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8일 목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14:10-2(3월 17일)

10.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그들이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까 하고 그 기회를 찾더라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께서 유월절 음식을 잡수시게 준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의 둘을 보내시며 이르시되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냐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라 하시니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께서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니라 17. ○저물매 그 열둘을 데리시고 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그들이 근심하며 하나씩 하나씩 나는 아니지요 하고 말하기 시작하니 20. 그들에게 이르시되 열둘 중의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hanbaek
오늘 본문에는 유다라는 제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판 제자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합니다. 주님의 제자로 3년이나 주님과 함께 동거동락한 유다가 왜 예수님을 팔았을까요? 여기에 관한 수수께끼에 대하여 묵상을 나눠보고자 합니다.
가롯유다는 주님의 돈주머니를 맡아서 관리할 정도로 인정을 받은 제자입니다. 원래 회계는 가장 확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주로 하잖아요.. 그런데 왜 그토록 신뢰하던 제자가 예수님을 팔았을까요? 돈이 탐나서라고 주장하는 건 조금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은 30냥이 탐나서 예수님을 팔았다면 다시 돌려주러 가지는 않았을꺼라는 추측입니다. 게다가 회계를 맡았던 유다니까 돈을 들고 튀어라에 맞게 횡령함이 더 쉽고 많은 돈을 버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까요? 성경은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고 표현합니다. 분명히 예수님을 파는건 사탄의 행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건 하나님의 구속의 사역이자 사탄의 유혹을 거부하신 주님이 끝까지 가고자 하시는 은혜의 길이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데 그 길을 가는 악역을 맡은 배우가 바로 유다입니다. 유다는 사탄의 지시로 이 일을 한걸까요? 아니면 주님이 가시는 길을 인도한 사람이 되는걸까요? 헷갈리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런 유다에게 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뻔 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유다로서는 정말 최악을 선택을 하였음을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유다의 마음을 다룬 뮤지컬이 Jesus Christ Super Star 입니다. 이 뮤지컬에서 유다는 "Why Me?"라고 애젋게 외칩니다.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기나긴 역사 속에서 하필 왜 저를 택해서 가장 나쁜 악역을 맡기셨습니까? 저가 아니라도 누군가 이 시점에 이 일을 해야 한다면 왜 하필 저입니까? 하는 외침입니다.

이러한 유다의 절규는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상념에 잠기게 합니다. 단지 사탄의 꼬임에 빠졌다라고 해석하면 유다가 하나님의 구속을 위해 이용당하고 버림받는 존재로 해석되기 때문에 오히려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다시 주제로 돌아가서 왜 유다는 예수님을 파는 극단적인 행동을 했을까요?
가장 유력한 설은 유다는 헤롯당원이었기에 예수님을 팔았다 입니다. 가롯유다는 로마의 폭정으로부터 예수께서 해방시켜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사람입니다. 정치적 메시야를 기달렸고 주님이 바로 그 메시야라고 확신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주님이 오실 때에 가장 기대에 부풀었고 주님이 이제 왕이 되실 때 목숨걸고 투쟁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예루살렘에 오셔서 하시는 말씀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라리 하시고 자신은 십자가를 지겠다고 하시니 억장이 무너졌고 그는 마지막 방법을 생각해 냈습니다. 예수님을 팔면 예수께서 결국 투쟁모드에 돌입하실 것이고 예수의 추종자들이 모여 전쟁을 일으키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예수께서 잡히실 때 베드로는 칼로 말고의 귀를 자르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스스로 잡히시고 십자가에 달리자 유다는 죄책감에 못이겨 자살하고 맙니다.

이러한 해석이 꼭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공감이 가는 해석입니다. 그렇다면 유다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그의 문제는 예수님을 자신이 조정하려 했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범하는 잘못입니다. 우리도 자주 주님을 이용하고자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최악의 선택이며 결과를 가져옵니다. 주님의 마음을 읽고 그분의 마음에 우리를 맞춰야 합니다. 주님과 함께 걷는건 주님의 마음을 내 안으로 가져오는 행위입니다. 오늘도 주님보다 앞서지 마시고 주님의 길을 따라 묵묵히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hayea00
보통 우리는 가장 믿는 사람에게 금전 관리를 맡깁니다.
예수님의 제자였던 가롯유다는 그런 금전을 맡았던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믿고 신뢰했던 가롯유다 였지만, 결국 사탄의 유혹으로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게됩니다.

사람은 너무나 나약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사탄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도록, 오늘도 기도하며 믿음을 굳혀가는 오늘이 되었으면 합니다.

