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8일 월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6:35-44 (2월 8일)

35. 때가 저물어가매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여짜오되 이 곳은 빈 들이요 날도 저물어가니 36. 무리를 보내어 두루 촌과 마을로 가서 무엇을 사 먹게 하옵소서 37.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하시니 여짜오되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 38. 이르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 39. 제자들에게 명하사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시니 40. 떼로 백 명씩 또는 오십 명씩 앉은지라 41.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 42. 다 배불리 먹고 43.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44.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hanbaek

네개의 복음서 모두에게 유일하게 기록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왜 수많은 기적중에 오직 오병이어만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었을까요? 아마 두가지의 측면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이유는 대부분의 기적이 개인적 치유에 머무른데 반하여 오병이어는 거의 이만명이나 되는 사람에게 집단적으로 주어진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은혜는 죽음에서 깨어난 놀라운 기적이라도 전파의 속도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집단적으로 주어진 기적은 기적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을 통해 또 다시 네트웍으로 전파되기에 전화의 양과 속도가 엄청납니다. 이스라엘이 영원히 기억할 기적 출애굽의 사건도 온 이스라엘이 집단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의 사건이었기에 3,500년 이상 지난 오늘날에도 이스라엘에 잊혀지지 않는 영원한 기적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함께 경험하는다는건 힘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동지가 필요하고 함께 중보하는 동역자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의 일을 경험하면 하늘의 능력이 더욱 나타나고 영원히 잊지 못할 감격을 소유하게 됩니다.

 

또 다른 이유는 오병이어가 작지만 영원한 인간의 숙제를 해결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없어도 거기서 굶어 죽을 사람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집회 중에 금식도 하는데 마치고 돌아가서 밥을 지어 먹으면 됩니다. 그러므로 오병이어는 죽은자를 살리거나 문둥병자를 치유하는 기적에 비하면 약한 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병이어의 기적은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는 기적이었습니다. 오병이어를 행하시는 예수께서 왕이 되기만 하면 굶주림은 더 이상 없을 것이며 이 땅에서의 고통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오병이어를 통해서 메시아를 발견하였고 예수께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메시야임이 증명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온 이스라엘은 오병이어를 잊을 수 없었습니다. 오병이어를 행하시는 분이 자신들의 왕이 되어 통치하기를 간절히 바랬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피해 도망하십니다.


사실상 오병이어는 예수님이 행하시면 안되는 기적입니다. 왜냐하면 마귀가 시험한 첫번째 관문에 정면으로 대치되는 기적이기 때문입니다. 돌로 떡을 만들라는 이야기와 오병이어로 2만명을 먹이고도 12광주리에 넘게 남은 기적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이 이적을 자주 행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은 이렇게 스스로 금지시한 기적을 행했을까요? 아마도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는 백성을 행한 긍휼히 여기셔서 주님은 그들에게 먹을걸 주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주님은 긍휼함은 기적의 원천을 이루는 힘입니다. 오늘도 주님의 긍휼이 우리의 삶 속에 파고 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님의 긍휼함으로 인해 우리의 삶이 온전해지고 하나님의 기적이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구현되는 복이 임하길 기도합니다.


@inpreson    

참 많은 비유로 들었던 말씀입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저의 눈으로 바라본적이 없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37절을 보면 제자들이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먹인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께 말씀 드리기 전에 누군가 자신의 힘으로 이미 인원수를 미리 조사하고 거기에 필요한 경비를 산출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제 생각으론 36절의 제자들 제안은 지극히 합리적이고 현실적입니다. 누구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 상식선에서 해결할수 있는 문제여서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님은 한 발자국을 더 요구하십니다. 현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넘어선 체험하는 믿음을 보여 주시는 것이지요.

