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28일 일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10:1-12 (2월28일)

1.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유대 지경과 요단 강 건너편으로 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거늘 예수께서 다시 전례대로 가르치시더니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 4. 이르되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7.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8.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9.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더라 10. 집에서 제자들이 다시 이 일을 물으니 11.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12.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 가면 간음을 행함이니라

@hanbaek
오늘 아침에 들려온 칠레에서 발생한 8.8 진도의 지진과 이 때문에 생겨난 쓰나미의 소식은 참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이 사건이 지구반대편 칠레가 아닌 우리 주변에서 발생했으면 얼마나 끔찍할까를 생각하며서 그들의 아픔에 동참할 방법을 생각해 봅니다. 마음은 무겁지만 말씀이 주실 은혜를 기대하면서 묵상에 임합니다.

본문은 이혼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남성위주의 사회였습니다. 여성은 숫자에도 들지 않았고 여성의 권리는 너무 낮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본디 일부다처제의 사회풍속에서 살았고, 일부일처제가 정착된 이후에도 남자는 원하기만 하면 값을 치루고 이혼증서를 내주어 아내를 내쫓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밥을 태워도 이혼사유가 되었습니다. ㅠㅠ 중동지역은 지금도 일부다처제입니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한 남자가 아내를 5명까지만 데리고 살 수 있습니다. 돈과 욕심이 많은 남자는 5명의 아내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아내를 얻습니다. 하지만 불법이기 때문에 이전 아내중 한명과 이혼하고 다른 아내를 맞이한다고 합니다. 눈가리고 아웅하는거지요. 남성위주의 사회는 이렇게 여성들에게겐 고통과 눈물을 가져도 줍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혼에 관하여 "하나님이 짝지워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라고 말씀하심으로 이혼을 금지하고 여자의 인격을 높여 주었습니다. 자신의 아내를 버리지 말고 평생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이 만나게 하시고 교제하게 허락하신 천사와 같은 사람이라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가족을 피의 관계로 맺어주셨듯이 아내도 친구도 은혜로 묶어 주셨습니다.오늘 내게 주신 하나님의 사람을 평생 동반자로 여기고 함께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욕심을 제어하고 내게 짝지워 주신 사람으로 만족하고 기뻐하는 은혜의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eripu
벌써 2월의 마지막 날이 되었습니다.^^
드디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그리고 예수님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자주 보지 않을까 싶은데, 예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난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이기까지 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험 들게 하려고, 예수님을 넘어지게 하려고 시도했지만, 그 때마다 예수님은 이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지혜로 모든 문제들에 답을 주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모든 지혜 위에 뛰어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마 12:41~2).
오늘 첫 공방은 '이혼'에 대한 것입니다. 목사님 말씀을 참조해보면 정말 과거에는 일부다처제가 허락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이들의 마음이 완악함으로, 이혼을 못하게 하면 이들이 더욱 하나님께 완악해 질까봐서 어쩔 수 없이 허락했던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제 새로운 질서가 생기면서, 예수님은 이것이 그들을 사랑하사 잠시 어용하신 제도일 뿐, 이것이 진리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하십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 참아 허용하시는 것일 뿐이지, 실제로는 하나님이 좋아하지 않으시는 것도 우리 삶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문화를 되돌아보고, 돌이키며,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가도록 노력합시다.

@hayea00
목사님이 주례를 서시는 결혼식장 갈때마다 듣는 설교 내용이군요...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수십년을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서 살게 되면,
아무래도 여러가지 문제가 있을 수 밖에 없고.
때론 그걸 견디지 못해서 이혼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물론 그 상황에 처해보지 않은 사람이, 함부로 말 한다는건 안되는 말씀이겠지만..
그래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을 믿고, 두려워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더 생각하고 인내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YoungYeon
이틀만에  찾아왔습니다. 오늘 질문의 의도는 답을 원해서라기 보다는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또 본질을 꼬집으십니다. 모세에게 준 명령도 자의적으로 해석하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원하지 않던 답이었겠죠. 그러나 본질을 얘기해도 받아들이지 않는게 우리 모습인가 봅니다. 제자들이 집에와서 또 물어봅니다. 아까 말할때 제자들은 뭐했는지...예수님이 대놓고 말씀하십니다. "간음"이라고.
우리는 어리석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알려주십니다.  
교회안에도 이혼이 있음을 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눌때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혼한 사람을 마음대로 판단할 수도 없습니다. 옳고 그름은 오로지 하나님 만의 고유영역이니까요...
이 말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내마음대로 해석하여 삶의 방식을 정하는 것은 없나? 하나님 앞에 순수하고 거룩한 삶을 살고 싶은데 어리석어 실수 하는 건 없는지 돌아보기 원합니다.


