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31일 일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5:10-20 (1월 31일)

10. 자기를 그 지방에서 내보내지 마시기를 간구하더니 11. 마침 거기 돼지의 큰 떼가 산 곁에서 먹고 있는지라 12. 이에 간구하여 이르되 우리를 돼지에게로 보내어 들어가게 하소서 하니 13. 허락하신대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에게로 들어가매 거의 이천 마리 되는 떼가 바다를 향하여 비탈로 내리달아 바다에서 몰사하거늘 14. 치던 자들이 도망하여 읍내와 여러 마을에 말하니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보러 와서 15. 예수께 이르러 그 귀신 들렸던 자 곧 군대 귀신 지폈던 자가 옷을 입고 정신이 온전하여 앉은 것을 보고 두려워하더라 16. 이에 귀신 들렸던 자가 당한 것과 돼지의 일을 본 자들이 그들에게 알리매 17. 그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더라 18.예수께서 배에 오르실 때에 귀신 들렸던 사람이 함께 있기를 간구하였으나 19.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집으로 돌아가 주께서 네게 어떻게 큰 일을 행하사 너를 불쌍히 여기신 것을 네 가족에게 알리라 하시니 20. 그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행하셨는지를 데가볼리에 전파하니 모든 사람이 놀랍게 여기더라

@hanbaek

어제의 묵상이 이어집니다.

예수께서는 모두에게 버림받은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을 주목하시고 그를 치유하시기로 결심하십니다. 문제는 귀신이 군대로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군대 귀신을 나가라고 하자 군대귀신들은 돼지에게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께서 이를 허락하셨고 군대귀신은 이천 마리쯤 되는 돼지들에게 들어갔고 귀신이 들어간 돼지들은 비탈로 달려가 바다로 떨어져 몰사하였습니다.

 

주님은 버림받은 한 사람의 온전한 삶과 돼지 이천마리를 바꾸셨습니다. 이는 주님 편에서 보면 당연히 해야할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에게는 아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의 재산인 돼지 이천마리가 귀신들려 자신들의 삶에 도움이 안되는 사람보다 훨씬 중요하였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크게 마음이 상합니다. 사실 돼지 한마리에 25만원이라고 하면 이천마리면 5억에 해당하는 가격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 5억을 들여서 이미 자신들과 관계없는 미친 사람을 구하는 일에 투자하라고 하면 싫어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주님께서 군대 귀신들린 사람을 치유하셨음을 알면서도 마을에서 떠나기기를 간구합니다. 주님의 능력을 보니 함부로 대하면 벌을 받을 것 같고 그렇다고 계속 같이 있다가는 더 많은 자신들의 재산을 잃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그들이 채택한 가장 나은 생각입니다. 본문은 주님을 곁에서 보고 주님의 능력을 경험했지만 자신들이 가진걸 혹시나 잃을까 하는 걱정으로 인해 마음으로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불행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왔음을 고백하지만, 이미 내것이 된걸 우리는 절대 포기하려들지 않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내게 주신 모든 주님의 선물은 주님이 필요하여 우리에게 맡겨주신 물건일 뿐이지만, 우리는 때로 우리의 소유에 문제가 생기려고하면 주님의 기적으로 보고도 눈과 귀를 막을 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로 하여금 어리석은 마을 사람들처럼 되지 말라고 하시는 교훈입니다.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은 때론 우리와 우리의 소유를 필요로 하시기도 합니다. 나를 내어 드리는 믿음의 고백이 있다면, 우리의 것을 주님의 영광을 위해 드릴 수 있는 믿음도 있어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나의 것을 요구하실 때, 주여 여기 있사오니 나와 내게 맡기신 것을 사용하소서! 라고 고백하는 신앙으로 자라고 싶습니다. ^^


@eripu        

오늘 묵상의 두가지 포인트가 있습니다. 첫째는 '군대'가 이천마리 돼지에게 들어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허가하셨다는 것, 그리고 둘째는 드디어(?) 예수님께서 큰 일을 행하신 것을 가족에게 말하도록, 즉 전파하도록 허락하신 것입니다.

정말 예수님이 큰 돼지들의 떼를 몰살시켰을 때 마을 사람들의 두려움에 대해서는 목사님이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과연 예수님이 그 마을 사람들의 돼지떼를 없애버리기 위해, 그래서 그 사람들을 멸망시키기 위해 그런 짓을 꾸민 것이었겠느냐는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그들의 반응을 보고 싶으셨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과연 이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저주해서 그 드린 것에 대한 대가를 받지 못할 것인지. 우리에게 오늘 무언가를 가져가기 원하신다고 하여도, 그 것 때문에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그럼에도 감사한다면 우리는 그 만족함으로 인한 감사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귀신 들렸던 사람이 무엇보다 먼저 집으로 돌아가게 하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파괴된 가족을 다시 재건하고자 하시는 것을 예수님께서는 원하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을 아무리 따르고자 하여도, 가정이 분열되어 있다면, 결국 가정끼리의 싸움으로 인해 하나님이 아닌 사단만이 기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가정은 어떤 상태인지 생각해 봅시다.


