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18일 월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2:23-28

@hanbaek
안식일의 근본 개념에 관한 말씀입니다. 안식일의 출발점은 약자보호법입니다. 안식일은 매일 가사노동과 잡무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는 부자를 위한 법이 아니라 휴일도 없이 노동에 열정할 수 밖에 없는 빈자들을 위하여 세우신 율법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는 주인도 종도 나그네도 모두 쉬는 날입니다. 안식일의 쉼이란 하늘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땅위에 사는 모든 인간 즉 부자와 빈자의 차별이 없는 쉼의 날입니다. 이렇듯 사람을 위하여 생겨난 안식일이 제도화되고 율법으로 수많은 금지사항이 생겨나자 안식일에 무엇을 하면 일이고 안하면 일이 아닌지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물건을 몇키로 들으면 일이 아닌지? 얼마까지 걸어야 일이 아닌지? 별걸다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일일이 이걸 규제화하게 되는 코미디가 발생합니다. 오늘은 주님의 날입니다. 안식일은 약자를 위해 세우신 날이라면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며, 월부터 금요일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하여 주신 날입니다. 모든 날은 주님께서 허락하신 날이며 주님께 영광돌리는 날입니다. ^^ 율법과 규제가 아닌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이 넘치는 날마다의 삶이 되길 기원합니다.
@eripu
정말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주일을 그럭저럭 보내지만, 옛날의 안식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억압에 억눌려(?) 살아갈 수 밖에 었었던 시대였습니다. 안식일의 정신보다도 안식일의 '방법'에 집착하게 되었고, 그래서 안식하기보다도 안식하는 방법 때문에 안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안식일보다도 안식일을 있게 한 하나님이, 그리고 안식일을 누릴 때 평안을 얻을 사람들을 더욱 강조하십니다. 우리도 주일을 율법적인 삶으로 살아가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리며 살아가야겠습니다.
@hayea00
살아가면서 율법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규제도 당연히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규제와 율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를 잊어서는 안될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 바르게 섬기기 위해 필요한것이 율법입니다. 율법을 무시해서는 안되겠습니다. 하지만, 율법과 규제로 인해 하나님 섬김이 방해받아서는 더더욱 안될것입니다.
@inpreson
트윗에도 올렸지만 '아이티는 저주받아 지진이 일어났다'라고 하는 기독교계 인사가 있었고 인도네시아 쓰나미때 '저들은 주일 않지켜서 저렇게 되었다'고 하였던 금란교회 모 목사님도 계셨고 그 분들과 바리세인들이 같은 관점이로 봤다는 생각이 듭니다. 율법이 하나님의 보하고자 하는 안내서가 아니라 자신들이 이용할수 있는 정죄의 도구로 만 본것이지요. 성경에도 분명히 이야기 했지만 누구를 정죄할 권리는 우리에게없습니다. 권면하고 경계할뿐이지요. 제자신도 정죄의 마음이 아닌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는 안식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nahzen
어제 큐티에선 금식 안한다고 참소하고, 오늘 큐티에선 안식일에 일한다고 참소하고... 바리새인들은 참 딱한 것 같아요. 하긴... 저도 다르지 않습니다. 저를 묶어놓고 있는 율법주의의 영들도 참 딱합니다. 아마 바리새인들은 '율법' 외의 다른 삶이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야말로 '갇혀 있는' 삶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저 역시 아주 오랫동안 타인의 참소에 대해서 '분노하며 저항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으리라고 상상도 하지 못하고 살았었습니다. 결혼하고난 후에야 마음이 넓은 남편을 보면서 타인의 지적에 내 잘못을 인정하고 협상하고 웃어넘길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저의 좁아터진 지경에 갇혀있다가, '아... 저렇게 반응할 수도 있구나. 저것이 더 좋은 방법이구나.'라고 느끼며 지경을 넓힐 도전을 받았을 때 제 안에 기쁨보다는 억울함과 수치심이 몰려왔었어요. '나는 왜 여태 이렇게 살았을까? 왜 아무도 나에게 저런 자유한 삶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저에게 사랑으로 도전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함으로 돌아와 회개하긴 했지만 당시 제 심정은 그랬습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우라'고 도전하시는 어제와 오늘의 복음에 대해서 바리새인들도 계속 억울함과 수치심으로 받았다면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적개심을 마음에 쌓은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성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무서우리만치 쉬운 일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가끔 저에게 제 자신을 가두고 있는 껍질을 깨고 나오라고 권면하십니다. 그것이 가끔은 억울하고 화가 나지만 그 분을 사랑하기에 앓는 소리를 하며 마지못해 질질 끌려나갑니다. 그렇게까지 저를 자유케 하시는 예수님이 참 감사합니다.
@xma1225
율법은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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