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8일 목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8:22-26 (2월 17일)

22. ○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hanbaek

시각장애인이 주님께 찾아와 손 대시기를 간구합니다. 다른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면 자기가 예수님의 옷자락이라도 만지거나 주님의 손을 잡고 말하겠지만 주님이 어디에 계신지 주님의 옷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는 시각장애인은 주님이 자신을 만져주시고 주님이 치유해 주시길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시각장애인의 손을 친히 잡으시고 마을 밖까지 나가주십니다. 본문에는 아무런 대화가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시각장애인이 예수님의 손에 이끌려 마을을 나가는 때까지의 시간동안 주님은 그의 손을 꼭 잡고 계셨습니다. 주님과 함께 마을을 나가는 순간 동안의 시간이 시각장애인에게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평생을 살아가면서 암흑 가운데 있었고 절망 속의 시간을 보냈는데 드디어 소망의 빛이 찾아온 순간이었습니다. 주님의 손에 이끌려 마을을 나가는 동안 이 분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보면 참으로 감동이 몰려옵니다. 주님은 한 사람을 위해 친히 손을 잡아 주시고 마을 밖까지 나가시면서 손을 잡아 주심으로 가슴 깊은 곳에 치유의 확신을 주셨고 참된 소망을 주셨으며 감격의 시간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

 

잘못을 저지르고 나면 부모님께 혼날 때까지의 시간이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차라리 혼나면 그만인데 그 때까지의 마음 고생이란 이루말할 수가 없습니다. 동일하게 상받을 시간을 기다린다는건 너무나 행복하고 큰 상을 받는 순간이 지나면 끝이지만 기대하는 시간은 너무나 들떠있게 됩니다. 주님이 친히 시각장애인의 손을 잡아 주시고 마을 밖으로 나갈 때까지 함께하신 가장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기쁨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주님이 나를 잡아주셨기에 난 이제 곧 보게 된다는 기쁨과 보게 될 세상에 대한 기대로 말미암아 그의 마음 속에는 주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자라났고 이제 곧 주님이 치유해 주신다는 확신이 생겼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찾아온 시각장애인에게 믿음의 은혜를 주셨으며 이를 통해 완전한 치유를 해주십니다.

 

주님은 그의 눈에 침을 뺏으시며 안수하십니다. 침은 몸의 일부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일부를 나누시면서 안수하십니다. 안수하심은 시각장애인이 주님께서 손 대시기를 원하였기 때문에 친히 그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모습입니다. 눈을 뜨라고 말씀 만으로 치유가 가능하셨지만 주님은 그의 간구의 내용을 담아서 치유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시각장애인 스스로 자신의 기도를 귀하게 여기고 응답받는 감격이 넘치게 하기 위함이셨습니다. 주님은 참으로 우리의 기도에 기도하는 내용을 그대로 담아 응답하시는 분임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구체적이어야 하고 우리의 기도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는 심정이어야 합니다. 주님은 보이지 않는 작은 한 사람의 기도에도 친절하게 응답하셨습니다. 동일하게 오늘 우리가 주님께 드리는 아주 미세한 음성이나 시간을 주님은 들으시고 우리 안에 크신 은혜로 응답하십니다. 주님께 오늘 나의 문제를 가지고 나아가 구체적으로 간구하여 응답받는 기쁨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본문에서 참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 하나는 주님이 단 한번 안수하심으로 완전한 치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안수하자 흐릿하게 보였고 한번더 안수하자 완전히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시는 기도의 내용들이 단 한번에 완전히 응답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기도의 응답은 순차적으로 이루어짐을 알려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우리에게 임하는 가운데에도 계속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를 늘 떠나지 아니하도록 주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우리의 삶에 늘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는 기도의 끈을 꼭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우리의 일상도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어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나누는 감격의 삶으로 나아가리라 확신합니다. 오늘 우리의 선 자리에서 바로 지금 기도함으로 주님께서 우리를 붙잡아 인도하시고 친히 우리의 간구에 응답하시는 놀라운 감격이 우리들의 삶의 현장에 임하시길 기도합니다.


@YounYeon

사람들이 맹인을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혼자선 올수 없으므로, 그러나 그 맹인은 이제 예수님께 인도되어 마을 밖으로 갑니다. 이 맹인은 참 축복받은 자입니다. 사람들이 그를 right person에게 데리고 왔고 치유해달라고 구합니다. 내가 어려운 처지에 있을떄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너무 행복할것 같습니다. 반대로 내 주위의 어려운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도 이런 친구가 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이 마을밖으로 나가셔서, 아마도 조용한 곳을 찾으신거겠죠. 침으로 눈은 뜨게 하시고 다시 안수해주십니다. 이 맹인이 이런 방식의 치유를 기도했을테고. 세세하게 다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은 먼저 사람들을 보게하시고, 그리고 다음 단계로 모든 것을 보게 하십니다. 이 맹인이었던 사람은 눈을 떠 세상에서 맨 처음 본 것이 예수님 얼굴입니다, 이 맹인은 참 행복한 사람이네요.

저는 날마다 주님 얼굴 보기를 구하면서 기도하는데, 이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오늘도 주님 얼굴 구하며 기도하는 하루 되길 소원합니다.