2010년 2월 27일 토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9:38-42 (2월 27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장애인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45.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버리라 다리 저는 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빼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50.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hanbaek
산상수훈에도 기록된 말씀입니다.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주님의 강한 경고입니다. 우리의 삶에 있는 욕심을 완전히 버려야 한다고 주님은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그것도 손, 발, 눈 세번에 걸쳐서 강조에 강조를 더하십니다. 주님이 이토록 강하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욕심을 버리는게 어렵기 때문입니다. 에릭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에서 인간은 소유를 위해 살아가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네 인생은 유한을 살아가기 때문에 소유는 안개와 같이 사라짐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살아가는 동안 우리의 욕심을 제어하기가 너무나 어렵기에 주님은 욕심을 가지게 하는 모든 요소를 과감히 끊어버리라 말씀하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가 드리는 기도제목이 혹시 욕심으로부터 온 것은 아닌지 우리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무거운 이유가 일용할 양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타인과 비교하거나 미래를 위해 많이 쌓아놓은게 없어서라면 우리는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무엇을 소유해서 의미있지 않고 오직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의미를 지니고 이 땅에 존재하면서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삶을 살아감으로 의미를 지닙니다. 이를 우리가 잊지 않고 살아야 우리는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어제 만났던 한 집사님이 자신은 하나님을 만나고나서 욕심이 사라지고나니 너무나 평안해 졌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우리가 사욕을 버리면 주님이 기뻐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이 본질적 존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네가지 직분을 주셨습니다. 목사, 장로, 전도사, 집사 의 네가지가 아니라 빛, 소금, 편지 그리고 향기의 직분을 주셨습니다. 본문은 특별히 소금의 직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소금없이 먹는 음식의 맛이 어떨지 생각하면 끔찍합니다. 요즘도 그런데 성경이 쓰이던 시대에는 소금이란 맛을 내는데 필수불가결한 결정적인 존재였습니다. 맛을 내라고 소금을 넣어도 넣어도 아무런 맛이 안나면 그 소금은 버려야합니다. 왜냐면 다른 소금과 섞이면 양조절에 실패해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소금의 직분을 받았습니다. 세상을 맛나게 하고 해복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합니다. 나로 인하여 이 땅이 맛깔나는 세상이 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신 목적은 바로 이것임을 잊지 말고 나를 녹여 맛을 내는 참 소금이 되길 기원합니다.

@hayea00
세상에 살면서 참 지키기 힘든 말씀 인듯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기 위해선, 세상 것은 버려야 하는데....
그래도, 기도하면 주님께서 도와주시리라 믿습니다.

@eripu
어제 노문환목사님이 두번째로 교회 금요철야에 왔습니다.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능력이 참 능력이라고 말씀을 전하시더군요. 정말 피흘리기까지 죄와 싸울 줄 아는 실력이, 그리고 그러한 마음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싸우지 않으면 결국 마귀의 종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옥에 가면 정말 고통에 절규할 일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소금의 맛을 살려야 합니다. 오늘도 그렇게 살아갑시다.

2010년 2월 26일 금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9:38-42 (2월 26일)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hanbaek
오늘 아침에 주시는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폭넓은 영성을 가지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주님께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는 하나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다고 보고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고 주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해도 우리와 함께 하지 아니하면 금지해야 한다는게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영성을 가진 사람과는 함께 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요즘의 신앙인들과 비슷합니다. 예전에 섬기던 교회는 통성기도를 안하는 교회였는데, 새벽기도 후에 통성으로 혼자 기도하시는 분을 권사님이 나가시면서 옆꾸리를 퍽 치고 가셨습니다. 우리교회에서는 소리내면 안된다는걸 알려주신거지요. 생각해보면 둘다 기도하는건데 소리를 내면 어떻고 안내면 어떻습니까? 손을 들고 뛸 듯이 찬양하면 어떻고 묵상하듯 조용히 찬양하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세상의 사람들이 피부가 다르고 언어가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듯이 우리의 영성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신앙적 노선이 달라도 우리 모두는 한 하나님 안에서 한 주님을 섬기는 동역자란 의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교회안에서 나와 의견이 다르거나 신앙적 표현이 달라도 모두 품고 함께 걸어가는 성숙함을 주님은 요청하십니다 .

주님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를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싸움이 일어났을 때, 이 땅에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간에 서기를 좋아합니다. 이쪽 편이나 저쪽 편에 서면 나중에 공격을 받을게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한 사람일수록 한쪽으로 가지 못합니다. 그런데 양쪽에 있는 사람들은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비난하기 일쑤입니다. 힘없고 말없는 대다수의 중립은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피폐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나와 함께 하지 않아도 나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우리 편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마음을 넓혀서 중립적인 곳을 집중적으로 선교하고 섬기고 나눠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그들이 우리를 위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으로 섬기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더욱 더 확장되리라 확신합니다.

주님은 주님 안에 있는 자들을 섬기면 상을 얻고 실족케 하면 엄벌에 처하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오늘 내가 만나는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실족케한다면..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적 두려움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나의 판단과 내 의지에만 기대지 말고 주님께서 어떻게 생각하실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나와 만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실족한다면 우리는 큰 죄를 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가 스치는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나의 섬김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상을 받게 될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이 내게 보내신 천사라는 마음으로 섬기면 하늘은 기뻐하시고 땅은 즐거워합니다. 이 마음으로 오늘도 섬김의 길을 걸어가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습니다.

@eripu
성경에서 가장 모순적으로 보이는 말씀에 도착했습니다. 예수님이 앞에서는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마 12:30)이라고 해놓고 나서는 여기 와서는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가 우리를 위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바꾸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약간 생각해 봤습니다.
앞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면에 뒤의 말씀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사역을 하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겠죠. 하나님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모든 사람들을 이미 인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과 신학 사조가 다르다는 이유로 (물론 신천지 같은 이단은 즐.) 하나님이 그 모든 사람들에게 베푸시는 사역에 대해 심하게 단정짓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요. 특히 은사 관련된 부분들은 앞으로 이러한 정죄가 심해지지 않을까 예상해 봅니다.
랄까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을 간단히 정죄하고 '너는 아니야'라고 이야기하기 보다는, 이제 사랑으로 덮어주는 그런 용납함과 정죄함 없음이 필요할 때가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도 그래서 그렇게 실족하게 한 사람을 만들었을 때 자신에게 돌아오는 큰 minus advantage를 말씀하고 계시죠. 결국 실족한 사람을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남을 차별할까요? 아니면 감싸주고 이해하고, 중보기도로 도울까요?

@graceviky
제자들이 그랬든 저도 때로는 폐쇄적일때가 있습니다. 우리교회, 우리가족.. 우리라는 이름으로 어떤때는 다른 사람을 상처 입히기도 하지요.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세상속에서 교회 다니는 사람을 만나면 어찌나 반가운지..(트윗할때도 그렇지 않으세요?) 하지만 주님은 이런 폐쇄적인 우리들을 기뻐하지 않으실꺼예요. 모든이에게 사랑으로 다가가 결국엔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기 원하시겠죠? 넓은 마음 주세요 주님!!

