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baek
예수의 모든 기적들은 회복이나 치유에 있습니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적을 행하신 적이 없습니다. 예수는 억압과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향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의 기적은 병을 고치고 회복시키는 일이었습니다.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눈먼자를
보게 하시며,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풍랑을 잠잠케 하시는 등의 기적은 모두 치유와 회복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물위를
걸으시는 기적은 아무리 생각해 봐도 치유와 회복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물위를 걸으심이 신비한 기적임에는
분명하지만 물위를 걷는 것 자체는 어떤 치유와 회복과도 어울리지 않는 그저 멋진 퍼포먼스에 불과합니다. 설마
예수께서 나는 물위를 걸을 수 있음을 자랑하거나 2000년이 지난 우리도 예수는 물위를 걷는 능력을
가졌다고 알게 하시려고 야밤에 바다를 걸으셨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가시는 이 사건이 우리에게 전하는 의는 무엇일까요? 사실 저는 이 의미를 도무지 파악하지
못해서 아주 오랫동안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본문을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저에겐 충격으로 다가온 의미들을 발견하였습니다.
위에 적힌 본문 바로
앞에는 오병이어 사건이 등장합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신 기적입니다. 이스라엘은 성인 남자만을 인간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래서 모인 숫자
오천명은 성인 남자만의 숫자입니다.그러므로 여자와
청소년, 어린이를 다 합치면 이만 명은 될꺼라고 추정합니다.요즘에 이렇게 숫자를 세면 많은 여성들에게 돌 맞습니다. 하여간 모인 사람의 숫자가 엄청나게 많았습니다. 여기에
반해 이들을 통제하고 섬기는 사람들은 예수와 열두제자 뿐이었습니다. 일인당 감당할 숫자가 1,500명에 이릅니다.
이제는 모든걸 마치고
돌아가야 할 시간입니다. 2만이 넘는 사람들을 보내고 정리하는데는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예수께서 하루종일 그들을 가르치셨으니, 사람들을 보내고 쓰레기를
줍고 장소를 정리하는 일은 당연히 제자들의 몫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모든 리더십은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멋진 일을 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허드렛일을 합니다. 제가 학교에서 조교로 있는데 목사로
일할 때와는 전혀 다른 일을 합니다. 제가 목사로 있을 때에는 복사나 팩스 보내는 일 그리고 짐을 운반하는
일 등은 사무원이나 사찰 집사가 도왔고 저는 나름 폼이 나는 설교와 성경공부 인도 그리고 심방을 하면서 높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조교이다 보니 교회에서는 사무원급이신 분들의 복사도 제가 하고 워드작업도 해주고 짐도 나르는
허드렛일을 합니다. 세상에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드러나는 멋져 보이는 일을 하고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숨어있는 보잘것없어 보이는 일을 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예수께서 자기가 혼자 사람들을 보내고 정리하는 힘든 일을 하시면서 제자들은 먼저 배를 태워 보내셨습니다. 이 단 한마디만 나오고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 힘들고 보잘것없는 일을 홀로 묵묵히 해내십니다. 이게 바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따르기를 원하시는 리더십입니다. 큰
자가 되기를 원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예수 스스로 모범으로 보여주십니다. 본문의
기적은 바로 이 예수의 마음으로부터 출발합니다. 모두가 큰 사람이라고 존경하는 자신과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제자들을 같은 선상에 두고 오히려 제자들이 해야 할 미천한 일도 기꺼이 행하시는 바로 그 마음이야말로 이 시대 우리가 배워야할 진정한 기적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다 보내시고 나서 야심한 밤에 다시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는 새벽 세시쯤에야 산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그 때 예수의 몸은 무척이나 피곤하신 상태입니다. 마가복음은 예수께서 새벽 미명에 조용한 곳으로 가셔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시간까지 기도하셨습니다. 다른 증언은 너무 바빠 식사하실 시간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그토록 바쁜 일정에서
오늘은 특별히 더 힘드셨습니다. 빈들에서 하루종일
강의하시고 그 많은 사람들을 다 보내시고 정리까지 하신 후에 산에서 기도하시고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피곤한 육체를 위해 누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단잠에 빠짐이 당연합니다.
