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baek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헤롯왕의 해석을 그리고 있습니다. 헤롯왕은 예수님을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이라 말합니다. 이는 자신의 삶의 자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헤롯이 왜 예수를 죽은 세례요한이 살아났다고 생각하는 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사람은 모두 자신이 축적한 지식과 쌓아온 경험으로 세상의 사건을 평가합니다. 헤롯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세례요한의 모습과 들려지는 예수의 이야기에서 헤롯은 예수와 세례요한이
닮은 꼴이라고 확신하였고 세례요한이라면 분명히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헤롯은 이미 죽은
세례요한에 대한 두려움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권력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죽음조차
담대히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취하여 아내로 삼은 헤롯의 행동에 대하여 세례요한은 잘못된 행동이라고 단호하게 경고했습니다. 당시에 헤롯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눈앞에서는 충성을 맹세하였지만
세례요한은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단호하게 헤롯의 잘못을 지적하자 헤롯은 그를 투옥하였습니다. 죽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고 무엇보다도 자신에게 당당한 세례요한을 해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아무리 힘이 있고 권력을 가졌어도 사심없이 당당한 사람은 다루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민중이 따르기까지 하면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우리시대에도 세례요한과 같이 의로운 행동을 하고 옳은
말을 하는 지도자를 권력이 억압하면 민중이 참지 않습니다. 의로운 한 사람이 소중한 이유는 바로 그를
기대고 서있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민중의 힘 때문입니다. 의인이 분연이 일어서면 그를 따르는 수많은
민중도 함께 일어나기에 권력도 헤롯도 두려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기독교가 세상에서 세례요한의 역활을 감당하는지 참으로 두렵습니다. 권력이
두려워할만큼 투명하고 민중들이 지지할만큼 의로운 기독교 지도자와 신앙공동체가 우리에게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또한
교회들이 참으로 세상이 두려워할만한 의로운 행동을 하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세례요한처럼 의로운
공동체라면 세상은 우리에게 기대고 힘을 얻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세상으로부터 버림받는 소금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사실을 오늘도 기억하면서 하나님의 '의'가
넘치는 내가 그리고 교회가 되도록 기도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20절은 참으로 우리를 생각하게 하는 구절입니다.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들을 때에 번민하면서도
달갑워 했습니다. 의로운 음성을 듣고 마음에 찔리지 않는 인간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헤롯과 같은 사람도 세례요한의 의로운 음성에 마음을 찟었고 자신의 죄에 대하여 깊이 반성했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이렇게 옳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례요한을 높이 평가 했습니다.
우리가 온 마음으로부터 사심을 몰아내고 오직 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면 듣는 사람에게 변화가 일어납니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역사 앞에서 옳은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나의 길을 통해 주님의 길을 보여주고 주님의 마음을 전달해주면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 하나님의 의로운 음성을 들려주십시오. 그리고 함께 변화의 길로 나아가시길 기원합니다.
@pullipggot
예수님의 소문이 헤롯에게 까지 들려왔습니다. 그는 과거의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음에서부터의 소리를 무시하고 세례요한을 옥에 가둔적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시간이 지나 요한이 죽은 뒤에도 헤롯의 마음에는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굳이 헤롯처럼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어도 저또한 때때로 마음속의
소리와 다른 결정을 내리는 경우가 많고 한번의 결정때문에 뒤이어 오는 상황에서 자유롭지 못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것들을 용납지 않으시는 분임을 깨닫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랬듯 잘못된 권력의 힘앞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습니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올바른 분별력이 있어야 겠습니다. 오늘 제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과 결정의 기로에서 하나님의 의를 먼저 생각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jeliclelim
14절, 이에 -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기적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었다. 예수의
이름을 순식간에 사람들 사이에 퍼졌고 그 이름을 듣고 헤롯은 자신이 한 일 때문에 겁내기 시작한다.
# 예수 그 이름의 비밀 - 예수의 이름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신비로운 두려움을 가져온다. 엘리야를 기다렸던 사람들, 예전 위대한 선지자의 이름과 그의 위업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속에 헤롯이 있다. 헤롯은 자신이 죽인
요한의 모습을 예수를 통해 본다. 헤롯은 예수를 통해 자신의 죄를 지적했던 요한을 다시 직면한다. 헤롯은 예수가 올 길을 준비했던 요한을 통해 자신의 죄와 그 죄의 심각함을 다시금 보게 된다. 하지만 그것이 헤롯을 자신의 죄에서 건지지는 못한다.
#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했다. 의로움과 거룩함을 보았다. 그의
말을 들을때 번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헤롯은 요한을 결국은 죽였다. 그의
목을 베었다. 헤롯에게 예수는 자신의 죄를 심판하기 위해 돌아온 복수의 화신과도 같은 요한으로 보였다.
