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그는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
@hanbaek
예수께 향유를 부은 여인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
주님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는데 한 여인이 찾아와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습니다. 이 향유는 너무나 귀하고 값진 것으로 300데나리온이나 하였습니다. 1데나리온이 노동자의 하룻 품삵이므로 하루에 5만원을 받는다고 하면 향유의 가격은 천오백만원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은 것입니다. 이는 누가 보아도 낭비적 요소가 강합니다.
게다가 지금은 식사시간이었습니다. 사실 향수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향수는 향기가 많이 나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향수를 쓸 때에는 스프레이로 조금 뿌리거나 한두방울 뭍혀서 사용합니다. 그런 강한 향기가 나는 물건은 병채로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으니 그 냄새가 얼마나 강할까 생각해 봅니다. 식사시간에 그토록 강한 향을 뿌리면 좋은걸 떠나 역겹게 되고 게다가 그 향수를 통채로 뒤집어 쓴 주님은 강한 냄새로 정신을 차리기조차 힘들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이 여인이 오늘 행한 행동은 많은 사람의 비난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왜냐면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렇게 행동하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들이 제시한대로 주님께 통채로 드려서 주님이 그걸 처분해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게 하시든지 아니면 주님께 한두방울 발라드리고 나머지는 평생 꼭 사용하시라고 말씀드리며 전달하는 방법이라 여겨집니다.
그런데 왜 이 여인을 이런 행동을 하였고 주님은 책망은 커녕 여인을 두둔하고 칭찬하였을까 하는 고민을 해봤습니다. 무엇보다도 여인은 감격에찬 모습입니다. 주님께 무언가를 드리고 싶은데 가진것 전부를 그저 쏟아부어 주님께 드리는 모습입니다. 무엇이 더 옳은지 어떻게 하는게 주님이 더 기뻐하실지까지 생각할 여유가 없었습니다. 주님을 뵈었다는 감격에 찬 그녀는 바로 오늘 주님께 내가 가진 가장 소중한걸 드리고자 옥합을 깨뜨렸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의 가장 귀하신 머리에 부었습니다. 그녀가 바라는건 칭찬도 아니고 사람들에게 높임받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향한 감격을 최선을 다해 몸으로 실천했을 뿐입니다.
주님이 보신건 바로 그녀의 마음이었습니다. 그녀가 주님을 향해 느끼는 감격과 주님을 향한 애젋은 사랑을 주님은 아셨기에 그녀의 모든 행동을 감싸주셨고 자신의 장례까지 준비하였다 칭찬했으며 심지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기억하리라 높이셨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건 언제나 주님을 향한 진실한 마음입니다. 주님을 위해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드리면 주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 오늘 주님께 받은 감격을 온전히 주님께 드려 칭찬과 높임 받는 아름다운 삶이 되시길 기원드립니다. ^^
@YoungYeon
여인은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주님이 세상을 떠나실 것을 알았고, 미리 그 향유를 준비한 듯 합니다. 요즘 처럼 명품관 가서 돈주고 그런 향유를 바로 살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리고 때가 얼마 안남은 걸 알고, 시간이 많지 않음을 알고 무례인줄 알면서도 온맘을 다해 주님께 쏟아 놓네요. 주님이 그맘을 아시고 기뻐하시네요!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니.
사람들은 선한 일에 그 돈을 쓰라고 하지만 그들이 선한일을 즐겨해서 그런 말을 한게 아니라, 마음이 인색해서 그런거 같습니다. 귀한것을 귀한 분께 드리는게 당연한데, 아까워하네요. 주님 한분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데, 그분께 드리는거 보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라고 하니까요!.
오늘 나는 소중한 것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graceviky
만약 제가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 귀한걸 깨뜨려 예수님께 부어드릴수 있을까요? 예수님과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기 전에.. 전 제 욕심이 앞서. 그 상황속에서도 머리속으론 계산을 했을것 같아요.. 예수님께서 향유 부은 여자를 귀히 여기시는 것 처럼 저도 예수님께서 귀히 여기는 사람이 되기 원합니다. 나보다 예수님이 먼저되어 진정 주!라고 고백하는 내가 되기 원합니다.
@hayea00
처음 마음은 하나님 마음, 나중 마음은 인간의 마음이라고 어디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타협하지 말고, 소중한것을 주님께 드릴줄 아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canon7
우리집에 나드향으로 된 오일이 있다 정말 향기롭다 그리고 많이도 아니고 한방울만 적셔도 온향기가 집안 구석 구석 퍼진다. 그 향기안에 있으면 정말 내 몸의 모든 불결한 냄새가 감춰지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런 옥합 전체를 부은 걸 보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유대인의 왕이며 메시아임을 사람들이 알기를 원했다 그런데 미련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랍비 또는 선지자 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런데 한여인 만은 그 분이 메시아이시며 유대인의 왕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사해주실 분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힘을 다해서 이제 얼마 있지 않을 예수님을 위해서 경배드리고 그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복음이 퍼질때에 이여인의 행한일도 같이 기억되리라고 말씀하신다. 항상 유대인들은 몰랐다 그분이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실 왕이시며 메시아 시라는 것을 그런데 동방박사와 이 여인은 알았다. 그리고 경배드린다. 예수님이 짐어지고 가실 그 십자가에 대해서 그 죽음에 대해서... 예수님은 유대인의 왕이시며 이땅의 오신 하나님의 본체 이심을 본다. 이 보잘것없는 이방인에게도 아버지의 일에 잔을 옮기지 않고 동참하게 하시고 경배와 찬양을 드릴 수 있게 해 주심에 대해서 감사했다. 그리고 저 여인의 옥합을 보면서 그 중심으로 하나님임을 알고 그 모든것을 털어서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을 드려서 예수님을 충족하게 해 드렸듯이 나도 그 여인처럼 이순간 가장 좋은 나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며 경배해야 한다고 생각 했다. 너의 물질이 있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고 하신 말씀 처럼 내 마음을 온전히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모습으로 기도의 산제물로 드려야 겠다. 이번 한달 예수님과 동행하는 한달 되어야 겠다.