사람이 피곤하면 만사가 귀찮고 자신의 편안함만을 구하게 됩니다. 아마도 잠이 많은 저같으면
산에서 내려올 때 걸으면서 자고 있었을겁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의 마음을 나의 편안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로 돌리셨습니다. 바다에 혼자 계셨던 예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니 맞바람이 불어서 노를 젓는게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내가 가서 도와주리라
결심하셨습니다. 여기서 한번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지금 제자들과
예수 중에 누가 더 힘이 들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답을 하는게 본문을 이해하는 핵심입니다.
제자들이 지금 힘든
일은 맞바람입니다. 노를 열심히 저어도 배가 잘 나아가질 않습니다. 하지만
이건 죽을 일도 아니고 배가 뒤로 가는 것도 아닙니다. 그저 조금 힘들 뿐이고 힘들면 번갈아 가면서
노를 저으면 결국 목적지에 도달합니다. 제가 중학교 시절에 개구쟁이로 살아서 수업시간에 벌을 많이 받았습니다. 수업시간에 떠들다가 선생님께 걸리면 교실 밖 복도에서 무릎 꿇고 앉아 있습니다. 처음 혼자 벌을 받을 때에는 무척이나 힘들고 창피합니다. 하지만
조금 있으면 다른 친구가 나옵니다. 그럼 훨씬 위로가 됩니다. 그러다가 4명쯤 모이면 벌받는 거 아무것도 아닙니다. 벌받는 우리가 훨씬 재미있고
교실에 있는 애들은 불쌍해 보입니다. 벌받는 힘든 일도 같이 하면 괜찮습니다. 왠만큼 힘들어도 함께 하면 좋은 추억이 됩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힘들었지만 12명이 힘을 합쳐서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 밤에 힘들었던 맞바람이 오랫동안 공유할 이야기가
됩니다.
하지만 예수는 지금
혼자 입니다. 우리는 땅을 잘 걸어 다닙니다. 하지만 칠흑같은
밤에 혼자 벌판이나 산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면 오싹해집니다. 저처럼 간이 작은 사람은 혼자 묘지에 가는
극기훈련 같은걸 제일 싫어합니다. 땅을 걸을 수 있어도 혼자 밤에 걷는걸 싫어하는 우리는 바다를 걸을 수 있어도 혼자 바다 위를 걷는 일은
괴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바다를 걸으셨다는 본문을 읽으면서 “와 놀랍다!”, “기적이다” 라고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바다 위를
홀로 걷는 일이 과연 즐거운 일인가를 생각하면, 어두운 밤바다를 홀로 걸으셔야 하는
예수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함께
힘을 합쳐 노를 젓는 제자들보다 바다 위를 혼자 걷는 예수가 훨씬 힘든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엄청나게 바쁜 하루를 사시면서 온 몸을 가눌 수 없이 피곤하고 지친 몸을 가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홀로 바다를 걷는 일을 선택하십니다. 왜냐면 예수 자신의 힘든 일보다 제자들이 괴로워함이
훨씬 더 고통으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어려워하는 모습을 바라보자 심장이 아파 견딜 수 없는 예수는 결국 홀로 파도와 싸우면 한걸음 한걸음
바다로 걸어나가십니다. 본문에서의 진정한 기적은 바로 이 예수의 마음입니다. 불일듯 일어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입니다. 내가 훨씬 더 힘들어도
제자들을 돕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애정의 마음이 바로 기적의 본질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극한의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한 애정의 마음으로 밤바다를 걸어갑니다. 바로 그 예수께서 오늘 나의 상황 속으로 오심을 저는 믿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라는 가장 굴욕적이고 고통스러운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 고통의 만분에 일도 안되는 아픔으로 힘겨워하고 눈물짓는 저의 삶의 현장을 향해 오늘도 한걸음 한걸음 어두운 바다를 걸어 오심을 믿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도와달라고 말할 수 없었지만 이미 예수께서 제자들을 향하여 나아가심처럼 너무나 힘들어서 기도조차
할 수 없을 때, 나는 주님이라는 말조차 못하고 그저 눈물지으며 통곡할 때 주님은 이미 십자가 나의
고통을 보시고 내게 오심이 느껴집니다. 이 사실이야말로 내게 기적이며 감격입니다.