@hayea00    

오늘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사악한 귀신들도 돼지에게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했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께 묻고 간구하고 뜻을 구하는 제가 되고 싶습니다.


@xma1225    

돼지들은 무슨 죄일까...결국 인간들이 죄를 지어서 세상에 죄가 들어와서 모든 피조물이 다죽게 된걸..우리대신 죽게해서 너무 미안하다..동물들아...천국에선 사이좋게 지내자...천국가면 채식만 할께..지금은 솔직히 고기 안먹고는 못살것다....너무 맛있어...거기가면 사자들도 풀만 먹고 산다니...항상 니들한텐 미안하다...흐흐흑.. 오늘의 묵상...동물들을 사랑하자!


@victoria_seung      

예수님이 너무나도 거룩하시기에 예수님 앞에만 있어도 두렵고 떨리기에 귀신들은 돼지 떼에게라도 보내달라고 간청하는 더러운 귀신들. 귀신을 쫓아 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쫓아내는 사람들....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하지만 오늘 내게 준 레마의 말씀은 귀신 들렸던 사람이 치유되고 예수님을 좇아가길 원했으나 예수님께서는 허락지 않으셨다. 가서 주위 사람들, 가까운 사람들 즉, 가족에게 알리라고 하셨다.복음을 전하라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전파하시라고 하셨다. 오늘 낮 설교예배때에도 지금 묵상하는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내게 동일하게 말씀하신다. 복음전하길 원하신다. 먼곳만, 열방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열방 가운데 나아갈 것을 바라보면서 먼저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다. 한국 이땅에서 부터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 주위 사람들 부터 믿지 않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점차점차 하나님나라의 확장을 펼쳐나아가는 것이다.  , 주님... 주께서 내게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용기와 지혜의 입술을 주세요...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딸이 되고 싶습니다 .

@hayate_Korea        귀신들림을 고침받은 사람이 주님과 함께 있고자 하나, 주님께서는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주님이 하신 일을 전파하라는 사명을 받습니다. 저도 주님과 같이 있고 싶지만 주님은 세상속으로 나가서 주님을 전파하라고 하십니다. 한사람이라도 더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노력해야하는데 저는 아직도 주님과 함께만 있고싶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 죄는 다 짓고서도 말이죠.. ㅠㅠ 주님께만 붙어있고 싶어하는 사람이 아닌, 세상에서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기도해야겠습니다.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5:1-9 (1월 30일)

1. 예수께서 바다 건너편 거라사인의 지방에 이르러 2. 배에서 나오시매 곧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예수를 만나니라 3. 그 사람은 무덤 사이에 거처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를 쇠사슬로도 맬 수 없게 되었으니 4. 이는 여러 번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쇠사슬을 끊고 고랑을 깨뜨렸음이러라 그리하여 아무도 그를 제어할 힘이 없는지라 5.밤낮 무덤 사이에서나 산에서나 늘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해치고 있었더라 6.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절하며 7. 큰 소리로 부르짖어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원하건대 하나님 앞에 맹세하고 나를 괴롭히지 마옵소서 하니 8. 이는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이르시기를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셨음이라 9. 이에 물으시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이르되 내 이름은 군대니 우리가 많음이니이다 하고

@hanbaek

오늘의 본문 단락은 20절이나 되는 긴 이야기어서 두개로 쪼개어 묵상하고자 합니다.