오늘 아침에 김포에서 서울로 첫 출근을 하였습니다. 아내가 걱정하는 것은 지금 머무는 장모님 댁에서 직장으로 직행 버스가 없다는 것이였지요. 그래서 근 2주동안 버스노선을 알아 보았는데 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비우고 출근길 전철역 가는 버스를 올라 타고 기도를 했습니다. 아내가 걱정하지 않고 편안히 지내기를 바랍니다. 기도를 잠깐 마치고 무심코 노선표를 보았는데 거기에 직장 이름이 쓰여져 있었던 것이였습니다.

기사분께 물어보니 직행 맞더군요.

 참으로 작은 일이지만 저에게는 기적 같은 일이고 주님께 채워주심을 실감하는 아침이였습니다.


@YoungYeon 

언제보아도 감동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겠다고 달려온 사람들 중에는 약간의 먹을 것을 준비한 자들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은 그저 하던 일을 잠시 두고 온 사람들이었는데, 예수님은 그들이 한끼 식사를 거르지 않을까 불쌍히 여기십니다. 남자 5천명이 한끼 정도 거르는게 그리 큰 문제겠습니까만, 사실 무리중에는 숫자 세는데 끼지도 못한 여인들, 아이들이 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 보면 소년이 가지고 온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라고 나옵니다. 보리떡이 미군부대 피자만큼 크지도 않았을 것이고 소년의 한끼로 다섯개를 준비한 것으로 보아 그리 크지 않은 것이었고, 물고기도 고등어 정도 크기의 큰게 아니라 미꾸라지 보다도 좀 작은 그런 크기였다고들 합니다. 소년의 집이 잘살지는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부자집 소년인데 웰빙 음식으로 이런 것을 가지고 왔을지도 모르지만, 어찌되었건 예수님이 먹을 것이 있나 알아보라고 했을때 소년은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어 놓습니다. 자신의 손을 떠나면 그나마 먹을 수 없을 것이고, 배가 고플 것을 알지만 예수님께 내어드립니다.  청소년기에 점심시간까지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배가 고파 미리 도시락을 까먹은건 저만의 일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어른이 되어 한끼 굶는 것과 한 창 자랄 나이에 한끼 거르는 것의 차이가 큽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 고통보다는 예수님이 찾으신다니 그저 내어 놓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내어 놓은 것 이상으로 배불리 먹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적인 양식이었고, 육의 양식도 정말 배불리 먹습니다. 무리중에 소년이 느낀 감동은 특별했을 것 같습니다. 아마 양고기나 맛난 음식을 싸온 누군가가 그것을 예수님께 내어 드렸으면 그날의 메뉴는 달랐을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아니라 다른 이름이 붙었겠죠. 

오늘, 하나님께 나의 현재 가진 것을 다 내어드릴수 있는지 묵상해 봅니다. 내가 가진 것이 실은 다 하나님이 주신건데, 마치 영원히 내것인양 하는 태도는 아닌지, 그리고 내가 붙잡고 있어서 커다란 축복으로 쓰이지 못하고 있는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pullipggot  

몇 주 전 일터에서 50여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은 적이 있었습니다 고작 중간사이즈 쯤 되는 락앤락통 5~6개 분량이었습니다. 먹을때 부터 아..모자라겠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줄을서서 자기가 먹을양만큼만 조금씩 양보해서 먹어서였을까요? 정말 음식이 조금 남기까지 했습니다. 일반적인 일일지 모르겠지만 정말 적은 양에다 다른 층에서 근무하던 사람들까지 가세해 먹었는데도 남은걸 보며 이것이 우리안에 작은 기적이다..하고 얘기했습니다.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보면서 지금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적의 현장을 찾아보렵니다.  넓게는 세계곳곳에서, 그리고 제 주변에서도...