제자를 향한 기적의
마음으로 배에 도달하였을 때, 제자들은 예수를 전혀 알아보지 못합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예수께서 그 힘든 몸을 이끄시고 만근같은 고독을 이기며
도와주려고 찾아왔지만 제자들은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고 유령이라고 외쳤습니다. 이런 배은망덕한 사람들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비오는 날 비에 젖어 오는 아이가 마음에 걸려 바람에 흩날리는 비를 맞으며 우산을 가지고 학교에 갔더니
아들이 저를 빤히 보면서 “누구세요?” 라고
말한다면 들고 갔던 우산을 그냥 들고 집에 와서는 아들이 오자마자 사생결단을 할 것입니다. 하물며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찾아간 예수의 마음이야 어떻겠습니까?
하지만 예수는 그러한
제자들에게 끝까지 애정을 잃지 않고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인내이자 변함없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제자들의 태도에 상관없이 한결 같은 이 마음이야말로 본문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기적입니다. 이 기적으로 인하여 바람이 잔잔해지고 배는 순항을 하게 됩니다. 나의
맞바람치는 삶의 현장에 주께서 날 찾아 오시지만 나는 거의 그분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맞바람이 멈추면
이제 멈출 때가 되어서 멈추었다고 생각하고, 문제가 해결되면 나의 능력이라 자랑하고, 더 잘되면 교만해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주께서는 이런 저를 끝까지
도와주시고 풍랑이 멈추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그래서 전 오늘도 잔잔한 바다 위를 항해하는 기쁨을 누립니다.
바다를 걸으시는 기적이 보여주는 예수의 마음을 자세히 들여다 봅니다. 다 볼 수 없는 주님의 마음이지만 보여지는 부분 만으로도 참으로 감격스럽습니다. 낮은 자의 일을 기꺼이 행하시는 리더십의 마음, 가장 무거운 십자가의 고통을 지신 예수께서 작은 나의 문제를 아파하시고 찾아오시는 사랑의 마음, 자신을 유령이라 비난해도 끝까지 애정의 끈을 놓지 않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위로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기적을 만들어 내시는 이 주님의 마음을 언제나 내 속에 새기고 오늘도 거친 바다를 홀로 건너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립니다.
@YoungYeon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고 사람들이 예수님과 제자들을 높이고 나아오자
예수님이 제자들을 피신시킴십니다, 때로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가 과하면 하나님에 대한 감사를 잃기 쉽습니다. Queen의 노래 중에 Too much love will kill you 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지나친 사랑은 사람을 망칩니다. 예수님 자신도 피하셔야 했으나 제자들을 피신시키는게
먼져셨고, 그리고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하나님과 기도로 대화하시는
예수님도 산에 홀로 가셔서 오랜시간 제자들을 위해 하늘 아버지의뜻을 이루기 위해 한참을 기도하십니다. 우리 삶에 많은 일이 일어날수록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시간과 장소의 제약이 있었겠지만 예수님은 그냥 다 버리고 산으로 가십니다. 배는
한척 뿐이었답니다. 기적을 보고 난 제자들도 피신하느라 바뻐서 기도하지 못했나 봅니다. 금방
마음이 둔해져 다가오는 예수님도 몰라봅니다, 깨어있지 않으면 빨리 제대로 반응하기 힘든 것 같습니다. 저도 최근 이런저런 모임에 함께하느라 기도가 많이 줄었습니다, 게으름이
정말 중요한 걸 줄이게 합니다, 오늘 예수님처럼 기적 이후에도 기도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오늘 피부과 치료도 받고 아마존의 눈물 자봉도 하기로 했고, 등등. 그러나 그 모든 일에 앞서 기도로 그리고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듯이 타인을 섬기는 하루가 됬으면 합니다, 비오고 지하철 안와서 고 임수혁선수 발인예배 못가고 힘든 마음으로 출근하는데 어떤 여인이 지붕이 있는 버스
정거장 아래에서 굳이 우산을 쓰고 계시다가 제 눈을 찔렀는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눈은 안다쳤습니다. 다만, 그 순간 어리석은 여인에게 화가 확! 치밀어 올라서...저의 인격은 아직도 다듬어질 부분이 많음을 고백하며 기도하는 하루가 되겠습니다. @graceviky 너무 오랜만의 묵상이라 반성이 됩니다.