군대 귀신이 들린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냥 귀신이 들린 소년도 귀신의 힘의 의해 불에도 물에도 던져지는데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의 삶은 얼마나 고달플지는 가히 상상히 됩니다. 힘은 얼마나 쎈지 쇠사슬도 끊고 고랑도 깨뜨렸습니다.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들의 힘으로도 도저히 제어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거의 벗은 몸으로 무덤이나 산에서 소리 지르며 살았습니다. 심지어는 돌로 자기 몸을 자해하기도 하는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우리 어린시절에 산에 가면 간을 빼먹는 문둥병 환자나 미친 사람이 있다고 해서 혼자 산에서 놀기를 무척 무서워했습니다. 눈이 오면 산에서 비니루를 타고 놀 때에도 친구들과 떼를 지어 다니곤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산에서 만나는 가장 무서운 동물은 다름 아닌 이상한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에 등장한 사람은 이런 이상한 사람의 대표적인 명사입니다. 이 사람은 이미 마을 사람들에게는 공포의 존재이며,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이 사람을 치료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고 단지 더 이상 피해만 입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되는 사람입니다. 사실 군대 귀신 들린 사람은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공공의 적이요, 제발 이 마을에서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은 마을의 공공의 적이 아닌 마을의 천사입니다. 군대가 나와서 온 마을 주민들에게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더욱 끔찍한 일입니다. 이 사람 때문에 다른 마을 주민들은 평안한겁니다. 어쩌면 이 사람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의 고통을 홀로 지고 있는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마을 사람들의 눈에는 이 사람은 보기 싫고 자신들에게 피해만 입히는 적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오늘 그 사람과 주님이 만났습니다. 귀신들은 즉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아보고 자신들을 내어 좇지 못하도록 하소연합니다. 사실 한 사람의 몸에 군대가 들어가 있는데 이 군대의 입장에서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인식이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나가서 사고를 치느니 차라리 이곳에 머룰겠으니 가만히 두라는 뜻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미 귀신들을 명하여 나오라고 하십니다. 마을 사람에게 버림받았고 모두가 싫어하는 귀신 들린 단 한사람의 영혼과 몸을 주님은 귀하게 여기십니다. 군대 귀신보다도 한 사람의 온전한 삶을 주님은 원하십니다. 한 생명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신다는 주님의 말씀을 주님은 온 몸으로 실천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마음을 우리는 영적인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모두에게 미운털이 박히고 세상 모두가 버린 사람이어도 주님은 그를 귀히 여기십니다. 오늘 주님의 눈은 마을 사람들이 아닌 버림받고 상처입은 귀신들린 그 사람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마음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고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낮은 곳을 향하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주변에 군대귀신이 들려 삶이 괴롭고 힘든 하나님의 사람을 향하여 우리의 마음을 주고 사랑을 나누는 주님의 마음을 우리도 가지고 싶습니다.


@hayea00    

오늘 말씀에서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시는 예수님을 보게됩니다.

더러운 귀신의 수는 많았지만, 예수님은 말씀 하나로 귀신들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귀신은 '하나님의 아들' 이신 예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사악한 귀신들이 우리를 괴롭힐 지라도, 귀신들에게 억눌리지 말고, 당당히 물리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야 될것입니다.


@xma1225    

귀신얘기군요.위에 본문정도 많은 규모의 ...그리고 강한 영들이 다수로 있는 경우.  특이한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눈으로도 볼수 있게..그리고 사실.. 그런 많은 강한영들과의 싸움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영들은 인간보다 많은 사실을 압니다. 수준을 안다는거죠. 이런 저런 귀신을 봤는데 내쫓을때 뺨맞은 적도 있죠...비웃더라고요 넌머냐 ㅋㅋㅋ ...그때 기억이 참...참담하게 남아있군요...그때 참 그닥 기도도 안하고 간터라..이글을 적는 이유는 귀신이란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고 그냥 가서 예수의 이름으로 나가라! 한다고 모든 악한영이 다 울부짖으며 나간다는게 아니라는 슬픈 사실...윗본문정도의 영이라면...글쎄요...참 힘들듯해요..산에 무덤이 있는 곳에서 양손에 돌을든 벗은 남자를 만나다니..꽤나 무서울듯합니다..막상 그런 상황이 닥치면 무서워서 도망갈꺼 같기도 해요 ㅋㅋ 사실우리에게 그런일을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 믿는 자들도 충분히 타락하게 하고 두려움에 빠지게할수 있고 지배할 힘을 그들은 가지고 있고 매우 전략적이며 똑똑합니다 . 하나님의 도움없이는 그들의 실체를 보는것마저도 영혼이 얼어붙어버리는 그런 느낌입니다. 요새 그런 생각을 해봐요. 왜 저때는 저런 사람들이 참많고 예전에 배우지 못하고 못살때...실지로 선교로 나가 계신분들 보면 생활수준이 낮은 곳에선 저런일들이 더 빈번한거 같더군요. 왜 그럴까..?  이영들은 지역마다 효과적인 공략방법을 계산해두고 있고 이땅에선 자신들의 존재를 크게 들어내지 않고 사람들을 쉽게 타락시키고 죽음으로 몰수 있으니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결국 그들의 목적은 한사람이라도 더 타락하게 하여 같이 죽자는 것이고 교회의 의무는 한사람이라도 더건져서 천국같이 가자는거죠..교회 역시 하나의 군대입니다. 예수님을 대장으로 하여 이땅에 죄와 사망의 역사를 멸하러 싸웁니다. 우리의 싸움은 해가뜨고 질때까지 심지어 잠이든 그때도 전투중이죠. 이미 승리하셨으나 우리가 머물러있는 이시간에선 아직 끝이 나지 않았으니..때론 대적하라고 하니 귀신들린 분들한테 욕을하고 주먹질하고 싸우는 분들..성경들고 말싸움으로이길려는분들도 봤는데 우리의 무기는 기도와 절제의 생활. 그리고 겸손함과 온유함의 성품입니다. 그러지 않고는 고계급의 악한영을 이길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앞에 겸손하고 온유한 어린아이와같은자들은 귀신들이 바로 알아보며 그들을 견딜수 없게 합니다. 남을 위해 희생할려 하고 기꺼이 고통을 대신 짊어질려는 사람을 그들은 매우 싫어합니다. 먼소리를 시작했는지...두서없이 막적었지만 좋은뜻으로 받아들여주십시오. 전 모든것은 귀신의 역사다! 이런사람아니에요..그냥 한번 읽어 주셨으면 합니다.  이런글이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되기 보다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자나요 ㅋㅋ 그러고보니 글 무자게 썼군요...수련회 가기 싫었지만 갔다온게 도움이 된건가...하긴 글이 길다고 좋은건 아니니..