@YoungYeon
어제까지 교회에서 "창조와 성령"이란 주제로 세미나를 했습니다. 강사로 오신 분들은 저희 교회 목사님도 계셨지만, 주로 타교회 목사님들, 창조과학을 연구하시는 대학교수님들이었습니다. 교회와 종파는 달라도 모두 같이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과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 설교하셨고, 정말 큰 은혜와 은사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을 따라 사는 자들에게 함께하십니다. 당시에도 바리새파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여호와의 이름으로 능력을 펼치던 사람들이 있었고, 예수님은 그들도 결국 같은 편입라고 하십니다. 편가르기 하지는게 아니고, 삼하2:30에 나를 존중하는 사람들을 내가 존중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내 맘속에 종파를 떠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을 존경하는 마음 갖기를 기도합니다. 다만, 이단은 제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으로 장난치는 이들은 분명 심판이 임하리라 믿습니다.

@tirol70
오랫만에 큐티에 참여하네요.

'무리'를 지으려는 사람들의 목적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결국은 '무리'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과 자신들을 분별하고 싶어하는거겠죠.그 분별의 목적은 자기 보호가 될 수도 있을 것이고, 자기 이익의 추구가 될 수도 있을겁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 말씀에서 제자들이 그어놓은 편 구분의 선을 지우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써 제자들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선민의식' 또는 '우월의식'을 깨뜨리고 계신 것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다른 이들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일러주십니다.
늘 나의 시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관점을 가지고 세상을 볼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hayea00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

참 마음에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더욱더 믿음을 굳히며 살아가겠습니다.

@owlnme
요한이 금한 것이 예수님을 위해서일까요? 아니면 자기자신을 위해서일까요? 교회간의 싸움이 예수님을 위해서일 까요? 아님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일까요? 제자들끼리 자리를 놓고 다투는데 다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하는 것을 보면 시기심이 생겼던 것은 아닐까요? 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운 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자신의 배를 불리는 사람들은 어찌해야 하는가 입니다. 우리는 가라지와 알곡을 구분할 능력이 없으므로 일단 예수님의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 속한자로 인정하고 물 한그릇이라도 대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 싶습니다.
목사님이나 다른 사람들을 나누고 편가르고 점수매기는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님을. 그 심판의 권능은 오직 예수님께만 있음을 고백합니다. 예수님의 권한을 넘보는 교만을 조심하기를 또한번 다짐합니다. 교만하지 말자.판단하지 말고 늘 다른 일꾼들을 섬기자.

2010년 2월 24일 수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9:30-37 (2월 25일)

30. ○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 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 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35. 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hanbaek
본문에서 주님께서는 곧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다고 제자들에게 두번째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아직 제자들은 전혀 긴장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제자들은 길을 가면서 서로 누가 더 큰가하면서 쟁론을 했습니다.  너무나 분명한 대조를 이루는 주님과 제자들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향한 길을 한발 한발 걸으시면서 마음으로 탄식하시는데 제자들은 그 주님이 왕이 되시면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지에 관하여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본문은 주님의 마음과 제자들의 논쟁을 함께 보여줌으로 상황을 더욱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였습니다.

십자가와 영광이란 두개의 갈림길에서 언제나 주님의 선택은 십자가 입니다. 과거에도 그러셨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현재도 마찬가지 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교회가 권력화 되거나 영광의 길로 걸어가는걸 보시면 이상하게 생각하십니다. 주님이 가신 길이 십자가의 길인데 주님을 선포하는 사람이 영광의 길을 간다면 그건 노중에 싸우는 제자들과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제자된 삶을 살아가는 우리가 가야할 길은 높은 영광의 보좌가 아닌 십자가임을 주님은 다시금 알게 하십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주님이 제잗르에게 주시는 교훈 입니다. 주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높은 자는 섬깆는 자라고 주님은 다시 상기시켜 주십니다. 주님은 잡히시던 날 밤에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면서 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의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겨줌이 마땅하다 말씀하셨습니다. 바로 이 주님은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계속해서 섬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는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모델을 따라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권면입니다.

섬김이란 진정으로 마음이 낮아져야 가능합니다. 자신이 높다고 생각하면서 하는 섬김은 우월감이 표시되어 오히려 섬김받는 사람에게 모멸감을 줍니다. 심장으로부터 나를 낮추어 타인을 높이고 종의 마음으로 돌아가야 진정한 섬김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섬김은 감동을 주며 섬김받는 사람도 변화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당시에 숫자에도 세지 않았던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주님의 이름으로 이 어린아이를 섬기는게 주님을 섬기는거라 말씀하시는 이유도 바로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오히려 버림받은 사회적 약자를 주님이라 생각하고 섬기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진정한 제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내 안에서 자라나는 모든 교만의 씨를 누르고 세상에서 가장 낮은 자가 되어 섬기는 오늘이 되면 좋겠습니다. 나는 섬기고 나누고 드리는 삶을 살아갈 때에 주님은 우리를 높이시고 참 제자로 세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이러한 섬김을 통한 제자됨의 복이 우리 안에 깃들기를 기원합니다.

@YoungYeon
예수님의 사랑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던 제자들은 의외로 담대하게 누가더 잘났냐는 또 따집니다. 사람들이 워낙 서열정하는걸 좋아해설랄까요. 우리나라도 만나서 친해지면 바로 나이, 학번, 군대, 등등 줄을 한줄로 쫘~악 세우지 않나요? ㅎㅎ 예수님께서 가장 베스트한 첫째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십니다. 가장 잘 섬기는 자가 가장 베스트라고, 저도 오늘의 삶에서 가장 잘? 섬기는 자가 되는 연습을 하보렵니다. 어린아이를 섬기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아는 저이기에...감사함으로 같은 어른을 섬기는 하루 되길 희망합니다.