오늘 아침에 개인묵상 했던 내용도 크신 하나님이었는데. 물위를 걷는 예수님으로 제게 하나님의
능력을 한번 더 일깨워 주시네요. 요즘 제 상황이 어지러워 기도도 안되고 그랬는데.. 보이는 것 만으로 두려워 하지 말라는 민수기 말씀에 이어(다른말씀묵상)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고 깨어있지 못한 제자들을 위해 또 물위를 걷는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며 제 믿음의
한계를 체감 합니다. 항상 기도하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사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qrafzv80 오병이어의 기적 이후에도 제자들은 여전히 연약합니다. 가끔 전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가까이서 예수님의 엄청난 능력을
목격한 제자들도 저 모양인데, 오늘날 제 모습이 이리도 연약함은 어찌보면 당연한 거 아닌가...하는... 투정이고, 땡깡이고, 자기 합리화 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 그렇게 위안을 얻곤 합니다. 결국엔 제자들이 변화했던 것처럼 저도 변화될 것을 기대해봅니다. @pullipggot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어떤일의 시작은 기도로 했지만 마치고나서의 기도를 해야겠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빈들에서 많은사람들에게 가르치고도 기도하러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오늘은 일의 시작과 끝을 기도로
해야 겠다고 마음먹어 봅니다. 또 제자들이 물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며 유령인가..하고 두려워하고 놀라는 장면에서. 저또한 제자들처럼 둔감해져 있는
제모습, 어릴때부터 당연하게 여겨서 별로 감흥이 없었던 말씀들을 다시 새롭게 발견하는 노력을 계속해야겠습니다 @cnaon7 예수님은 기도의 사람이셨습니다. 어떤
일이 있고 난 후 도취와 영광이 아닌 조용한 곳에 자신을 가장 낮은 곳으로 낮추시고 기도하고 계신 모습을 봅니다.
예수님의 그 능력은 기도에서 나오게 됨을 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먼 발치에서 항상
제자들을 바라보고 주시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혼란하고 어지러운 주변환경에 넘어지는 우리를 보시고 우리에게
항상 다가오시는 예수님 이심 묵상하게 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항상 예수님이 함께 계시고 나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을 알지만 저는 주변 환경과 상황에 빠져서 그 상황 처리에만 급급 합니다. 그리고는 저의 신앙
중심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항상 나를 바라보시고 언제나 함께하신다는 그 말씀데로 그 말씀을
믿으며 오늘 하루 모든 상황 가운데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제자들은 모든 예수님의 기적과 표적들을 본 증인 이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마음에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한 마음이 더 큰 모양입니다. 그 예수님을 보고 놀라는
제자들 이 모습을 보고 나도 이와 같을 까 라는 생각해 봅니다. 저의 모든 삶가운데 예수님의 많은 흔적들과
인도하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상황에서 방황하고 흔들리는 저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이후로는 다른 모습을 소망해 봅니다. 놀라거나 두려워하는
제가 아닌 기뻐하면 찬양하며 나팔 부는 저의 모습을 말입니다. 그리고 아직 제자들은 마음이 둔하여 져서
그 떡 떼시면서 말씀 하시던 때를 잊고 있습니다. 저는 이세대에
endtime을 사는 사람으로 천국을 소망하고 하나님나라를 위해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자로 마음이 둔한자가 아니 영적 영안을
가지고 세상가운데 빛으로 소금으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런 제가 되도록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ayea00 52절 말씀이 확~ 다가오는
오늘입니다. 기도해서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에게 감사 하는 우리이지만.. 시련이 닥쳐오면 두려워하고 불평부터 하지는 않았나..다시한번 되돌아봅니다. 믿음이 약해지지 않게.. 기도하기.. @myzang1 이 성경 본문도 참 익숙한 본문인데,
오늘 같은 시각의 해석은 처음 봅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극치가 이 예화 속에 담겨 있었다니
소름이 끼치네요. 바람이 거스러는 바다를 힘겹게 항해하는 우리네 인생을 향해 오늘도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따라오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주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큰 위로를 받습니다. 때론 정말 나 혼자라고 느껴지고, 내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상황에 놓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그럴 때도 나를 따라 거친 바다를 건너 오시는 주님이 계셔서 나의 힘든 상황을 일시에 해결해 주실 거라는 확신을 주시네요. 오늘은 주님의 이 큰 사랑을 마음에 느끼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주님~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eripu 목사님 묵상이 너무 대단하십니다. 그와
