소연한다고, 요청한다고 이해받을 수도 고침을 얻을 수도 없는 것이지요. 그럴 때 어두운 구석에 팽하니 앉아 닫혀있는 것보다, 참으로 고치실 수 있고 불쌍히 여기실 수 있는 분에게 겸손히 그리고 정직하게 고백하여야 함을 느낍니다. 예수님은 그런 나병환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도움주기) 원한다' 라고 하실테니까요.
@yoonjeee
원하시면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어디서 이런 믿음이 나왔을까요? 참 감격스럽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믿음을 기대하시겠죠? 예수님은 또 어떻습니까?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셨으니요.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바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졌으니 그 감동이 얼마나 큰지요. 나병환자와 예수님이 서로 감동을 주고 받는 모습니 더욱 감동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렇게 감동을 주고 받는 은혜가 있으시길 기대합니다.
@yisangjun
예수님은 고침을 받은 나병환자에게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라고 명하셨지만 나병환자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이 치유되었음을 전합니다. 이로 인해 예수님의 사역이 방해받는 일이 생겼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좋은 의도로 어떤 일을 한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는 다른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항상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 나의 뜻이 아닌 주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살겠습니다.
@wonjho
오늘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몸이 깨끗해진 이후에 모세가 명한것을 제사장에게 드리라고 하는데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아마 나병환자의 처분에 대한 율법되로 하라는 것 같은데... 예수님도 율법을 지키시면서 율법을 완성해가시는 그런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의 말씀을 묵상하며 나병환자의 믿음의 고백과 함께 예수님의 뜻이 참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물론 믿음으로 고백하기도 쉽지 않지만 우리가 항상 고백하는 것이 예수님의 뜻에 맞아야 된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고백을 했으면 하네요...
@jemeone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이것이 주님께서 우리를 향한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늘, 항상 우리를 향해 손 내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내가 어떤 삶을 살던지, 뒤틀리고 왜곡된 내면을 가지고 살던지간에, 어떠한 비참하고 죄악된 삶을 살던지간에... 나를 향해 늘 손내밀고 기다려주시는 주님. 언제나 성실한 모습으로 영원하고 무한하고 변치 않는 사랑으로 손내밀고 계시는 주님. 그래서 저는 오늘도 부족한 모습 그대로, 내 있는 모습 그대로, 부끄러움에도 불구하고 주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습니다. 손내밀고 계신 주님, 언제나 기다려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 오늘도 저는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라고 고백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며 그분으로 인해 치유와 회복을 얻습니다. 손내밀어 주시는 주님 앞에 이제는 내가 그분의 손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손을 내밀고 손을 잡는 것. . 제가 이 본문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주님께서 이적을 보이시고 그것이 알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모습 또한 제게 큰 감동과 의미로 다가옵니다. 이런.. 말이 너무 길어질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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