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4월 14일 수요일

트윗 매일 큐티 / 창세기 2:18-19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창조에 관하여 약간의 상충되는 부분이 등장하는건 성서학자들이 찾아낸 아주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19절에 보념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의 모든 들짐승을 만드셨지만 2장에서는 손수 흙으로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약간의 차이는 고대에 있었던 신학의 차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이 더욱 오래된 자료이고 창세기 1장은 보다 신학화되어 정리된 후대의 자료입니다. 이러한 상충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창조이야기의 강조점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만드셨다는 고백입니다.
인간이 이 땅에 있기 전의 창조에 관한 이야기를 누가 보고 적었겠으며 그 당시에 무슨 문자가 있었겠습니까? 첫번째 사람 아담으로부터 전해진 이야기가 후대로 오면서 얼마나 많은 변형을 일으켰겠습니까?를 생각해보면 별것도 아닌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그 자체가 우리에게 의미가 있으며 창조세계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담이 생물을 부르르는 것이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름이란 존재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 목사님하고 소리치면 전 늘 저를 부르는줄 알고 뒤를 돌아봅니다. ㅠㅠ 직업병입니다. 목사라는 이름이 이미 저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또한 제 이름이 소시의 태연과 같기에 공연히 태연을 지지하기도 합니다. ㅋ 인디언들은 이름을 존재를 담아서 짓기로 유명합니다. 늑대와의 춤을이란 영화에서 주인공의 이름이 늑대와의 춤을 인것은 그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름에는 존재가 담겨져있기에 우리의 이름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묵상해보면 우리가 불리는 이름의 의미가 온전한지 나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지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믿음의 삶이 되시길 기원합니다.

이름을 짓는다는건 부모의 몫입니다. 아이가 태어날 때 부모는 이름을 지을 권리가 있습니다. 제 큰 아들의 이름은 임신 3개월에 이미 지었습니다. 그런 권세를 하나님은 아담에게 주었습니다. 아담이 부르는게 동물들과 새들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이름은 또 하나의 창조이자 존재로 하여금 의미있게 하는 힘입니다. 이러한 자격을 아담은 부여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대자연의 어버이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자연의 아버지요 어머니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자연을 대해야 하고 어떻게 가꾸어야 할지 답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짓고 부를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를 부모로 삼으셨기에 오늘 우리는 그 역활을 충실히 감당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 복으로 충만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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