별도로 제 묵상은 해야겠지요. :52에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에
초점을 맞추고자 합니다. 예수님이 큰 일을 하신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 나서도, 그리고 자신들이 나누어주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벌써 까먹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를 젓느라 예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거기다가 제자들은 전에 풍랑이 쳤을 때 풍랑을 잔잔케 하신(4:37~41) 예수님마저
까먹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현상에 집중하느라 그 뒤를 넘어서 보지 못합니다. 이전에 있었던 기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계셨고, 그래서 성령을 보내주시고, 부모님을 보내주시고,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잊지 않도록 하고자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주여, 오늘도 하나님을 잊어가는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참고로 오늘 매일묵상은 어제 묵상의 판박이네요. 참고로 마태복음도 마가복음과
동일하게 '제자들'만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inpreson 평범하게 사는 일상이 기적이란 말이 생각 납니다. 가만히 삶을 살펴 보면 주님께서 순간순간 간섭하시고 기적을 보여주신 경우가 너무나도 많은데 감동이 없이 넘어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생은 경의로 차있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기쁨과 감사의 삶을 살때 삶의
기적은 더욱 넘처나지 않을까 합니다. @tirol70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라는
말씀을 반복해서 읽어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돕기위해 바다 위를 걸으셨다는
목사님의 묵상을 읽고 이 말씀을 읽으니 예수님의 따뜻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자꾸만 다시 읽어 보게 됩니다. 내가 힘들고 지쳤을 때 내게 찾아오신 주님께서 해 주시는 말씀인 것만 같아서 또 읽어봅니다. 고맙습니다. 주님. @xma1225 마음이 둔하다..마음은 예민히야하는데
강팍해진다...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고 즐거워하고 두려워할수록 마음은 점점 무뎌져 간다. 힘내자...물러서는건 기뻐하지 않으시니... @owlnme 힘겹게 노를 저으며 고생했던 제자들,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했던 제자들, 예수님께서 부여하신 능력으로 귀신을 물리치고 병을 고쳤던
제자들, 그리고 예수를 보고 놀라고 있는 제자들 까지.. 모두
같은 제자들 입니다. 말씀을 듣고 감격하고, 때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찬양하고, 증거하기도 했던 저도 다 같은
저 입니다.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으면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잊고 내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수고하고, 내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보고 남인듯 느끼며 놀라는 저도 또한 같은 사람입니다. 왜 사경회에서 은혜를 받고 나면 꼭 시험에 들까요?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은혜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다짐합니다. 나를 위해 다가오시는 주님을 보고 놀라지 않으려면 나의 마음속에서 늘 주님을 기억하며 기다리고 있어야 할 것이라는
깨달음 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그 곳에서 문제에 부딪혔을때 내힘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는 온유함을 간직하는 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저도 요즘 마가복음을 읽고 있고,
답글삭제또 이 내용은 어젯밤에 읽었던 내용이군요.
은혜받고 갑니다.
참 사랑의 주님,
오늘도 나보다 먼저 나의 상황에 와 주심에 감사합니다.
목사님 감사해요~
@@naraenarae - 2010/02/09 10:42
답글삭제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묵상과 나눔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에 다가서면 좋겠습니다. 꾸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