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18일 목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14:22-26(3월 18일)

22.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hanbaek
주님께서 허락하신 만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오늘날 성만찬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고귀하고 값진 경험입니다. 이는 주님이 처음 성찬을 행하신 이후부터 이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주님께서 행하신 같은 의미를 가지고 지켜오는 귀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를 성례라 부르고 있습니다. 카톨릭은 일곱가지 성례가 있지만 개신교는 단 두개의 성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세례식이고 다른 하나가 바로 성찬식입니다. 이렇듯 성찬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늘 기억되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은혜로운 행사입니다.

그런데 성찬이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의 박해를 받는 주요한 근거였다는 사실은 흥미롭습니다. 초대 기독교인들이 로마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명분을 제공한게 몇가지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Holy Kiss 입니다. 신약성경에 거룩한 입맞춤이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실 거룩한 입맞춤은 기독교인들이 동성연예자라는 비난을 가져왔습니다. 이교도의 시각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비밀집회를 하는 동성연예자들의 집단이라고 폄하된 동기가 되었습니다. 이보다 훨씬더 기독교인을 힘겹게 한 예식이 바로 성만찬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당시에 성찬을 행하면서 주님의 몸을 먹으며 주님의 피를 마신다고 말하면서 붉은 포도주를 마셨습니다. 이를 목격한 로마인들이 기독교인들은 어린아이를 죽여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식인의식을 행한다고 말하였고, 실제로 이 소문이 퍼져서 기독교인들은 식인종이기에 픽박하고 십자가에서 죽이는걸 정당화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몸과 피를 마신다는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기독교인들이 성찬의 잘못된 소문으로 죽어갔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초기 기독교인들은 성찬식을 중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오해의 소지가 있으면 중지하거나 폐지할만도 한데 기독인들은 이 예식을 계속 거행했으며 오늘날까지 우리에게 성찬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왜 이토록 성찬을 초기 기독인들은 지키고자 했을까요?
성찬식은 무엇보다도 주님이 직접 행하시고 행하라고 명령하신 주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성찬을 다룬 다룬 성경본문은 너희가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이 행하신 성찬을 따라서 주님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순결함을 핍박의 상황에서도 초대 믿음의 선배들은 지켜냈습니다. 성찬은 주님의 몸을 내가 먹고 주님의 피를 내가 마시고 있음을 상기해 줍니다. 주님의 대속의 몸과 피로 내가 영생을 얻었음을 다시금 확인하는 아름다운 예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의 성찬에 참여할 때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시고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죄사함을 얻었다는 확신을 주십니다. 성찬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의미인 주님이 직접 자신을 나누시는 섬김을 앞선 신앙인들은 지키고 싶어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찬에 참여한다는 사실은 이제 우리 차례임을 가르켜줍니다. 주님이 몸과 피를 나누셨듯이 이제 우리도 우리의 몸과 피를 나눠야 합니다. 구속의 은혜를 나누고 감사와 감격을 나누고 내게 주신 달란트와 물질을 나눠야 합니다. 이렇게 진정한 나눔이 있는 현장에 주님의 성찬은 또 다시 구현되고 우리의 삶의 구체적 상황 속에서 다시금 성찬의 기쁨이 임하심을 믿습니다.

성찬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고 성찬을 받음을 감격하면서 나눔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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