@eripu
예수님이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나라를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다시 한번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예견하는 장면을 보고 있습니다. 여전히 많은 제자들은 예수님이 그러한 길을 가리라고 믿고 싶지 않았고, 또한 그러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에서는 동일한 말씀을 듣고 '제자들이 매우 근심'했다고까지 합니다 (마 17:23)
그래서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낮아질 것을 주문합니다. 열두제자 앞에 대놓고 어린아이를 자기보다 더 높이십니다. 물론 열두제자들이 나중에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게 되겠지만 (마 19:28), 그러나 그 우편에도, 좌편에도 있을 사람도 예수님이, 하나님이 선택하시는 것일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모두 낮아집시다. 하나님 이외에 아무도 높이지 맙시다.

@hayea00
겸손히 예수님을 닮아, 스스로 높아지려 하지 않고, 겸손해지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owlnme
저희 아이가 8개월쯤 되었을때 젖먹이 아들을 맡기고 나온 길에 버스에서 내리는데 오토바이가 저를 쳐서 공중제비를 돌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순간 '아! 내가 죽으면 내 아이는 어떻하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다행히 멍만 조금 들고 무사했습니다.) 순위를 다투는 제자들을 보는 예수님의 마음도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돌아가신 후 뿔뿔히 흩어질 철없는 제자들. 아무리 설명을 해도 두려움때문에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 귀를 더 기울이면  삼일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알았을텐데도 '죽음'앞에 귀를 닫는 바람에 예수님의 부활을 기쁨으로 기다리지 못하고 제 갈길로 가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힘들다고 외면하지 않는 삶. 좁은 길을 선택하는 삶. 그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늘나라에서 '그래 너 참 잘 살았다' 칭찬받고 싶은데 두려움과 교만 두 가지가 늘 훼방을 놓네요.^^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9:17-29 (2월 24일)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hanbaek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영원히 기억할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 말씀은 우리가 언제가 암송하고 다니는 강하고 큰 무기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모든걸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우리는 기적을 맨들어 갈 수 있는 권능을 소유했음을 확인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그런데 이를 행하기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하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바로 믿음입니다. ^^

믿음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가지는게 아니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이 부분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는 성령의 은사 가운데 믿음을 언급하고 있으며, 로마서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는 주를 그리스도라 시인할 수 없다고 말씀하셔서 우리의 믿음이란 내 힘과 노력으로 생겨나는 산유물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주시는 선물이자 은혜임을 깨닫게 하십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귀신들린 아들을 둔 아버지는 이 사실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고백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주님을 향해 외칩니다. 내가 믿나이다. 그런데 그의 심장엔 온전한 믿음이 없다는 사실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즉각적으로 기도합니다. 나의 믿음없음을 도와 주소서라고 말입니다. 이는 주님 제가 믿음이 없으니 나를 도우셔서 제게 믿음을 주시고 주님이 주신 믿음의 분량을 보셔서 아들을 고쳐주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참으로 옳바른 기도이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였습니다. 그는 겸손하고 솔직한 고백이 응답되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믿음 있다고 생각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바로 제자들과 같은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패하기 쉽습니다. 나의 믿음은 철저히 하나님의 선물이며 주님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인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미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하시기 위하여 믿음을 주셨습니다. 주님의 더 큰 은혜와 능력을 받는 통로인 믿음도 주님이 전적으로 주시는 선물임을 기억하고 오늘 우리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믿음있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우리가 간구하면 믿음의 은사로 채우시시라 확신합니다.

고등학교 2년의 시간동안 저는 새벽기도에 나가서 매일같이 믿음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순종하는 믿음과 다니엘의 담대한 믿음 그리고 욥의 인내의 믿음을 달라고 매일 간절히 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용기가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도가 있었기에 주님은 제게 하나님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셨다고 믿습니다. 바울사도가 나의 나된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말하는 중심에는 내가 가진 모든게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하는 고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달라고 간구하여 하나님의 더 큰 은사를 소유하는 믿음의 복된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

@YoungYeon

하나님의 말씀이 가슴을 찌르는 아침입니다. 저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를 해본지 오래되었고, 어느새 나도 믿음이 있다고 생각했나봅니다, 어제 밤부터 걱정이 들어오더니 새벽에 일어나 예배도 안가고 자버렸네요. 피곤하기도 했지만,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내맘속엔 두려움과 걱정이 들어오네요. 오늘 아침 정말 하나님이 하시지 않고는 사방이 다 막힌 상황에서 "믿음"을 달라고 구하는 기도를 해야겠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제게 새 희망을 심어주셨는데, 걸려 넘어지지 않고 큰 승리를 오늘 보게 해달라고 기도하겠습니다. 큰 믿음과 지혜와 용기를 달라고, 문이 열릴때까지 기도하겠습니다. 함께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교회에서 해야할 일들이 많은 오늘과 내일입니다. 일하는 시간 말고는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gracelim7    

19절 예수님께서 책망하시는 모습이 주님을 따르며 그렇게 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정작 다급할 때는 어떤 도움도 될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생각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매여 의심하기 보다는 갈렙과 여호수아의 담대한 믿음으로 간구하며 지금 있는 자리에서 주님의 역사가 계속 나타날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hayea00    

개인적으로 참 축복된 오늘 입니다.

"아름 다운 하늘 나라 허락하시고, 내 모든것을 예비하시네" 라는

"낮은 자의 하나님" 이란 복음성가로 아침을 시작해서 감격스러웠는데..

 

오늘의 큐티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라고 하시는군요.. ^__^

 

하나님께 감사 기도 드려야겠습니다.


