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baek
예수님의 길을 예비한 세례요한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입니다.
세례요한은 최고의 권력자 헤롯에게까지 쓴소리를 계속했지만 헤롯은 그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헤롯이 죽는 날까지 옥에 갖혀있게 있게 되리라 보였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엉뚱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죽음을 맞이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반전입니다. 세례요한이 옥에 갖힌 것과 헤롯의 생일과는 아무런 인과 관계가 없습니다. 오히려 생일은 기쁜 날이기에 나쁜 일을 당하는게 이상합니다. 게다가
헤로디아의 딸이 나와 춤을 추며 모두를 즐겁게 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흥겨우며 모인 사람들도 행복해 하는 잔치의 분위기가 이어집니다. 모두가 즐겁고 왕에게 충성서약을 하는 가운데 헤롯은 너무나 행복해서 헤로디아의 딸에게 "소원을 말해봐!" 했을 뿐인데 세례요한이 죽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다보면 세례요한과 같이 정말 나와는 전혀다른 엉뚱한 사건에 의해 피해를 입게될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내가 잘못한 일도 아니고 내 주변에 일어난 일이 아닌데 내 삶을 망가뜨리거나 함정에 몰아넣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헤로디아의 딸이 춤추어 잔치의 흥을 더한 일과 세례요한의 죽음 사이에는 너무나 커다란 간격이 있어서 연관이
안되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이러한 경우는 가끔 발생합니다. 내 의지와 전혀 관계가 없고 내주변에서
일어난 일도 아니지만 우리를 꼼짝 못하게 하고 심지어 죽음에 이르게 하는 고통을 주는 일이 있습니다. 출근길에
평소와 같이 성수대교를 건너다가 오래전에 성수대교를 만든 사람들의 부주의에 의해 다리가 붕괴되고 죽음에 이른 분들이 32명이나 되었습니다. 그분들은 그저 다리를 건넜을 뿐인 사람들이고
오래전 성수대교를 만든 사람들과는 아무런 원한 관계도 없었지만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세례요한의 죽음을 보면서 우리 인생이란 나의 의지와 나의 노력 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없는 사람들의 행동에 의해서
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나와 내 가정만이 아닌 내 주변의 사람들과 내
조국 나아가 이 세상을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나 혼자 잘되고 나 혼자 편안하게 사는 길은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나라가 IMF를 만나자 온 국민이 신음하고
심지어 자살하고 노숙인으로 전락했습니다. 미국이 금융위기를 만나자 우리나라가 최대의 위기를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제는 하나로 연결된 세상 속에서 나 홀로 잘되는 길은 점점 없어집니다. 내가 평안한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너와 우리 그리고 우리의 조국과 온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고
평안하기 위해 무릎 꿇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여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질
때 우리는 평안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례요한의 죽음은 또 다른 시대를 여는 문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이
죽자 예수 그리스도가 새 시대의 주인으로 등장합니다. 세례요한의 죽음까지 기다리신 예수님은 당당히 나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합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시간에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새로운 시대에 새 인물을 보여주십니다. 우리네 사람들은
자기의 시대가 끝나도 끝이 아니라고 우기고 끝까지 자리에 남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도 이러한
일이 많이 보입니다. 목사님과 장로님도 시무가 끝나면 아름다운 퇴장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신 때가 마치면 세례요한처럼 죽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등장하면 안됩니다. 은퇴 후에도 계속해서 무언가 영향력을 행사하려하면 꼭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나의 때를 알고 나의 시간이 끝난 때를 명확히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나에게는
하나님의 시간이 임하셨는지 아니면 나의 때는 이제 끝인지를 정확히 아는 지혜를 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myzang1 저는 헤롯의 관점에서 이 사건을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헤롯의 입장에서 세례요한은 매우 껄끄럽지만,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은 상황을 만난 것이죠. 헤로디아의
딸(물론 자신의 딸이죠)이 엉뚱한 청을 했으니 말입니다. 이 때 헤롯의 번민은 짧은 순간이지만 깊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헤롯은
자신의 마음 속 번민을 올바르게 사용하지 못하고, 세상의 평가와 세상 사람들의 시선을 더 의식한 결과
세례 요한의 죽음을 허락하고 맙니다. 어쩌면 헤롯은 자신의 독자적인 판단에서가 아니라 떠밀려서(?) 세례요한을 죽음으로 몰면서 한편으로는 위안을 느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경 저자는 그 결단을 헤롯의 것으로 기록할 뿐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이런 중요한 결단의 순간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닥친 결정의 순간.. 주변의 시선과
나의 자존심, 또는 나의 이익과 관계되어 왜곡된 결정을 하게 되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오늘 말씀을 통해
얻습니다. @YoungYeon 권력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봅니다. 그토록
