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2월 15일 월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8:1-10 (2월 15일)

1.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 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 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 5.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 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 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

@hanbaek

오늘의 본문은 얼마전에 묵상했던 오병이어의 사건과 거의 동일한 이야기 입니다. 주님이 기적을 시작하시는 컨셉도 같습니다. 단 칠병이어이고 먹은 사람이 4천명이며 남은 조각을 모으니 일곱광주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만 다릅니다. 또 하나의 차이점은 오병이어는 모든 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유일한 기적인데 반해서 칠병이어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의 기자는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같은 이야기가 중복된걸로 생각하여 오병이어만 기록한 듯 보입니다. ^^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은 참으로 준비성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제자의 수가 12명이고 예수님까지 하면 최소 13명인데 가지고 있는 떡이 7개 밖에 안된다는게 말이 안됩니다. 모두가 한끼를 먹기에도 부족한 분량입니다. 빈들로 나아가면서 충분한 식량을 준비하지 못한 제자들은 책망을 듣는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들을 책망할 생각이 전혀 없으십니다. 주님은 쌓아두고 살아가는걸 좋아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가벼운 몸짓으로 소유보다는 공유를 움켜쥠 보다는 나눔을 실천하십니다. 그래서 칠병이어만으로 먹을 것 없는 벌판에 계시지만 부족을 느끼시지 않았습니다. 이는 우리의 삶에서 가장 본받아야할 덕목입니다.


소유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는 철저히 내것이라는 속박아래 묶여서 살아갑니다. 너의 것과  나의 것의 구별이 분명하기에 우리 사이엔 사회적 강자와 약자가 존재합니다. 가족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하루 생활비 만원이 없어서 신음하는 가족이 있는가 하면, 4만원씩 사용하면 25천만일을 살아가고도 남는 재산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2 5천만일이면 7십만년에 가깝습니다.. 인간의 이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을 생각하면 이렇게 많은걸 왜 짊어지고 사는지 신기합니다.

 

이땅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소유를 정면으로 거부하자는게 아니라 소유욕은 주님의 마음을 이해함에서 멀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습니다. 주님은 머리둘 곳도 없으셨지만 영원히 기억될 이름을 남기셨고 영생을 우리에게 주시는 힘을 가지셨습니다. 주님은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으셨지만 원하시기만 하면 칠병이어로 4천명을 먹이고도 넘치도록 남게 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치욕의 길을 걸으셨지만 우리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광야길에서 40년을 훈련시킨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만나와 메추라기로 연명시키시면서 한 세대가 넘는 시간을 모두 함께 유랑하게 하셨을까요? 초막을 짓고 살아가면서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움직임을 따라 이동도 정착도 하게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40년 동안 모든 유대인이 함께 하늘의 도움없이는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하나님의 인도하심 없이는 한걸음도 나아갈 수 없음을 온 몸으로 학습시켜 주시기 위함입니다. 또한 하늘의 법칙은 최대한 적은걸 소유하고 가벼운 몸짓으로 살아가야함을 가르쳐주심입니다. 만나는 아무리 많이 모아도 다음날이면 먹을 수 없는 음식입니다. 7십만년 어치 양식을 모아 곡간에 채워둔 어리석은 부자들을 광야의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6절에 주님이 축사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축복은 늘 놀라운 기적의 원천입니다. 에서와 야곱의 가장 큰 차이는 축복을 누가 받았는가에서 갈립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축복을 받으면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축복의 말은 현실이 된다는 사실을 확실이 믿었습니다. 사실 에서와 야곱 중에 이삭의 재산을 물려 받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이나 죽도록 종처럼 노동의 했던 야곱의 삶이 거부인 이삭의 재산을 다 받고 어떤 아내든 쉽게 구할 수 있었던 에서보다 훨씬 더 고단하고 괴로웠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부르고 성경은 야곱의 열두 아들이 열두 지파가 되는 놀라운 역사를 적어가고 있습니다. 야곱은 아버지에게서 받는 축복의 말이 현재 가진 모든 소유보다 소중하고 이 말씀은 이루어진다고 믿었기에 목숨을 걸고 축복을 받으려 했습니다. 그리곤 그 축복대로 그는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살 속에도 하나님의 축복이 필요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아멘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축복을 믿으면 현실이 되는 감격을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축복의 음성을 백호의 해에 우리 심장에 새기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모두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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