# 최후 심판이 다가올 때 우리는 무엇을 볼 것인가? 기다려왔던 천국을 볼 것인가 아니면 나로
인해 억울함을 당했던 원망에 찬 사람의 눈동자를 볼 것인가.
# 헤롯은 세상을 좋아했고, 거기서 사는 방식을 따랐다. 그결과
그는 결국 한 의인을 죽였으며 그로 인해 더 이상 구세주를 반기지 못하는 존재가 되고 만다. 요한은
억울한 누명으로 목이 잘렸으나 여자가 낳은 자 중에 큰자라는 예수의 칭찬을 듣게 된다. 왕궁의 호위호식보다
광야의 메뚜기구이가 더 반가운 것은 거기 함께 있고 모든 것을 보는 하나님이 있기 때문이다.
@qrafzv80
지난 일주일간 많이 바빠서 오랜만에 참여합니다. 20절이 마음에 많이 남습니다.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 되면 악한
사람으로부터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고, 악인이 권력자라 할 지라도 오히려 보호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 지 예측하기가 어렵습니다. 오직 믿음 뿐...
@jaehoonism
광야에서 낙타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로써 주의길을 예비한 세례요한.. 헤롯에게
두려움이 되기도 했던 하나님의 사람~!! 세상과 예배공동체에서의 모습들이 같을 수 있는건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그 은혜로 예수그리스도를 닮아가려 하기에.... 세상에서 그 어떤 나의 의가 아닌, 그의백성으로 그의자녀로 그의 군사로 인정받는다는 것 그런 영향력이 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더 준비되어야
겠네요.... 믿음~! 성령충만~!
@myzang1
신앙 양심에는 듣는 귀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귀가 무디어지면 그 어떤 좋은 말도, 계시도 들을 수 없지요. 헤롯에게도 그런 귀는 있었던 모양입니다. 중요한 건.. 양심에 들려지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음성에 순종하는 삶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헤롯은 그렇게 하지 못해 실패한 인생이 되었지만, 오늘 하루의 삶 속에서 그 분의 음성에 더 민감하고, 그 음성에
순종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hayea00
요즘 같이 기독교인이라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세상에서
바른말을 할수 있는 용기 있고, 바른 기독교인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믿을껀 하나님과의 소통인 기도뿐인듯 합니다.
@jinsungk
@YoungYeon
성스러운 영을 가장 잘 알아보는 것 중 하나가 악령에 사로잡힌 자들인것
같습니다. 4백년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입을 다물고 계시다가 세례요한을 보내셨으나 헤롯은 어이없게도
그를 존경하지만 처형합니다. 그리고 마치 세례요한이 살아 돌아온 듯한 예수님의 소식을 듣게 됩니다. 오늘본 말씀의 헤롯과 같은 태도가 제 삶에 큰 도전을 주네요.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지만, 그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을 알았기에 두려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권력으로 보호하기도 하고 말을 듣고는 한귀로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많이 고민하고 또 달갑게 받아들인다...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점이 그렇네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그의 능력과 인자하심을 알지만 그분의 말씀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보내는 때가 많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Yes할때는 Yes라 답하고 No해야 할때는 No하는 지혜를 배우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eripu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그렇습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을 거부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은 거부하지 않으시고 그를 구원하고자 노력하시고 그러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헤롯에게도 임하신 주님, 오늘도 우리의 귀를 열어주시옵소서! (어제 MT, 오늘 수련회로 컴터 접속을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잠시 접속했어요~)
@tirol70
세상의 힘있는 자들 앞에서 그들이 듣기 싫어하는 진실과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목사님의 묵상처럼 오늘 우리 기독교가 세상에서 세례요한과 같은 역할을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참으로
두렵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이심을
다시금 마음에 새깁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담대함으로 세상을 이기는 우리들이 되길 기도합니다.
@xma1225
비방하거나 저주하는건 안되지만 말은 바로해야하는구나..
@owlnme
오랫만에 다시 들어왔습니다. 핑계는
컴퓨터의 문제(새로산 컴퓨터가 계속해서 블루스크린이 뜨네요)이고, 진실은 게으름(그 와중에도 매일성경타자필사는 했다는..)이겠지요. 참 바쁜 시간을 보내고 돌아옵니다
헤롯과 같은 사람도 요한을 두려워할 줄 안다. 그런데 그 마음과는 다르게
요한을 죽인다. 만약 그가 요한의 말을 듣고 회개하였다면 그는 성경에
'의인'으로 기록되었겠으나 그는 그냥 달게만 들을 뿐이었다. 내 삶을 보면 나 또한 말씀을 달게 받기만
하고 삶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면 하나님 앞에서 헤롯과 같이 평가받을 것을 생각하면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말씀을
달게 듣는것.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이며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겠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