@eripu        


@hayate_Korea        

저도 예수전도단에 몸담았을 때 귀신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 승리자이시기 때문에 두려워하지는 않았는데 귀신의 존재와 귀신이 어떻게 활동하는지에 대해서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귀신은 능력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비교도 안되게 능력이 크신 분이고, 하나님의 아들도 귀신보다는 큰 권능이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귀신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귀신보다 훨씬 큰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그 능력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야겠다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죄, 귀신 등  여러 문제 때문에 뒤로 물러나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나의 vision은 무엇인가? 라고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하니다. 그리고 그 vision을 위해 기도하는 제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YoungYeon  

밤이 되어 겨우 들어왔습니다.

군대귀신 얘기는 참 많은 insight를 줍니다.

오늘 묵상하면서 와 닿는 것은 우리에게 "성령"이 함께 하면 귀신은 우리를 피해갑니다.

성령이 우리를 사로 잡으면 우리의 힘보다 하나님이 보내신 성령님의 은혜와 지혜로 무엇을 할지 알려주십니다. 사람들이 귀신과 악령은 참 쉽게 믿는데 성령님은 잘 안믿으려 하는거 같아 안타깝습니다만,  귀신은 고백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앞에 맹세하고 고백합니다.

요즘 세상은 너무나 많은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귀신들린게 다른게 아닙니다. 뭔가에 마음을 사로잡혀 거기서 자력으로 빠져나오지 못하는거죠. 일하라고 낮을 주셨고 밤에 쉬도록 하신게 하나님이신데 어떤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한가지 즐거움에 빠져서 방탕한 삶을 살때도 있습니다. 뭔기에 중독되는 것 한가지도 아니고 여러가지에 동시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죠.

군대귀신이 무덤가에 산 이유는 그곳이 악령들이 많이 떠다니는 곳이라 자기 친구들이 많은 곳이였던 것입니다. 마음 맞는 친구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걸 누구나 좋아하듯 악령들도 그렇게 한 것이죠. 예수님이 그 군대귀신들린 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귀신은 더럽습니다. 귀신들린 사람은 더럽습니다.  그 삶의한 부분에더러움이 있습니다. 왜냐면 더러운 것을 싫어하는 것은 성령이나 더러운 것을 좋아하는것은 악령입니다. 저도 주위에 더러운 것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항상 거룩하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도록 더 기도에 힘쓰겠습니다.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4:35-41 (1월 29일)

35.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시니 36. 그들이 무리를 떠나 예수를 배에 계신 그대로 모시고 가매 다른 배들도 함께 하더니 37.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쳐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38.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 39.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40.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하시니 41. 그들이 심히 두려워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였더라