목이 빠지게 기다린 4백년이었습니다. 선지자 어쩌면 메시아
같은 "세례요한"의 등장으로 사람들의 가슴은
두근거립니다. 왕도 하늘의 권위를 말하는 세례요한의 도전을 두려워 했습니다. 그러나 한순간의 즐거움으로 인해 어이없는 약속을 해버립니다. 기껏해야
보석이나 재산을 원하리라 예상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요구를 듣습니다. 그리고 너무도 어리석은 맹세를 한 헤롯은 왕이었기에 사실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누가 뭐라 말하지 못할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맹세를 지킵니다. 세례요한은 이미 자기의 본분을 다 했고 하나님이 허락한 시간이 다 되어 세상을 떠난 것이지만, 헤롯은 자기의 권위를 선한일에 쓰기보단 어리석은 맹세에 써버리고 맙니다. 이후
그의 삶에서 다 드러나고 말죠. 저도 헤롯같은 약속을 하게 되지는 않나 살펴보게 됩니다. 주변의 시선이
무서워 진정으로 원하지도 않으면서 하는 일들은 없는지 둘러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타협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 잘 분별하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jeliclelim # 선악의 판단기준으로 자신이 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 헤롯은 자신이 한 말이 곧 자신의 올무가 된다. 그는 두가지 선택에
놓였다. 요한을 죽이고 자신의 말이 맞다는 것을 증명하던지 혹은 자신의 말이 잘못이었다고 인정하던지
말이다. 성경은 헤롯의 선택이 자신의 말과 논리에 갇혀 결국은 자신의 의를 주장하는 어리석음으로 끝났음을
보인다. 헤롯은 자신의 약속은 실천했을지 모르나 그것은 선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지독하고 끔찍한 죄의
결과일 뿐이었다. 헤로디아의 딸이 잘못이 클까 아니면 헤롯의 잘못이 클까? 헤로디아는 가까이 해서는 안될 독을 품은 여인이다. 그러나 그녀를
가까이한 것도 헤롯이요, 요한의 목을 벨것을 최종적으로 명령한 것도 헤롯이다. 아무리 절대권력을 지닌 왕정시대의 왕이라도 그 자신이 선악의 판단의 근거가 될때 얼마나 처첨한 현실이 벌어지고
선과 악이 왜곡되는지를 본문은 그 단면을 보여준다. # 나라의 절반과 세례요한의 머리 세례요한의 머리는 나라의 절반의 가치가 안되는 것이었을까?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겠다는 헤롯의 말과 그 말에 따라 세례요한의 머리를 구한 요구사이에서 잠시 절망하게 된다. 의인의
머리의 가격은 얼마인가? 그녀는 나라의 절반에 해당되는 것까지 구할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구하는 대신 그 어미에게 종속된 모습을 보인다. 심히
중대한 가치판단의 자리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판단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바보의 모습으로 비춰진다. 어미에게
쪼르르 달려가 그 어미가 원하는 것을 묻는다. 효성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다. 그녀는 스스로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고 판단하지 못하는 마마걸로 성장했다. 예쁘고
춤을 잘추는 최고의 아이돌같은 외모를 갖췄을지는 모르나 그 머리는 선악간의 일을 분별못하고 심지어 무엇이 더 이익이 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마저
하지 못할 정도의 바보다. 어미의 요청이 어리석은 것이라면 당연히 그것을 포기하고 바른 것을 구할수
있어야 했지만 여전히 어미의 한 의인의 생명을 취하고자하는 사악한 복수심을 그대로 듣고 왕에게 전할 정도로 어리석은 여자였다. 헤롯의 생각은 어떠한가? 한 의인의 가치와 나라의 절반의 가치중에 세례
요한의 목숨의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다. 만일 헤롯이 정말로 세례요한을 뛰어난 존재요 버릴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그래서 나라의 절반 이상의 가치가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다면 무희의 춤에 대한 보답으로
그의 머리를 넘길수 없었다. 헤롯 역시 어리석은 선택을 한 불쌍한 세상의 통치지에 불과한 사람이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고들 한다. 과연 그럴까? 헤롯은 그가 통치하는 나라의 절반과 세례요한을 달아보고 결정했다. # 의인의 최후를 원하는 사람들, 그것을 거부하지 못하는 사회,
슬퍼하는 소수 오직 요한의 제자들만이 그의 죽음을 슬퍼한다. 그의 시체로 장사한다. 의인의 죽음을 바라는 이들이 있으며, 그들은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의인의 소리를 왜곡하려하고 심지어 죽음이라는 방법까지도 동원해서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방법을 거부하지 못한다. 그들은 입에 바른 소리를 내며 그들은 아름다운 춤으로 눈을 현혹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우리를 기쁨중에 보이지 않는 어두움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거기서 세상의 절반과 의인의 외침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한다. 많은
이들은 양심의 소리에 아파하면서도 세상의 절반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배워왔기때문이다. 헤로디아의 딸처럼 우리는 세상이라는 잘못된 어미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헤롯처럼
무엇이 옳은지를 알지만 세상의 절반의 가치에 마음을 돌린다. 하지만 거기에 슬퍼하는 소수가 남아있다는
것이 아직 이 땅을 살아있게 한다. 남은 것은 슬퍼하는 소수다. 그
슬퍼할줄 아는 소수가 되는 것, 그것이 이 땅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내가 있어야 하는 위치다. @hayea00 오늘은 말조심에 대한 묵상을 해보았습니다. 헤롯은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두려워하여 보호하며 또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을 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던 사람입니다. 헤롯은 맹세를 잘못함으로써, 그랬던 요한을 죽여야만 했습니다. 역시 오늘의 결론도.. 열심히 기도하자..가 결론인 듯 싶습니다. :) @xma1225 애비를 기쁘게한딸..어미에
순종한딸이지만 결국 결과가 좋지는 않았네요.효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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