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8일 월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2:18-22

@hanbaek
금식에 관한 논쟁입니다. 요한과 바래시인의 제자들은 금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제자들은 먹고 마셨습니다. 성경에서 예수의 적대자들이 예수님을 비난한 글을 정리하면 '먹고 마시기를 즐기며 죄인과 세리의 친구'라고 합니다. 우리는 먹는 일과 마시는 일을 신앙의 표준으로 삼거나 타인을 향한 비난의 근거로 삼습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한대로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주의 영광을 위해서 하는게 신앙입니다. 지금 무엇을 먹거나 마시는게 문제가 아니라 중심이 문제이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중요합니다. 기독교는 십가가와 부활 즉 고난과 영광, 눈물과 환희, 아픔과 감격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종교입니다. 금식하면서 애통하는 순간도 필요하고 먹고 마시며 행복해 하는 감사도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의 시각이 좁아 하나만을 향하여 나아간다면 이는 반쪽짜리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갈 때에 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먹는게 영광이 된다면 먹고, 금식이 영광이 된다면 안먹으면 됩니다. ^^ 중요한건 우리가 먹든 마시든 무엇을 하든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며 주께서 우리의 마음을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금식할 때도 먹고 마실 때도 나는 하나님의 사람입을 고백합니다. ^^
@yoonjeee
새것이라고 말하는 순간부터 옛것이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다만 옛것에 매몰되어 새것을 보고 누리지 못할까 하여 조심조심 돌아볼 뿐입니다. 사실 저는 옛세대와 새 세대 사이에 낀세대여서 나름 균형감각을 갖고 산다고 위로해 왔는데, 너무 많은 변화가 어지러운 지경입니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의 심정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왜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습니까? 충분히 물을 만 했다고 봅니다. 어쩜 그게 바로 내 모습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신랑과 함께 있는데, 지금 금식할 때 아니다.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를 것인데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다.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담아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하고 받아 들였지만 가슴으로 동조하고 있지만, 나의 손과 발, 그리고 생각과 세포 하나 하나까지 그렇게 반응하고 있는건지요. 사실은 저를 좀 힘들게 하는 이가 있습니다. 새로운 세대라서 다른 것이겠거니 이해하려고 애쓰는데, 많이 힘이 드네요. 20년전에 나를 돌아보면서 비교하는 것으로는 도저히 아니다 싶습니다. 새로운 것은 단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쉼없이 자신을 돌아보며, 새롭게 세워져가야 하는 작업인 것을 다시 한번 묵상합니다.
@jinsungk
바리새인들은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이 행했던 일들은 오늘의 성도들이 따라하지 못할 것 같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며 금식하며 기도하는 간절함과 그러한 '단순한' 신앙이 오늘 제게도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지진이 나서 고통받고 있는 나라를 위해, 또한 저희 주변의 사람들과 제 삶을 위해 금식하며 기도할 수 있는 제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는군요. 주소록을 보니 많은 분들이 교회에서 열심히 섬기시는 것 같습니다. 지치지 마시고, 은혜받으시는 주말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hayea00
나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신랑을 빼앗길날에 금식하게 된다는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하라는 말씀이 아니였을까..하는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새포도주는 새부대에.. 라는 말씀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으로써, 그에 걸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성경을 읽을수록.. 참 부끄러워지고, 회개할 일만 쌓여갑니다. ㅠㅠ
@eripu
정말 시대에 맞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방법이 있는듯 합니다. 이 말세지말이라고 불리우는 시대에 알맞는 섬기는 방법이 있을 것이고,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이 섬기기에 적합한 방법이 있었겠죠. 하지만 그것은 큐티의 범위를 넘어가는듯 해서 생략하고... 전 차라리 :19를 보겠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혼인집 손님과 신랑을 통해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보여줍니다. 요한계시록에서 교회가 신부이다면 예수님이 신랑인 것 처럼, 여기서도 예수님은 친히 자신이 혼인집 손님과 신랑이 같이 있다는 것을 통해 예수님이 기쁨과 행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물론 무서우신 하나님과 공의로우신 하나님을 많은 사람들이 묵상하기는 하지만, 예수님이 기쁨을 주시는 분이심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nahzen
18절을 조금 주의깊게 보게 되었습니다.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 금식을 하는데, 예수께로 와서 '왜 당신 제자들은 금식을 안하느냐'고 묻는 사람은 요한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이 아니라, 옆에 있던 사람들이었나 봅니다. 우리도 모두들 하나님을 섬긴다고는 하지만, 각자 방식이 다를 수 있는데 당사자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자꾸만 묻습니다. "쟤는 뭣도 하고 뭣도 하는데 넌 왜 안하니?" "저 교회는 빈민들을 위해서 선교사역을 하는데 왜 이 교회는 해외 선교한다고 국내 빈민 사역은 안하나?"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참 난감하기도 합니다.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하지만, 모든 일을 모든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이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비율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닌데... 그것을 엣지있게(^^) 표현할 자신이 없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답변(19~22절)의 내용을 제가 아직 다 이해하진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금식하는 자들이 가진 신념이나 가치관과 예수님 제자들이 가진 신념이나 가치관이 다르다는 것을 명확히 하신 것 같다는 느낌만 어렴풋이 알 것 같습니다. 적어도 세상 사람들이 '비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을 참소하는 말'에 휘둘리지 말아야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세상의 참소에 승리하는 지혜와 담대함의 영이 함께 하길 소망합니다.
@YoungYeon
주말이라 그런지 참여하시는 분이 적으시네요^^ 오늘 아침 새벽기도회에 가수 "션"이 간증을 했습니다. www.onnuri.or.kr 사이트 가시면 가운데쯤 오늘의 방송에 [특별새기도회] 오늘날짜 방송 보실 수 있습니다. 정말 많은 감동이 있습니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그분의 말씀은 거부합니다. 남자친구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그의 말은 듣지 않고, 그가 잘 나온 사진을 바라보면서 사진만 사랑하고 있는 것은 너무 이상한 일이죠. 예전에 이런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내가 받아들일 수있는 것만 받아들이고 힘든 것은 자기합리화 작업을 통해 스리슬쩍 넘어가고...요즘 많이 느끼는 거지만 항상 중심에, 본질에 집중해야한다고...금식을 왜하는지는 잊어버리고 형식에 얽매여 정작 중요한 마음은 뒷전인 바리새파의모습이 오늘 나의 모습이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하루도 새마을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xma1225
항상 엄숙하고 고행을 가까이 하는 것은 절제의 의미에서 추천할만 하나 기쁨을 죄악시 해선 안됩니다 특히 많은 기도시간과 고행과 선행을 하더라도 그기준을 남에게 적용하며 비판하는 것은 옳지 못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안에서 기뻐하는 자와 같이 즐거워하고 슬픔에 빠진 사람과 함께 울며 위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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