@hanbaek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셔서 배를 타고 항해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폭풍을 만났습니다. 길을 가자고 하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인도하셔서 주님과 함께 길을 가다가 제자들이 무서운 풍랑에 부딪혔습니다. 이는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주님이 동행하시고 아니 주님이 이끄시는데도 풍랑이 엄습한 건 참으로 이해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주님과 함께 걸어가도 풍랑은 우리의 삶 속에 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주님의 뜻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다고 해도 풍랑이 찾아옵니다. 이게 우리의 인생입니다. 아무리 신앙생활을 잘하고 주님께 칭찬받는 하나님의 사람도 인생은 풍랑 속을 항해하는 배와 같이 늘 위태롭습니다. 이 사실을 고백할 때 우리는 인생의 고통의 문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풍랑이 일 때에 본문은 커다란 대조를 이루는 두 팀을 소개합니다. 하나는 제자들 그룹으로 불안에 떨며 무척이나 고통스러워 합니다. 풍랑 속에서 숙련된 어부들 조차도 두려움에 온몸을 가누지 못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주님은 주무십니다. 세상에 비오고 바람불고 배에 물이 가득한데 주무시는게 말이 됩니까? 물을 몇바께스 맞으시면서도 계속 주무시는게 정말 기적입니다. 동일한 풍랑이 주님과 제자를 엄습했지만 반응은 정반대입니다. 주님은 주무실만큼 평안하십니다. 사실상 이게 본문의 기적입니다. 풍랑은 늘 우리에게 있는데 풍락 속에서 주무실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주님만 가지시는 힘입니다. 우리는 인생의 풍랑이 오면 다 두려워 떨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평안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눈오는 한라산을 운전한적이 있습니다. 제 친구는 승합차로 저는 승용차로 1100고지를 넘어갔습니다. 그 때 친구차에는 운전 고수이신 모범기사가 한분 타고 계셨습니다. 이분이 차안에서 자기가 눈길에서 죽을 뻔한 이야기를 하였고 그 차는 얼었습니다. 저는 이름처럼 원래 태연한 사람이라 ^^ 아무 문제도 없는 듯 웃으면서 눈덮힌 얼음 산을 넘었습니다. 고개를 넘어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우리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다 웃으면서 내리는데 그 차에 타신 분들은 모두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건넌 죽음의 모습이었습니다. 같은 산을 넘었지만 불안해 하면서 넘은 팀은 너무나 힘겨운 마음이었습니다. 우리네 인생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풍랑을 만나 두려워하면 우리는 참으로 힘겨운 길을 가게 됩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제자들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이 곁에 계시는데 왜 두려워합니까? 주님이 배에 함께 하시는데 설마 그 배가 침몰하겠습니까? 하지만 제자들은 두려움에 떨다가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주님은 불안에 떠는 제자들이 깨우자 일어나셔서 단 한마디로 풍랑을 잠재우십니다. 잔잔하라 고요하라 하시자 세상이 고요해 집니다. 우리가 부산히 떨고 두려워하는 모든 문제를 내가 싸안고 괴로워하면 답이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우리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며 주님은 우리의 모든 고충을 단 한마디로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께서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면 우리의 인생 가운데 엄습하는 모든 풍랑이 일순간에 고요해 지리라 믿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은 제자들에게 왜 두려워하며 떠느냐고 책망하셨습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이 아닙니다. 이는 사탄의 무기이며 우리를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나쁜 일입니다. 오소리가 다람쥐를 사냥하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오소리는 나무에 오르지 못해 다람쥐를 잡지 못합니다. 오소리가 나무에 있는 다람쥐를 만나면 팍 째려봅니다. 다람쥐는 오소리가 자기를 보는 모습에 두려워합니다. 계속 오소리가 다람쥐를 째려보면 다람쥐는 점점 더 떨다가 결국에는 몸이 굳어버려 나무에서 떨여져 오소리의 먹이가 됩니다. 나무에서 편안한 마음을 가지면 절대로 오소리에게 잡힐 일이 없지만 두려움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우리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풍랑은 모두에게 있지만 두려움으로 풍랑을 대하면 마음이 무너저 쓰러지고 맙니다.

 

그래서 주님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두려움은 믿음 없음에서 나옵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는데 왜 두려워합니까? 주님이 곁에서 지켜주실텐데 왜 자기들끼리 두려움에 떨다가 죽음의 공포를 맛봅니까? 이는 주님을 향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지키신다는 확신만 있었으면 그 배에 계신 주님이 우리의 선장이란 마음으로 담대히 이김의 삶을 살았으리라 확신합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능히 이기고 승리하게 하는 힘입니다. 우리의 인생의 풍랑 속에서도 나와 동행하시고 나와 함께하시는 주님을 온 몸으로 부여잡고 당당히 이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네 인생은 주님과 함께 걸어가도 풍랑은 찾아옵니다. 이 풍랑 속에서 우리가 평안할 것인가 두려워할 것인가에 따라 우리는 쉽고 즐겁게 풍랑을 넘기도하고 괴롭고 힘겹게 풍랑과 싸우기도 합니다. 하지만 분명한건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평안하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한 말씀만 하시면 풍랑이 사라짐을 확신하면서 주님과의 교감을 더욱 깊이 갖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모두 이러한 주님의 마음을 기억하며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으로 우리의 인생의 풍랑을 평안히 건너가는 믿음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YoungYeon  

며칠전 설교 말씀이 생각나네요. 인생을 살다가 하나님의 응답이 들리지 않고, 아무리 기도해도 예수님은 침묵하고 계실때가 있다고. 낙심하고 낙담하여 떠나는 자가 있고, 그때 더 나아오는 자가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말 예수님이 침묵하고 계신게 아니라 우리의 믿음이 제대로 서기를 기도로 지켜보고 계시는 거라고 합니다. 기적을 보고 맏음으을 세우는 것도 좋고, 말씀을 듣고 믿음이 자라는 것도 좋으나 아무것도 보지 않고 그냥 믿는 믿음이 필요하고 하나님이 아무 활동도 안하는 것처럼 보일때 오히려 주님이 나의 삶의 구원자임을 고백하는 믿음을 세우도록 기다리고 계신다네요. 힘들었던 시절에 했던 기도들이 결국 하나님이 다 듣고 계셨다는 걸 알고 회개하고 그 사랑에 감동했습니다.

