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9:10 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9:11 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9:12 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9:13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
@hanbaek
주님은 변화산에서의 사건을 부활의 날까지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입단속 시키십니다. 왜 주님은 제자들에게 말하지 말라하셨을까요?
무엇보다도 말해도 믿을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주님이 계신 곳에서 변화된 사실도 그렇거니와 그곳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었다고 하면 사람들은 참람되게 여기고 오히려 돌을 들어 치려고 할겁니다. 주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기만 해도 돌을 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절대로 믿을 수 없는 사건이기 때문에 차라리 조용히 입을 닫는게 나아 보였을지 모릅니다. 매일 하나님을 보여달라고 기도하던 수도사가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나타나자 기절해서 죽었다는 웃지못할 예화가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 작은 기적은 신뢰하지만 너무 커다란 기적은 아예 신뢰하려고조차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나의 이성으로 제한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저지른 가장 큰 잘못 중 하나입니다.
또한 주님은 떠벌리면서 십자가의 길을 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때론 오해를 받고 비난과 채찟에 맞아도 어린 양과 같은 모습으로 한발한발 십자가를 향하셨습니다. 변화산의 사건도 십자가를 향한 주님의 걸음이기에 주님은 세상에 알리기보다는 안으로의 결단을 다지셨습니다. 우리도 주님을 따라 십자가를 지는 삶으로 나아갈 때에 많은 오해와 비난이 쏟아져도 우리는 묵묵히 걸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채찍질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마음을 굳게 하여 주님만 바라보고 침묵해야 합니다. 이렇게 주를 따를 때에 우리에게 부활의 영광과 영생의 감격이 넘쳐납니다.
제자들은 엘리야가 메시야 전에 와서 모든걸 회복한다고 전하는 바리새인의 말에 대하여 질문합니다. 그 때 주님은 이미 엘리야가 왔으되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은 문자적인 엘리야를 기대했습니다. 갈멜산의 승리와 바울과 아세라를 섬기는 제사장을 칼로 진멸하는 강한 선지자만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그 후 하나님께 죽기를 간청할 만큼 인간적으로 힘겹고 안타까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바리새인의 눈에는 인간적인 엘리야는 보이지 않았고 신적 권위를 입고 승천하는 엘리야만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이 약대털옷을 입고 회개를 전하는 세례를 베풀 때에도 야인으로 취급했고 헤롯에게 잡혀 죽는 순간에도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필요한 엘리야는 승리하는 강하고 힘있는 선지자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자칫 바리새인과 같다면 우리는 정말 중요한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할 수도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강하고 힘찬 승리자가 아닌 로뎀나무 아래서 신음하는 엘리야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와 함께 신앙의 길을 걸어하고 작은 예수로 살기 원하는 신앙의 동역자들에게서 눈물과 고통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눈물 또한 하나님의 위로로 씻겨짐을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수많은 그루터기를 두셨고 동역자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눈이 열려 주님의 사람들과 함께 숨쉬고 교제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개척해가는 믿음의 진보가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
@inpreson
@eripu
아직 봐야하지 않았지만 봐야할 영화로 점 찍어두고 있는 것이 <회복>입니다. 회복에서 메시야닉 쥬들의 모습을 보자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듭니다. 정통유대인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벌써 그 수가 1만 3천명으로 불어났고, 계속해서 예루살렘을 위한 기도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메시야가 안 왔으니 예수는 닥치고 새로운 메시야가 오라고 항변하거나 조롱하지요. 그러나 고난받고 조롱 받는 메시야를 그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예수를 죽인 자신들의 과오를 짐에 지면서도 돌이키려고 하지 않습니다. 위대한 왕으로서의 하나님만 보려고 하고, 옆에서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죠. 이슬람과 왠지 비슷해 보이지 않나요.
하나님에 대한 제한된 생각과 제한된 마음은 결국 우리의 생각도 막아버리고,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지 못하게 하는 통로가 됩니다.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입니다.
@graceviky
오늘 말씀 어려워요.. 흑.. 예전에 목사님께서 이 말씀 가지고 설교 하셨던게 생각이 나서 그내용으로 묵상을 해봅니다. 주제는 우리를 항상 염려하시는 주님이었어요. 주님께서 고난 받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주님은 제자들을 걱정하십니다. 변화산에서 본 것을 제자들이 세상에 알리면 혹 왕따 당할까봐 걱정하신건가봐요.. 다르게 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게 주시는 은혜를 너무 쉽게 발설하여. 예수님께 해가 될때가 있는것 같아요. 왜곡되게 전하기도 하고.. 나의 행동거지가 예수님의 위상에 해가되지 않을지 제 행실을 되새겨 봅니다. 항상 그리스도인의 향기를 내 뿜는 제가 되어야 할텐데 말예요..
@YoungYeon
예수님은 하신 일들이 성경에 이미 다 기록된 것들어었으나 어리석은 제자들은 아해하지 못했고, 보고도 서로 질문하고, 하나님의 영광된 선지자 엘리야의 모습을 보고도 베드로는 어제 놀라서 헛소리 하기도 했죠...주님은 가장 가까운 제자들 마저도 이해 못할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갈길을 미리 준비하십니다. 미리 고난이 있을 것을 아시고 준비하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면서, 우리 믿는 사람도 오늘 내 십자가를 지고 하루를 살아가길 바랍니다.
교회에서 하는 큰 집회에 Task Force Team 의 일원으로 서빙고 온누리 교회에 와있습니다. 거의 짐나르다 시간 다가는데요. 그래도 즐겁습니다^^관심있는 분들은 CGN TV 로 보실수 있는 것 같아요^^ 제목은 "창조와 성령" 이에요!
@hayea00
예수님을 닮아가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남이 알아주지 않더라도, 남에게 멸시 당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위로해주심을 믿고, 앞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kangdong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영험은 너무나도 많으나 이것이 세상에 알려진다 한들 주님을 믿는 자 보다 이를 이용하려는 자와 이를 빌미로 부정을 저지르는 자들이 생겨날 것입니다.
주님이 늘 제게 경고하고 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늘 잊어먹지만
다시 상기하고 기도하고 주님의 훌륭한 종이 되어 평안을 받으려 노력합니다.
늘 부족함을 깨닿습니다.
@johnkang0125
고난 없이 영광또한 없다.... 주께서 변화산에서 영광의 모습을 보여주시면서 들뜬 제자들에게 영광된 삶을 위해 자신이 먼저 죽어야 됨을 가르쳐 주시는 장면이네요 사람들은 언제나 영광만을 추구하며 안식과 평안만을 사모하는 모습을 봅니다. 주님은 그것이 먼저가 아님을 제자들과 나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그분의 죽음이 있기에 오늘을 살고있는 나에게 영광의 흔적을 찾을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길 원합니다. '주님 당신의 십자가가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와 주심을 감사합니다. 당신을 만날 영광난 날을 사모하며 오늘을 당신의 고난에 동참하여 달려가는 인생되게 해주소서 당신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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