@graceviky
가롯유다는 어찌보면 참 불쌍한 사람입니다. 사탄의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어찌보면 저도 제 욕심때문에 때로는 예수님을 팝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져 타협하고 합의합니다. 인자를 파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고 말씀하신것을 기억 하며.. 사탄의 유혹의 빠져 예수님을 팔지 않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qrafzv80
목사님의 묵상글 읽어보면서 많이 생각해봅니다. 물론 상상이지만...'why me?'의 담긴 유다의 심정이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저 역시 가끔은 일이 꼬였을 때, 나를 이 쪽으로 몰고 간 게 하나님인지, 사탄인지, 고민해볼 때가 많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배신감을 느낄 때도 간혹 있습니다. 저 상황에서 자유의지를 가진 유다는 저 역할을 벗어날 방법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하나님께 온전히 맡긴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owlnme
저는 가롯유다의 잘못을 예수님과 잠시 떼어놓고 생각해보고 싶습니다. '예수님'이라는 존재와 가롯유다를 비교해 보면 가롯유다같은 자가 '감히' 예수님을 팔았다는 것만 생각이 날 수도 있으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 주위 사람들을 조정하고 싶어하는 유혹을 이기지 못할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내가 섬기는 자리에 가지 못하고 남편을, 아내를, 자식을, 정치인을, 국민을 조정하고 싶어하는 마음이요. 솔직히 앞에서 부탁하거나 의논하지 못하고 뒤에서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내 뜻대로 움직이겠지 하는 마음. 정직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사람을 도구로 이용하려는 마음이요. 내가 하나님처럼 굴려고 하는 교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교만과 사랑의 부족이 가롯유다로 하여금 예수님을 팔게 만들었던 것 아닐까요? 가롯유다의 걸음은 어찌보면 그저 작은 걸음이었을지 모르지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커다란 배의 작은 키가 커다란 배를 움직이는 것처럼. 가롯유다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것, 그분을 믿을것 그리고 다른 사람을 섬길것.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아닐까요?

@zibanitu83
가롯 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장면은 영화나 뮤지컬 등의 공연, 심지어 글이나 대화 속에서 일반적인 “배신”의 비유로 사용될 때마다 유독 드라마틱하게 표현되는 데에 비해, 성경말씀에서 대하니 오히려 가롯 유다의 모습에서 주님에게 등돌리는 다른 여러 인물들과 하나님을 망각하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모습이 보입니다. 히브리서 6장에서 언급되는 “그리스도를 다시 못박는 사람”이 유별나게 악독한 특정인이 아닌 나약한 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보게 되네요. 인정받고 신뢰받는 자리에 있게 될수록 더욱 낮아지는 내가 되길 원합니다. 이름도 기록되지 않았지만 유월절 객실을 성실하게 준비한 두 제자 같이 묵묵히 신실한 신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danielgo76
가롯유다의 독백 : "당신이 두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나를 위한 당신과 당신을 위한 당신.."
우리 크리스찬에겐 이런 고백이 있으면 안되겠지요. 하지만 우리 내면 깊은 곳엔 이런 울림으로 시험들고 고통한다고 봅니다. 우리 맘엔 유다의 모습이 항상 있지만 말씀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묵상합니다^^

@gracelim7
겉으로 보기에는 유다가 악역을 맡았고 동정의 여지가 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똑똑한 제자의 생각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가르친 것들을 온전히 받아 들이지 못하고 그 위에 자신이 만든 우상으로 세운 메시아가 더 컸다고 생각합니다.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진짜 메시아를 팔아넘긴 것이지요.  하지만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돌아가지 않자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한 것은 그 때야 비로소 진정한 주님의 뜻을 깨닫고 자신의 잘못이 너무나 무거워 그런 안타까운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생각대로 만든 하나님이라는 우상을 허물고 오직 성경 말씀에 비추어 진정한 주님의 의를 구하는 하루 되기를 소망합니다.