 

조카를 제 자식 마냥 이뻐합니다. 걸음을 걷고 뛰면서 아이가 넘어지면 절대 먼저 달려가 일으켜 세워주지 않습니다. 동네사람들이 정이 없다고 흘겨보아도 계속 안일으켜줍니다. 옆에서 어서 일어나라고 괜찮다고 하고 일어나면 안아줍니다. 저도 잘 넘어지는 편이라 그 고통을 압니다. 그러나 혼자 일어날 수 있는 걸 알기에 지켜봐 줍니다.

 

주님 마음은 어떠실까요. 사람의 몸으로 와서 온갖 고생을 다 하셨으니 나의 고통을 그분이 모르시지 않을 것입니다. 어떤기도는 10년째 응답 못받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쉼없이 지속적으로 믿음으로 더 기도해야겠다고 마음 먹습니다. 예수님이 죽도록 내버려두시지 않음을 믿고, 마음에 평안을 주시는 분이란 걸 아니까요. 오늘 하루도 평안한 마음으로 더 깊이 기도하길 희망합니다.


@jk3647      

청년부 형이 교회에 오게된 이유를 말해준게 생각나는군요, 군에 있을때 선임이 기독교인인데 아무 두려움 없이 믿음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줘 그 모습을 보고 교회를 오게되었다는 훈훈한 이야기


@dearsia      

제자에게 갈 곳을 일러주시는 하나님. 바람을 꾸짖으시고 바다를 잠잠케 하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무서워말라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을 깨우며 하소연하는 제자들. 예수님의 정체에 두려워하는 제자들. 그는 나의 갈곳을 일러주시고 제 스스로 앞길에 대한 믿음 갖기를 원하십니다. 오늘의 길도 인도하실 하나님을 믿으며 오늘 만큼을 살 수 있는 분량의 믿음을 제 안에서 불러일으킬 수 있길 기도합니다.


@tirol70      

제게는 27개월 된 아들이 있는데 이 녀석이 천둥 소리를 무서워합니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엔 집안의 문들을 꼭 닫고 그래도 우는 경우엔 꼭 안아주면서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지요. 물론 아직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서 제대로 이해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전에는 믹서기로 쥬스를 만들어 주는데 믹서 돌아가는 소리에 놀라서 울더군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해줬습니다. "괜찮아, 아빠가 버튼을 누르면 기계가 돌아가서 윙 소리가 나는거야. 이걸 끄면 소리가 멈추잖아. 겁낼 필요 없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더 이상 울지는 않더군요.

 

만약 제가 그렇게 얘기를 하는데도 아들 녀석이 저를 못 믿고 계속 울어제친다면, 제 기분은 어떨까요?

제 기분은 논외로 하고, 그렇게 우는 일이 합당한 일일까요?

우리의 불안은 무지와 믿음 없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믿음으로 두려움을 넘어 평안한 삶을 살고 싶습니다.


@hayea00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들은 폭풍을 만나자,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곁에 계신데도 큰 문제와 시련만이 눈에 들어온거였죠.

우리는 어떤가요?

문제와 시련이 닥쳤을때.. 절망부터 하진 않았는지 다시한번 돌아봅니다.

힘들때 기도하고, 어려울때 기도하고, 눈물날 때 기도하는 제가 되었으면 합니다.


@pullipggot  

저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 중 하나와 같습니다. 어떨땐 두려움을 넘어 신경질적이기 까지 합니다. 38절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면서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십니까?" 라고 하는 구절의 제자가 바로 저의 모습입니다. 주님이 이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며 문제의 해결자 이심을 다시 기억합니다.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말씀하시는 주님의 말씀을 제가 다시 믿음을 굳게하는 계기로 삼아 오늘 하루 종일 묵상하려고 합니다.


@sanayum    

마음속의 근심은 항상 나를 내가 생각하고 움직이고하 하는 방향을 다르게 만든다.

몸이 힘들고 바쁘고 지칠때엔..

   - 마음을 잡고 시간을 쪼개어.. 더 나를 바라보고 힘을 내는데,

   -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때엔, 몸도 마음도 나를 바라보는 것을 더 못하고 있는 것일까?

주님과 함께하고 있다는 눈앞의 사실... 그것만으로도 힘이 불끈 나서 모든 두려움이 스릴로 느껴져야 하는 것인데...

아마도 붙잡은 그 믿음의 줄을 미덥지 못하게 생각하는 모습.

'네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꾸짖으시며, 내 지쳐가는 내 마음에 힘껏 채찍질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느껴본다.

오늘도 힘내자~!