@miyaung
하나님께서 진정으로 저에게 원하는 시는 것을 자꾸 내가 원하는 방법안에서만 찾으려고 했던 내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러워 집니다.
내가 이만큼 했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지..라고 생각한게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다시한번 깨닫고 무엇을 하던 내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건 나의 생각이 아닌 아버지의 방법대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시고, 늘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귀 기울 수 있게되길 기도합니다.
@julie0429
여러번 읽고 설교말씀으로도 들었던 오늘 말씀...
나에게 과연 향유는 어떤 것인지 생각해보고 싶네요. 가족? 친구? 월급?ㅎㅎ
어쩌면 그것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한게 아닌 것 같습니다. 마음을 다해 나에게 소중한 것, 그분을 높일 수 있는 것을 드린다면, 세상 사람 아무도 모른다 해도 주님만은 아실테니까요.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것을 매일 매일 기도하며 준비해 보겠습니다.
@johnwoolim
사랑의 교회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지금의 예배당이 좁아서 더 큰 교회를 건축해야하는 그 상황...
그 상황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닙니다만..
교회가 교회로서의 기능이 아닌 사회문제로 평가되는 현실에서는
그 보다 아이티를 돕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얼마전 아이티에 교회를 세운다는 이야기도 들었던 것 같네요.
하나님은 지금 우리의 이 상황을 어떻게 말씀하고 싶으실까요?
우선은 본문 말씀을 따라 내가 만약 그 때 그 여인이었다면 내게 소중한 그 향유를 부었을까요?
상당히 고민했을 껍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전재산을 팔았지만 욕심이 눈을 가렸던 그 부부처럼..
1/3정도는 다른 병에 담아두고 깨뜨릴까 하는 생각도 했을 것 같습니다. 저 참 치사하죠. ㅠ.ㅠ
하지만 온전히 드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래서 아마 다 드렸을껍니다. 다 드리지 않는다면 안 드리느니만 못하니까요.
다시 현실로 돌아와서 생각합니다.
향유를 깨뜨린 그 여인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죽음을 예비했다고 기록합니다.
오늘 내가 그리고 우리가 예비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좀던 편히 앉아서 예배할 수 있는 예배공간을 예비해야할까요?
천년만년 하나님 나라가 아닌 이 땅에서 예배하기 위해서...
아니면 한 사람이라도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 기도와 정성, 시간을 내어야 할까요?
저는 후자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예배당은 없어도 예배의 마음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죽어가는 영혼은 지금이 아니면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사랑의 교회가 예배당 만든 것을 말하며 그를 기억하리라..
이것보다는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사랑의 교회의 섬김과 선행을 말하며 그를 기억하리라
이것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말씀은 부족한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변변한 재물이 없는 것이 부족하구요.
물질이 아니더라도 시간과 능력을 기꺼이 드려야 하는데...
이것이 생각에 그치고 있다는 것이 하나님 앞에 죄스럽습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그래도 여전히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gracelim7 자신의 의를 두둔하여 어떤 행위를 하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에 합당하다고 생각하며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는 것과 오직 주님의 의를 마음에 두고 행하는 행동에는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어떤 일을 행할 때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분별하며, 다른 사람의 어떤 행동을 보고 그 것이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판단하며 그러한 판단을 함으로 내 안의 어떤 자아가 교만의 고개를 드는 일이 없도록 해야 겠습니다. 내 안의 자아라는 우상을 허물고 마음의 중심을 주님에 맞추어 그 안에서 그 분의 의만를 구하는 삶만 살기를 소망합니다.
@manga0713
이것 아님 안된다는 것이 분명 내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마저도 내려놓기를 원합니다.
@eripu
삼백 데나리온.. 을 내려 놓을 수 있는가? 없는가의 문제입니다. 그 돈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마땅한가, 아니면 그렇게 내가 전혀 생각하지 않는가에 따라 우리의 생각 마저도 달라집니다. 드리고 드려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 주님의 나라를 위해 모두 드리는 것이고, 아니다, 이 정도 드리면 충분하지 않았는가 하고 멈춘다면 우리의 신앙도 멈추게 됩니다. 영원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을 기억하기 위하여 노력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영영히 기록되기 위하여 노력하시겠습니까?
@owlnme
일년치 급여에 해당하는 귀한 것을 쏟아붓는 여인의 마음은 어떠했을 까요? 그는 '힘을 다하여' 주님의 몸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사함을 많이 받아 그 사랑이 많은 연고라고 했고요. 오늘 구절의 바로 뒤를 보면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팔기로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장례준비에 분주한 모습입니다. 여인이 향유를 붓는 것과 가롯유다가 예수님을 파는 모습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모두 한 사건과 연결지어집니다. 두 사람 모두 어쩌면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두 사람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너무나 큰 차이가 납니다.
머리가 좋고 셈이 빨랐던 가롯유다와 향유의 값도 생각않고 들이부을 수 있던 여인의 사랑은 전혀 다른 결과를 보여줍니다. 저는 애니어그램으로 보면 무척 생각이 많은 측 사람입니다. 머릿속으로 늘 재고 움추리고를 반복하는 달팽이 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무조건 들이대고보는 열정을 갖고 싶습니다. 현재도 내가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보면 그 일이 큰 실수 일 때도 있고 내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했을까.. 기특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 늘 후자의 선택을 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주님만 생각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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