@canon7
예수님은 그 끝을 알고 계셨습니다. 가끔 나는 이런 생각을 해 보게 됩니다. 내가 그 끝을 알면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아마 나는 그 끝이 좋은 상태면 어차피 나는 뭘해도 되 하면서 편하게 살았을 거고 그 끝이 안좋은 상태이면 난 뭘해도 안되니깐 하고 막살았을 것 같다라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끝을 알고도 그분의 십자가의 길을 걸어 셨습니다. 비아돌로사는 십자가를 지고 가신 그길이 아니라 그의 생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자신의 끝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한 그 시점부터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항상 좁은 문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고 그 길을 가셨던 예수님을 묵상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삶의 가운데 언제나 어린양 처럼 순종하며 가신 것을 생각하며 이번달 그 예수님의 걸음을 생각하고 묵상하고 동행하고자 합니다. 가롯유다와 관련되서 이 복음서에 있는 다른 구절들을 묵상하다 보면 나의 모습에 비춰 보게 됩니다.  언제나 가롯유다는 자신이 옳은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만한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가장 약한 건은 물질에 대한 돈에 대한 욕심이였습니다. 예수님은 그걸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롯유다가 돌이키기를 바라시는 마음 이였지만 또한 그가 감당해야 일들에 대해서 안타까워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만찬이 끝나고 예수님께서 너의 행할일을 하라라고 허락 하셨을 때 사탄이 가롯유다에 마음에 들어 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팝니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나 언약하기 때문에 넘어지고 회복되고 다시 넘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탄이 그의 마음에 들어 간건 가롯유다 뿐만 아니였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의 고난고 십자가에 달리심을 얘기했을 때 베드로가 그의 혈기 있는 성질대로 나의 칼로 그것을 막겠다고 했을 때 예수님이 꾸짓으시며 사탄아 물러가라 하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와 가롯유다의 차이를 보게 됩니다. 베드로는 회개를 통해서 온전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자 하였지만 가롯유다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신이 저지른 실수로 인해서 자괴감에 빠져서 결국은 자살을 하게 됩니다. 나의 삶도 그렇습니다. 언제나 죄를 지고 두려워 하지만 회개와 그 유월절의 어린양의 피로 나의 죄를 덮고 나의 삶가운데서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감당하는 내가 되어 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그 죄를 짓지 않도록 항상 내 자신을 하나님과 친밀하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pullipggot
예수님은 자신의 길을 한번도 의심하지 않고, 묵묵히 가시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길을 그토록 잘 알고 계시면서도 흔들림없이 꿋꿋이 가실 수 있는지 제 모습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합니다. 주님앞에 엎드러 회개할 수 밖에 없는 저를 바라봅니다. 가룟유다와 같이 예수님을 '자기 스스로를 위한 주님' 으로 만들어 놓고 조정하려고 하는 마음이 제게도 있습니다. 제 마음의 왕좌에 주님을 모시겠다고 고백했는데 어느새 이런모습의 저를 발견합니다. 사탄이 저를 이용하지 않도록, 늘 깨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해야겠습니다.

@YoungYeon
누구나 삶에 넘어질때가 있습니다. 가룟 유다도 삶에서 넘어지면서 그 좋은 머리를 악한곳에 쓴거죠. 그러나 그에겐 부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없어서, 결국 스스로 하나님이 주신 목숨을 내버립니다. 그 모든 것을 아시면서 주님은 그도 마지막 만찬에서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전 속이 좁아 안 좋아하는 사람과 밥도 못먹고, 혹시 먹더라도 체하고 토하고 그러는 밴댕이 속알딱지입니다. 주님은 전혀 그런분이 아니시죠. 오늘 나의 삶에서 주님의 능력을 의심하고 그분의 사랑을 의심하는 마음을 몰아냅니다. 세상 불의에 침묵하는 주님이 아니라, 우리가 회개하기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다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주님의 사랑을 다시 기억합니다.

내가 아버지의 재산을 뺏다시피 하여 방탕한 삶을 살다 거지만도 못한 모습으로 아버지 앞에 나아오는 둘째아들의 모습으로 나아오더라도 기쁘게 맞아주시며 사랑으로 안아주시는 주님의 사랑를 감사하는 하루 되길 바랍니다.

@eripu
드디어 예수님의 수난 이야기가 시작되는군요. 그리고 이루어지는 가룟 유다의 배반, 예정되었다고 하더라도 정말로 참혹한 죽음이 예수님을 향하여 예비되어 있었고, 예수님은 그러한 사실이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계셨으면서도 자신의 잔으로 받아드셔야 하셨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자기에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라고 말씀하시고 나서도 끝까지 사랑하려고 노력하시고, 결국 잡히는 그 순간까지도 '친구여'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오늘 말씀이 뒷받침해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유월절 만찬을 하기 위해 객실을 준비하십니다. 그 객실의 준비까지도 예수님께서는 누구에게 어떻게 따라가서 자리를 잡을 것인지까지 아주 세세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치 이러한 일이 일어날것을 이미 알았다는듯이 정확하게 찝어서 말하셨고, 그리고 그렇게 되었습니다(창 1). 그리고 마주한 마지막 유월절 만찬. 그리고 첫 성찬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한 것이었을까요.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