@graceviky    

전 항상 제 믿음을 의심합니다. 이런제게 하나님은 항상 믿는자는 능치 못한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걸 알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절 반성해 봅니다. 항상 믿음으로 깨어 기도하기 원합니다. 또한 온전한 믿음도 기도로 간구하기 원합니다.


@johnkang0125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이 고백이 나의 고백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인생 대다수의 고백일것입니다. 할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 이 대답에 주님께서는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때 아비의 대답이 나의 마음을 저리게 만들었습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벌써 2010년도 2달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는 시점에서 나도 이 아비와 같은 믿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 하실수 있으시면 도와주소서. 그러나 주님은 나에게 더큰 믿음을 보기 원하셧고 아비의 고백 또한 듣고 싶어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주님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속에서 귀신들린 아이의 아비와 같은 고백을 드립니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오늘도 주님 앞에서 믿음으로 살아보길 기도합니다.

2010년 2월 23일 화요일

2월 22일 성경공부 마가복음 5장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9:9-13 (2월 23일)

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9: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9: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9: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hanbaek
주님은 변화산에서의 사건을 부활의 날까지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입단속 시키십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하지 말라하셨을까요?

무엇보다도 말해도 믿을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서 변화된 사실도 그렇거니와 그곳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참람되게 여기고 오히려 돌을 들어 치려고 할겁니다. 주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만 해도 돌을 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차라리 조용히 입을 닫는게 나아 보였을지 모릅니다. 매일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던 수도사가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자 기절해서 죽었다는 웃지못할 예화가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 작은 기적은 신뢰하지만 너무 커다란 기적은 아예 신뢰하려고조차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나의 이성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 중 하나입니다.

또한 주님은 떠벌리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때론 오해를 받고 비난과 채찟에 맞아도 어린 양과 같은 모습으로 한발한발 십자가를 향하셨습니다. 변화산의 사건도 십자가를 향한 주님의 걸음이기에 주님은 세상에 알리기보다는 안으로의 결단을 다지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나아갈 때에 많은 오해와 비난이 쏟아져도 우리는 묵묵히 걸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채찍질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마음을 굳게 하여 주님만 바라보고 침묵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를 따를 때에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과 영생의 감격이 넘쳐납니다.

제자들은 엘리야가 메시야 전에 와서 모든걸 회복한다고 전하는 바리새인의 말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그 때 주님은 이미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문자적인 엘리야를 기대했습니다. 갈멜산의 승리와 바울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을 칼로 진멸하는 강한 선지자만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 후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할 만큼 인간적으로 힘겹고 안타까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리새인의 눈에는 인간적인 엘리야는 보이지 않았고 신적 권위를 입고 승천하는 엘리야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약대털옷을 입고 회개를 전하는 세례를 베풀 때에도 야인으로 취급했고 헤롯에게 잡혀 죽는 순간에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엘리야는 승리하는 강하고 힘있는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자칫 바리새인과 같다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강하고 힘찬 승리자가 아닌 로뎀나무 아래서 신음하는 엘리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하고 작은 예수로 살기 원하는 신앙의 동역자들에게서 눈물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눈물 또한 하나님의 위로로 씻겨짐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수많은 그루터기를 두셨고 동역자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 주님의 사람들과 함께 숨쉬고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개척해가는 믿음의 진보가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inpreson

@eripu
아직 봐야하지 않았지만 봐야할 영화로 점 찍어두고 있는 것이 <회복>입니다. 회복에서 메시야닉 쥬들의 모습을 보자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정통유대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 수가 1만 3천명으로 불어났고,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안 왔으니 예수는 닥치고 새로운 메시야가 오라고 항변하거나 조롱하지요. 그러나 고난받고 조롱 받는 메시야를 그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죽인 자신들의 과오를 짐에 지면서도 돌이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왕으로서의 하나님만 보려고 하고, 옆에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이슬람과 왠지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하나님에 대한 제한된 생각과 제한된 마음은 결국 우리의 생각도 막아버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graceviky
오늘 말씀 어려워요.. 흑..  예전에 목사님께서 이 말씀 가지고 설교 하셨던게 생각이 나서 그내용으로 묵상을 해봅니다. 주제는 우리를 항상 염려하시는 주님이었어요. 주님께서 고난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걱정하십니다. 변화산에서 본 것을 제자들이 세상에 알리면 혹 왕따 당할까봐 걱정하신건가봐요..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게 주시는 은혜를 너무 쉽게 발설하여. 예수님께 해가 될때가 있는것 같아요. 왜곡되게 전하기도 하고.. 나의 행동거지가 예수님의 위상에 해가되지 않을지 제 행실을 되새겨 봅니다. 항상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내 뿜는 제가 되어야 할텐데 말예요..

@YoungYeon
예수님은 하신 일들이 성경에 이미 다 기록된 것들어었으나 어리석은 제자들은 아해하지 못했고, 보고도 서로 질문하고, 하나님의 영광된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보고도 베드로는 어제 놀라서 헛소리 하기도 했죠...주님은 가장 가까운 제자들 마저도 이해 못할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갈길을 미리 준비하십니다. 미리 고난이 있을 것을 아시고 준비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 믿는 사람도 오늘 내 십자가를 지고 하루를 살아가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하는 큰 집회에 Task Force Team 의 일원으로 서빙고 온누리 교회에 와있습니다. 거의 짐나르다 시간 다가는데요. 그래도 즐겁습니다^^관심있는 분들은 CGN TV 로 보실수 있는 것 같아요^^ 제목은 "창조와 성령" 이에요!

@hayea00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남에게 멸시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심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kangdong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험은 너무나도 많으나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다 한들 주님을 믿는 자 보다 이를 이용하려는 자와 이를 빌미로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주님이 늘 제게 경고하고 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잊어먹지만
다시 상기하고 기도하고 주님의 훌륭한 종이 되어 평안을 받으려 노력합니다.
늘 부족함을 깨닿습니다.