주님 감사합니다~!!!! ^^


@eripu        

예수님은 우리를 항상 지켜보시지만, 아무 때나 함께 움직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잠잠히 지켜보고 계시다가, 우리 삶에 어려움과 풍랑이 찾아오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때에 우리가 부르짖게 하시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나게 된 사건도 예수님이 다 알고 계시고, 쉬시면서 지켜보고 계셨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가 얼마나 부르짖고 있는지, 과연 그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상달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것 같습니다.

:40 제자들에게 바다와 바람을 잠잠케 할 믿음의 분량이 없었을까요? 아니 쓰도록 훈련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건 아니었을까요. 전에도 봤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도 살릴수 있는 능력를 제자들에게 부여하셨습니다.


@xma1225    

아으 어제꺼 안올라갔다...ㅠ 나의 개근이 ... 사실 신앙생활의 많은 문제가 살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같아요 죽음을 항상 내목전에 두고 살려합니다 어떻게 살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죽겠다..세상의 어떤 고통과 굶주림 사망의 권세도 기쁨으로 받을수 있기를...사랑합니다 주님!!


@owlnme    

좀 엉뚱한 적용일지 모르겠습니다. 전에 한 책을 보다가 '엄마의 불안이 아이의 영혼을 잠식한다' 라는 무슨 영화를 패러디한 기사를 본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삶에서 불안때문에 문제가 더 커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흔히 하는 이야기로 어떤 부자에게 저승사자가 찾아와 내일 데리고 가겠다고 해서 부자는 저승사자를 피해 달아나다 한 나무 아래 도착하고 보니 저승사자가 '안올까봐 걱정했다'고 하는 이야기처럼이요.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도 그렇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평안하라'고 말씀하셨고 당신께서 몸소 참 평안이 무엇인지 제자들에게 보여주시고 싶으셨던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의 그 평안을 닮아가기 원합니다.

남편회사가 매각되어 3월부터 새로운 환경에서 일해야 하는데 그 회사도 그리 상황이 좋은건 아니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합니다.

월급을 1년반 넘게 못받은 적도 있고 일년 넘게 취직을 못했던 적도 있고, 3개월6개월마다 직장을 옮긴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길 때 마다 더욱 성장해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계획 해 놓으셨을지 기대하는 마음도 갖게 됩니다.

물론 불안한 마음이 전혀없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늘 가장 선한 것으로 인도하실 것을 믿기때문에 평안함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최소한 평안함을 가지려고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선 또 무엇을 준비하셨을까요? 기대되는 2010년 입니다.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트윗 매일 큐티 / 마가복음 4:33-34 (1월 28일)

(막 4: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막 4: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hanbaek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모든걸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비유로 말씀하시면 각각의 생각대로 해석하기 마련입니다.

거짓말하는 양치기 소년 이야기를 듣고는 대부분은 거짓말은 나쁘다 그러므로 거짓말하지 말아야 한다가 이야기의 중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혹자는 이야기에서 실제로 손해본게 누구냐라고 물을 때에 결국 양치기는 양만 치는 사람이고 그 양은 마을 사람들의 것이었기에 가장 큰 피해자는 마을 사람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교훈은 아무리 세번을 거짓말한 양치기의 말이라도 믿어주고 양을 구하러 갔어야 한다가 됩니다. 충분히 근거있는 해석입니다. 이렇듯 비유의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의 지침이 달라집니다.

 

주님은 늘 비유로 말씀셨기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제각각 자신의 지혜로 말씀을 해석했습니다. 바리새인은 율법적으로 사두개인은 권력자의 입장으로 에세네파는 은둔적 종말존으로 젤롯당원들은 사회변혁의 힘으로 말씀을 이해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주님의 마음에 맞게 해석한 팀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지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해석받은 제자들만 비유의 참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비유의 참 뜻은 비유를 만든 사람이 가장 정확히 알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정확한 해석을 통해서 비유를 알게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친절하고 정확한 해석을 듣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본문은 2천년전 쓰여진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비유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기도 하고 오늘날의 언어로 변화되어 적용되기도 합니다. 오늘날의 언어와 현실에 맞는 해석을 통하여 말씀을 우리의 삶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는 해석이 필요합니다. 이 해석은 오직 주님이 보내신 성령께서 행하실 때 가장 정확하게 우리에게 들어옵니다. 오늘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말씀을 해석해 주시고 깨닫게 하시는 복된 삶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길 기도합니다.


@YoungYeon 

예수님이 말씀하신 비유를 혼자 묵상할때 성령님이 맘속에서 말씀하시면 내 삶에 다가오는 말씀으로 이해되는걸 느낍니다. 요즘처럼 바쁘고 시끄러운 환경에서 솔직히 혼자 조용히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할수 있는 장소를찾는게 쉽진 않습니다만, 우리가 우리만의 기도의 골방을 만들고 거기서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고 기도할때 예수님이 주신 비유의 말씀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내게 꼭 필요한 말씀으로 해석해 주십니다.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듣지 못하나, 내가 말씀을 묵상할때 들으수 있는 음성이 성령님의 음성이고, 그게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임을 믿습니다.