@eripu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보는 텍스트와 다른 텍스트를 보고 있습니다. 특히 :37~8에서 그 차이가 크게 나타나는데,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누가 반응(빌립과 안드레)했다는 기존 텍스트와는 달리 정말 제자들이 물으셨고, 제자들이 그에 대해 대답했으며,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고, 제자들이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다시 제자들에게 일을 시키셨습니다. 그 조그만 떡과 물고기로 2만명 넘는 사람이 열심히 먹고 열두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즉 이 텍스트의 주제와 기재 방식은 철저히 제자들과 예수님간의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기자는 이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기를 원하고 있는 걸까요. 결국 제자 중의 한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제자들 모두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의 역사에 동참하였고, 결국은 제자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셨다는 의미를 가지고 계신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주님의 길을 어떻게 예비하고 있는지, 어떤 역사에 동참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고 있는건지 생각해 봐야 할 문제입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 10:27)


@hayea00     

오늘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예수님이군요~ ^^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은 남자만 5천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기 위해

물고기 2마리와 보리떡 5개를 가지고 축사하시고 떼어 주셨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 기도하였다는 이야기 입니다.

모든 일을 시작할때, 기도로 시작해야 겠다고, 다시한번 생각하는 오늘의 묵상 이였습니다.


@myzang1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 세상의 방식으로 계산되지 않는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명하셨을 때, 제자들은 고민했습니다. 그들이 가진 경험이나 믿음으로는 '2백 데나리온'이라는 많은 돈으로도 해결하기 쉽지 않은 문제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생각한 상식적인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우리의 현실에서 닥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을 보면서 소위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이 문제는 상식적으로, 혹은 경험상 이러저러하게 풀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세상적인 방법을 먼저 찾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저에게 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제자들처럼 자신의 경험과 상식으로 문제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모든 문제의 열쇠는 주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그 분이 제시하는 방법, 즉 하늘의 방법을 묵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삶 속에서 온갖 문제들을 만날 때, 주님의 해법을 먼저 묵상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jeliclelim   

오늘 QT의 내용이 제가 지난주에 쓴 글과 동일한 본문이라 링크로 대체합니다.

http://jeliclelim.tistory.com/376

세상은 인간의 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합니다. 그리그 그 긍휼의 사역을 위해 나를 부르셨습니다. 기꺼이 그의 부름에 응답하는 하루가 되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바래봅니다.

 

@thovas       

제 배는 포만감에 부풀었으나, 날 저무는 빈들에 서있는 제 마음은 심한 허기로 지쳐있습니다, 주님! 당신의 양식을 주세요. 허기가 채워진 뒤 당신을 잊고 의심하던 그날 빈들에 모여 있던 사람들 같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xma1225   

이말씀덕에 굶어 죽을까봐 걱정은 안한다....좋구나!


@jemeone   

수많은 무리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본문입니다. 배가 고프지만 죽을 정도는 아니었을텐데 굳이 먹을 것을 먹여 보내시고자 하는 주님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한지요. 한사람 한사람을 향한 주님의 배려를 느낄 수 있는. 그래서 오병이어는 진정한 사랑의 기적입니다.


@owlnme     

대학교시절 저는 십원짜리 동전하나 까지 모두 갯수가 맞아야 잠이 들 수 있을 정도로 돈에 관해 예민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지갑을 잃어버리고 일주일간을 정말 십원한장 없이 살은 적이 있습니다. 참 여러가지 경로로 저를 먹이시는 하나님을 만나면서 돈에 대한 두려움을 버리고 나자 과사무실에서 지갑찾아가라는 연락이 온적 있었습니다. 그 이후 금전출납부 적는것을 그만 두었습니다. 지금은 돈에 대해 너무 둔해져서 걱정이긴 하지만, 늘 감사한 것은 나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채우심 이었습니다.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한 것들을 느끼게 하시려 이 기적을 베푸신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먹는 사람들이야 이 음식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았을까요?  사람의 수와 나누는 음식의 양을 계수했던 제자들에게 놀라운 기적이었지 싶습니다. 사실 나의 삶 자체가 기적입니다. 남편을 만난것도 기적이고 제 아이들도 기적이고, 가장 큰 기적은 저처럼 고집세고, 머리굴리는 것만 좋아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입니다. 이 기적을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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