@johnkang0125
고난 없이 영광또한 없다.... 주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들뜬 제자들에게 영광된 삶을 위해 자신이 먼저 죽어야 됨을 가르쳐 주시는 장면이네요 사람들은 언제나 영광만을 추구하며 안식과 평안만을 사모하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은 그것이 먼저가 아님을 제자들과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분의 죽음이 있기에 오늘을 살고있는 나에게 영광의 흔적을 찾을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 당신의 십자가가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와 주심을 감사합니다. 당신을 만날 영광난 날을 사모하며 오늘을 당신의 고난에 동참하여 달려가는 인생되게 해주소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2010년 2월 22일 월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9:2-8 (2월 22일)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5.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 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 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

@hanbaek
오늘의 본문은 변화산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주님이 바로 옆에서 변화되셔서 하얀 광채가 나는 놀라운 장면을 제자들은 경험합니다. 당시에 그 광경을 지켜보던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받은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이 메시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증거로 보자 그들에겐 놀라운 환희가 넘쳤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주님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능력을 맛보고 하나님의 크신 역사가 내 눈 앞에서 일어나길 기대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왜 주님이 변화되셨는지의 진정한 의미를 잊어버리곤 합니다. 주님이 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목에서 변화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이셨는지가 더욱 중요한 테마입니다. 우리는 쉽게 주님이 행하신 일의 의미보다는 현상만을 쫓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우리가 생각해야하는건 행하신 일의 의미입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모든 능력이 우리에게 주는 진정한 의미를 오늘도 깨달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주님은 그곳에서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십니다. 이 광경이 더욱 놀랍습니다. 모세는 율법의 대변자이고 엘리야는 선지자의 대표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약 성경을 말할 때 율법과 선지자라고 부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율법과 선지자의 대표로서 구약성경 자체입니다. 주님은 율법과 선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완성된 율법과 선지서임을 우리에게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은 구약의 말씀을 이루신 분이며 온전케 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안식일의 주인이시기도 하며 완전한 해석자이시기도 하십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고 해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점이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알게 하시는 구절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안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해석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일 때에 온전한 해석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이 밝히 보여주시는 말씀의 감격을 오늘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주님이 변화되신 모습의 참 의미는 고난이라는 코드입니다. 변화되어서 가장 하얀 모습이 되신 주님이 걸어가실 길이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변화되시고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대화하신 중요한 이유는 십자가의 길을 다시금 확인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밝은 빛으로 세상에 오신 목적도 주님이 변화되시어 아름다운 모습으로 우리 가운데 비추어 주시는 이유도 다름아닌 십자가 그 자체였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더 크신 빛을 비추신다면 우리는 더 큰 십자가를 생각하여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능력으로 함께하신다면 우리가 짊어질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주님의 변화는 십자가를 향한 변화였고 우리의 거듭남과 은혜로의 초대 역시 나의 십자가를 지는 변화임을 고백합니다. 주님을 따라 작은 예수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순절이 되길 기원합니다.

@johnkang0125      
얼마전 가이샤라 빌립보에서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얘기해주셨던 주님께서 오늘 위로의 음성으로 그들에게 다가 오시는 모습에서 큰 은혜를 받아봅니다. 찬송가 가사처럼 잠시 세상에 내가 살면서..... 인생은 스쳐지나가는 여정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장차 올 영광의 날을 위해 오늘도 씨를 뿌리는 삶을 살아야 겠지요. 특히 약속의 땅을 눈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했던 모세 그리고 하늘로 올려가서 어디 갔는지 몰랐던 그들이 약속의 땅이라 불리는 가나안 땅 안에서 (특히 모세는 자신의 실수로 들어가지 못했던 그땅에) 예수님과 함께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구원은 오직 예수뿐임을 생각해봅니다. 그 분의 고난으로 인해 내가 새 삶을 얻게 되었음을 감사하며 그분의 삶을 닮기 위해 뛰어 가야 할것을 고백해봅니다. 2월 마지막 주간에 다시 하번 외쳐보고 싶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manga0713

주님 항상 깨어있는 믿음의 능력을 허락해 주옵소서..^^


@hayea00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YoungYeon 

예수님의 변화를 직접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된 베드로, 많은 사역을 함께하고 많은 기적을 함께하였어도...예수님의 본모습을 보고 두려워 망발을 하네요. 오늘 나의 믿음이 이렇게 약한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주님의 얼굴 구하며 나아가지만 삶속에서 얼마나 믿음을 키워가는지 회개하고 다시 일어섭니다. 목수로 잔뼈가 굵으신 예수님도 한나절만에 운명할 정도의 고된 고초와 십자가, 그것을 앞둔 예수님은 오늘 엘리야와 모세를 만나 자신의 가실길을 예비하십니다. 매일의 삶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의미를 바로 새기고,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보는 하루되길 바랍니다.


@pullipggot 

늘 곁에 있지만 느끼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길을 잘 따라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고난의 길을 따라가야 함을 다시 깨닫습니다. 요즈음은 예수믿는 것이 하나의 교양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필요에 따라 우선순위에서 밀리는건 당연하기도 합니다. 오늘 하루 주님의 길을 깊이 묵상해야겠습니다


@owlnme     

신랑이 다니던 회사가 부서를 정리하면서 가게된 회사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을 한다는 이유로 가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다음달부터 집에서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그런 결정을 내린 남편이 고맙고 존경스러우면서도 앞으로의 길에 대한 두려움도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고난의 길로 내려가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아갑니다. 불안함 덕분에 계속 기도하게 되어 더욱 감사합니다

@eripu         
예수님의 빛난 광채와 그 영광.. 우리가 언제나 사모하는 그 천국에서 바라볼 수 있겠지요. 예수님이 변화산 모습을 우리에게 직접 보여주신 이유 중 하나가 세상의 영광을 넘어서는 감히 거부할 수 없는 영광이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여주기 위하여 허락하신 것일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오늘도, 내일도 노력합시다.