@IM_Zaya

오늘 말씀 큐티를 통해 행함과 믿음은 항상 함께 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기도만으로 병이 낫기를 바라는 것, 그리고 치료만으로 병이 낫기를 바라는 것 이 모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은 아닌 듯 하네요. 한마디 말씀으로 맹인의 눈을 뜨게 하실 수 있으신 말씀인 예수님께서도 눈에 침을 뱉으시는 행위를 통해 기도와 함께 행함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학생은 학생으로서 직장인은 직장인으로서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로서 각자의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간구 할때 기도의 응답이 일어나는 것이지 돌이켜 보면 사람의 능이나 기도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어느 것 하나 없던 것 같아요. 오늘 하루도 믿음(말씀)과 행함이 함께 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zeliaaa

오랜만의 묵상입니다. 구하고. 행하고. 응답하시기까지 늘 믿음과 신뢰로 기다려야하는데 참 사람마음이 간사한것같습니다. 늘 보고계시고, 늘 듣고계시고, 늘 보살펴주신다는 믿음으로 오늘 말씀 묵상합니다.


@graceviky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치유 사역이네요..눈뜬 병자의 믿음도 배울만 하지만 다른 방면에서 생각 하면.. 예수님은 병자를 한번에 고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번에 나누어 병자를 고치신 것은 어쩌면 우리의 믿음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봅니다. 양은 냄비 처럼 쉬 뜨거웠다 차가웠다 하는 믿음 보단 꾸준한 믿음을 원하신단 생각이 드네요.. 예수님이 순차적으로 병자를 낫게 하심 같이 제 믿음도 자라나는 믿음이 되기 원합니다!!


@zibanitu83

한순간에 치유받는 대신 짧게나마 거친 중간과정 속에서 맹인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제가 맹인이었다면 희망의 빛줄기에 감사하고 기쁘면서도 아쉬움에 더욱 갈급했을 것 같습니다. 역시 예수님밖에는 치유해주실 분이 없다며 희망을 가졌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정작 내가 삶 속에서 겪는 과정 속의 불완전한 상황에는 기쁨과 감사가 참 부족하네요. 만족스럽지 않은 내 자신과 상황에 기분이 살짝 다운돼있었어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부어주시는 은혜를 너무 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예수님이 왜 굳이 맹인을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치유해주시고, 마을에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을지가 의문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만 비유가 아닌 말씀으로 하늘의 비밀을 보여주셨듯, 같은 시대 사람들 가운데서도 기쁨의 좋은 소식은 선택받은 자들에게만 알려주시고 겪게 하시는 주님의 단면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 말씀 속에 맹인을 데리고 주님앞에 나아가는 사람, 눈이 막 밝아지는 순간에 흐릿할 때 스쳐가는 사람, 치유받는 맹인, 예수님의 사역에 참여조차 못하는 벳세다 마을 사람.. 참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띄는데요. 바쁘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트윗큐티를 했는데.. 오늘 이순간 허락하신 이 말씀을 내가 묵상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깨어있어야 하고, 순종해야 하고, 은혜의 자리를 준비된 모습으로 지켜야 겠습니다. 함께 큐티하는 모두가 은혜의 자리에서 기쁨을 나누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hayea00

오늘 저에게 적절한 말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좌절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해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제가 되겠습니다.


@eripu

예수님은 사람의 주목을 받으시기가 싫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의 간청을 무시하지 않으셨고,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듯이 고치셨습니다. 자신이 힘드셨고 예수님 자신의 마음으로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었겠지만, 그 길을 걸어갈 때 기적이 일어났고 사람을 주목하게 했습니다. 그는 모든 인류들이 원하는 갈망이셨고, 그래서 몰려오는 사람들을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저도 예수님께서 맹인들을 고치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궁금해지는군요.


@johnkang0125

주님께서 벳새다에서 소경의 눈을 고쳐 주셨습니다. 벳세다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일어났던 장소이며서 또한 고라신과 함께 저주를 받은 땅이기도 했습니다.

어제의 누룩말씀과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진정한 이유를 보여주시는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스스로 부유하다 말하는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 하시면서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었던 벳새다로 돌아가셔서 가장 공고한 한 맹인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장면에서 그분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은 언제나 우는자와 주린자 그리고 과부와 고아들의 것이었습니다. 그 사실은 지금도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의지할것이 없어 주릴 배를 지고 산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몰려온 자들과 보이지 않는 눈을 가지고 힘들게 예수님을 찾아온 맹인에게 예수님은 자신이 주실수 있는 최고의 것을 주셨다고 생각이 듭니다.

오늘 말씀을 묵상하면서 나의 자아에게 다시 한번 말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에 물들어 걸어다니는 나무같은 존재가 되지 않았는지, 아무 생각도 없고 이웃의 환경이 어떻게 되어 가고 있는지 관심없이 나의 배만을 위해 살지 않았는지...... 주님의 관심이 나의 관심이 되길 원해봅니다.


@pullipggot

왜 나는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자꾸 놓이는 걸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이 맹인도 그랬겠죠? 여러번 자신의 처지를 비관했을것이고, 주변사람들의 도움없이는 자신을 잘 돌볼수도 없는 상황때문에 자존감도 낮아졌겠죠?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이 손을 잡아주신다는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깊은 위로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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