2010년 2월 21일 일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9:1 (2월 21일)

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

@hanbaek
님께서 임박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자들 중에 이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걸 보는 사람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긴박하게 보이는 말씀입니다. 이천년이 지난 오늘까지 살아있는 제자들이 한명도 없는데 왜 주님은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까요?

주님은 우리에게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라 말씀하십니다. 나의 삶의 가까운 시간 안에 주님 나라가 임한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인이 더디오리라고 먹고 마시며 흥청거리는 종이 당할 고통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직분을 맡은 우리도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내 삶의 어느 순간이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신다면, 주님이 기뻐하실 일을 행하며 주님이 칭찬하실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진보를 이루라고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의 날에 우리의 실존이 하나님을 향하여 하늘에 쌓아둘 보화를 기뻐하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온전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하면 언제 하나님 나라가 우리에게 임하든 우리는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습니다.

더욱이 오늘 주님의 말씀은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로 가져오고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소유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복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우리 중에 대부분은 그날이 오늘이라고 하면 싫어합니다. 천국을 꿈꾸고 소망하되 그 날은 멀리 떨어져 있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지금 우리의 삶 속에서도 함께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커다란 비밀 중 하나는 현재성입니다. 내가 주님과 동행한다고 고백하는 순간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며, 주님의 은혜와 감격으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있으며,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좇아 낼 때에도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우리에게 임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미래에 영원히 임하시기도 하지만 우리의 삶의 현재에 구체적으로 임하신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를 주님과 함께 동행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맛보시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권능으로 임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강한 주권과 능력이 임하시는 나라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통치하시고 하늘 나라 시민 만이 살아갈 수 있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바로 이곳에 살게 하셨고 영원한 시민권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마음껏 누리고 사랑의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평안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셨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특권이자 하늘 아버지가 허락하신 은혜입니다. 주님의 나라 백성이라는 이유로 우리가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고 버림을 받아도 담대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또한 눈물어린 삶에 지쳐 신음할지라도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받았음을 고백하기에 결코 낙담하지 않고 다시 한걸음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힘입니다. 권능과 위로로 오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오늘도 소유하시고 주님의 크신 능력으로 말미암아 능히 이김의 삶을 살아가시는 우리 모두가 되길 소망합니다.

@avanjang    
거룩한 주일입니다.  주님의 나라... 그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론적인 신앙의 삶은 당연하고 기대되는 삶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신앙의 모습속에 종말론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기복주의적인 삶을 사는데 익숙해 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관을 자주 접합니다.  그저 이땅에서의 복만을 위해 살아가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요? 그러나 주님은 주님의 나라에 대한 꿈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부터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은 바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인 그리스도 예수를 경험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성령하나님을 통하여 은혜와 말씀을 경험하며 순종하며 살아가는 삶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경험하며 체험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도 이뤄 나아가는 삶은 아름다운 삶입니다.  긴급한 하나님 나라에대한 소망의 비전을 통하여 미래의 영원 천국에 국한 되어진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지금도 경험되어지고 이뤄나아가는 현재의 하나님의 나라를 늘 경험할 수 있는 우리 모두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나라를 오늘도 소망하며 귀한 사역을 시작해 봅니다. ^^


@YoungYeon 

예수님이 강조하여 말씀하시네요.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그가 살아서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다고. 우리의 매일 삶에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사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떨치면 곧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현재에서 사는 것입니다.  내가 성령이 충만한 삶을 소원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뻐하며 제자들처럼 살아갈때 예수님이 우리와 동행하는 것을 믿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충만한 주일 되시기 바라고 이 말씀으로 큰 격려를 주시네요.


@eripu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는 것을 보는 것, 부흥이 임하는 것을 보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진 가장 큰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소망은 단순히 기도하고 예배하고 땅밟기 하는 것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으로 충만해질 수 있을 때 가능할 것입니다. 무리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나라가, 즉 성령님이 임하시는 것을 볼 사람들이 있었듯이, 오늘도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볼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특히 end-time으로 다가가고 있는 우리 세계와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내려오는 것을 문자적으로 이룰 가능성도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이 땅 가운데서 임하기를, 그 삶 가운데 예수님이 임재하시기를 기대하며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hayea00    

주님이 언제오실지, 알지못하오니, 마음을 새롭게하고, 믿음을 잃지 않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freesofe     

하나님나라는 주님의 통치가 임하는 .. 주님의 주권이 임하는 곳입니다 나자신부터가 주님의 통치아래 순종의 삶을 사는지 돌이켜 봅니다 자아를 십자가에 못박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한주 소망합니다 지난주 생명의 삶 묵상중에 믿으면(믿고 순종하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말씀을 다시한번 묵상해 봅니다


@johnkang0125      

하루 늦었지만 월요일 아침에 이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 사순절이 시작되었고 죽음과 부활을 생각하게 되는 기간이라 주님께 고맙고 감사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와 아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들어본것 같습니다. 앞으로 올 나라도 있지만 제자들 가운데 이미 그들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 나라를 본자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분명 권능으로 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3사람이 모인곳에 주께서 함께 하신다 하셨는데 주님이 계신 그곳이 곧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는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제 주일 예배를 드리면서 그리고 아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예수님만 사랑하자는 얘기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도 사랑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면서요..... 정말 이 한주간 예수님만 사랑하는, 그래서 권능으로 임하여 변화시키는 그분의 행보를 경험하는 한주 그리고 사순절 되길 기도해 봅니다. '여기에서 큐티하는 사람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2010년 2월 20일 토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8:32-38 (2월 20일)

32. 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 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hanbaek

주님이 처음으로 십자가에 달리시게 됨을 제자들에게 설명하자마자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말립니다. 주님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가실 수는 없다는 간절함과 그동안 주님을 따르면서 얻게될 자신들의 기득권이 사라진다는 두려움이 동시에 베드로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불같은 베드로는 즉각적으로 주님을 막아섭니다. 베드로의 마음 속에서 단순히 예수님의 고난을 아파하는 생각과 자신들이 얻게될 기득권이 한 순간 사라짐 중에서 베드로가 더 힘겨웠던건 무었이었을까요?


얼마전 거대한 프로젝터에 참여한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프로젝가 잘 진행되다가 갑자기 전체가 그만 진행해야할 상황이 되었을 때, 모 기업이 투자한 천억의 미래보다 자기에게 돌아올 1억이 아까워서 괴로워 했다는 고백을 들었습니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우리는 주로 자신의 이익을 따라 움직이는 존재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한 베드로 역시도 주님의 죽음보다도 자신의 위안에 힘겨웠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도 지금도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시는 주님보다는 나 자신의 편안함과 현세의 복에 마음을 빼앗기고 사는건 아닌지 반성해 봅니다.

 

바로 그 때 주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며 베드로의 심장에 못을 박는 발언을 하셨습니다.  얼핏들으면 너무 심하신 말인듯 보이나 그렇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주님을 시험하던 사탄이 끊이없이 주님께 요구한 일이 십자가 없는 구원이었습니다. 결국 주님은 사탄을 향해 내 뒤로 물러나라고 명하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베드로가 십자가의 길을 가로막자 주님은 망설임없이 동일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길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부터 단 한번도 잊지 않으셨던 가야할 길이었습니다. 이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어떠한 세력도 결국 사탄의 장난이라고 주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말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십자가요. 사람의 일은 세상의 권력입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십가가를 통해서 가야할 나의 길이 하나님의 일이며, 쉽게 세상의 왕이 되어 민중에게 군림하는 왕이 되는건 사람의 일이라고 설명하십니다. 오늘 나의 마음에 들어차 있는건 십자가 입니까? 권력과 물질입니까? 오늘을 반성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고자 기도합니다.

 

주님은 더욱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세상을 살아가는 올무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부인에게 당신이 나의 십자가라고 말씀하시더군요 ㅋㅋ. 어느 분은 힘겨운 일을 만나거나 세상에서 고통스런 상황을 만나면 그걸 십자가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둘다 옳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의미의 십자가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야 합니다. 우리가 묵묵히 걸어가는 나의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기쁨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십자가를 진 의미가 발생합니다.


더우기 이번 주 수요일부터는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더욱 깊이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해 봅니다. 더욱 간절하게 주님 가신 그 길을 나도 가고자 결단해 봅니다. 단순히 힘겹고 괴로운 상황을 견디는 차원의 십자가가 아닌 나의 낮아짐과 겸손함과 섬김을 바탕으로 때론 오해를 받거나 비난 속에서도 침묵하고 인내하면서 살아나갈 때 결국 우리를 통해서 주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나라고 하는 작은 존재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을 세상에 나타낼 때 바로 우리는 참 제자가 되고 온전한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됩니다. 나의 십자가를 통해 주님의 빛이 세상에 비추어지길 기원합니다


@hayea00

오늘 말씀을 읽는데, 저도 모르게 움찔..했습니다.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 하리라....』


예수님이 다시 오실때, 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그리스도 인이 되도록 해야겠습니다. ㅠㅠ


@avanjang

주님의 계획속에는 비밀의 때와 드러내 놓고 말씀하시는 개방의 때가 있습니다.  비밀되었던 때에는 모두가 아무런 일도 없듯이 지나갈 수 있는 생활을 하겠지만... 공개되었을 때에는 기쁨으로 맞이하는 무리와 두려워하며 거부하는 무리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위대하신 계획과 마음을 하나씩 알아간다면 그 비밀의 때를 맞이하는 마음은 기대와 감격으로 가득하겠죠.  오늘도 주님의 거룩하신 계획을 하나씩 알아가길 소원합니다.  주님 더욱 알기 원합니다... 가까이 가까이 하게 하소서....


@ellif

오늘 말씀의 포인트는 '자기 목숨'입니다. 자신을 버릴 때 자신을 얻고, 자신의 목숨만을 위해서 사려고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목숨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목숨이 온 천하보다도 소중하고, 그 한 천하보다 소중한 영혼을 구원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시고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 자신의 목숨도 아끼지 않을 때, 자신의 체면을 버릴 때 하나님은 구원하심으로 우리의 삶을 다시 채워나가십니다. 하나님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을 자랑스럽게, 자신의 목숨도 아까워하지 말고, 나누도록 노력합시다.


@YoungYeon

베드로 조차도 예수님이 이땅에서 이루실 일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요. 이들은 자신의 죄를 사하고자 어린양을 잡아 제사를 지내곤 하면서도 그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예수님이 떠나실 것에 대해 인간적으로 반응합니다. 사실 좋아하는 사람과 오래도록 같이 있고 싶은것은  너무 당연한 일입니다. 그분이 그리스도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고, 하늘 나라의 비밀한 말씀을 전해주시는 분이라면, 평생토록 옆에 있고 싶은 맘일꺼 같습니다.

예수님은 사역중에도 궁극적으로 하실 일을 위해 날마다 기도하고 하나님 아버지에게 간구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가르쳤지만, 이런 반응에 단호히 대처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는 일에 힘쓴다면 그것은 사탄을 돕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제자 베드로의 이런 모습에 예수님은 단호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적인 반응에 좌지우지 되어서는 안되니까요.

오늘 저의 하루에도 하나님의 하시려는 일에 이해도 못하면서 그 영광을 가로막은 것은 없나 뒤돌아 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땅 위에 속히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