 

이곳에서 큐티를 나누는게 아침의 한 일과가 되어 기쁨니다. 다른분들의 나눔을 보면서 많은 감동과 배우는 것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모두 혼자 있으면서 말씀을 깊이 묵상하게 되길 기도합니다.

 

@graceviky   

한동안 자유의지에 대해서 고민했던적이 있습니다. 대체 왜 자유의지란걸 주셔서 심약한 인간을 혼란에 빠뜨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젠 자유의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것도 자유의지를 주신것과 같은 의미일꺼라 생각합니다.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의적 교육이겠죠? 여러가지 비유를 마음에 새기며 여러 각도로 생각해도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의 본질은 잊지 말아야 겠습니다. (아침에 큐티를 해야 하는 이유를 절실히 깨닫는 요즘입니다. 오후가 되면 자꾸 큐티에 세상 생각이 들어가요. ! 말씀 나누시는 여러분!! 오늘 하루도 힘내세요~)

 

@tirol70      

예수님께서는 말로 우리에게 가르치시되 우리가 그 말 안에 갇히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불교에서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에 대한 이야기가 있지요?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데 사람들은 달은 안 보고 손만 본다는...

예수님께서는 달이 아닌 손을 보려는 우리의 우매함을 비유를 통해 흩어놓으십니다.

이 경우에 비유는 직설보다 더 정확합니다.

형식으로서의 말씀에 집착하기 보다,

그 말씀을 통해 말씀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성령님의 도우심 가운데 정확히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 따라 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npreson   

비유로 말씀하셨던 것은 일종의 타임캡슐이 아닐까란 생각이 듭니다.

 4복음서에서도 보면 '제자들이 그때는 그 뜻을 몰랏더라'란 말이 곳곳에 나오는 것을 보면 때가 되면 자연적으로 깨닫게 하는 장치로 말입니다이것은 지금 저에게도 해당된다는 생각이듭니다. 비유를 묵상할수록 내 상황과 맏는 말씀들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벌떡 일어나 저에게 말을 거시는 것을 가끔 보게 됩니다.

 

말씀을 많이 암송하지 못해 바로바로 적용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군요. 오늘은 한 구절이라도 말씀을 암송하거나 아이폰에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야 겠다는 적용을 해봅니다.

 

@dearsia     

예수께서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로, 이와 같이 많은 비유로 말씀을 전하셨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나, 제자들에게는 따로 모든 것을 설명해 주셨다. / 예수님은  비유로도 잘 알아듣도록 설명하시는 지혜로운 분. 제자들에게는 따로 설명을 더 해주심. 친절하신 예수님. 못알아 듣는다고 호통 안치시고.. 사실 제자들에게 아무리말해도 못알아듣는거 아시면서... 남들 안볼때 제자들만 모아놓고 설명해주시는 배려심 가득한 예수님. 이래서 제자들은 예수님 생전엔 어리버리했지만 예수님의 배려심가득한 사랑을 늦게라도 깨우쳐 나중에 큰 인물이 된것 같습니다. 하나님 말씀 못알아들어 휘휘돌아간 수많았던 길들 생각하면 채찍질 받아 마땅한 것 같은데, 하나님은 저를 기다리셨고 오늘도 기다리시고 호통치지않으셨습니다. 좀 더 잘알아듣길 소망하며- 소망합니다. 쉬이 가지 못한다해서 길이 아닌건 아니겠지요. 예수님의 응원으로 오늘 하루 또 살아갑니다.

 

@lainus90    

3일 연속 출석입니다.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대로'... 얼마나 감사한지요. 둔하고 단순한 제게도 제가 알아 들을 수 있는 수준으로 말씀해 주시는 주님... 센스쟁이십니다. '다만 혼자 계실 때에' 는 무슨 의미인가요? 이 문구가 들어간 이유는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게 없어도 자연스러운 문장이 되는데요..

 

@eripu        

이것도 어제 묵상모임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유대 지역에는 재담꾼? 비슷한 존재들이 있었는데, 이들이 사용하는 주요 레퍼토리가 비유였기 때문에, 소년이신 예수님도 비유로 말하는 것을 자주 들었고, 또한 청중들도 비유로 말하는 것을 잘 들을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자주 비유를 쓰신 것이라고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예수님은 청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천국을 설명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 땅에 성육신화하여 어떻게 전할 것인지, 앞으로 고민하고 생각해야 겠습니다.

 

@ddaiyobi   

비유를 사용하신이유에 대해서는 4 10절에서 12절에 충분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밖에 있는 그들과 예수님 주변에 있는 너희와의 큰차이는 설명을 들을수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 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지식과 율법을 통해서 각각의 처한 입장에서 해석을 했고 따라서 같은 말씀을 들어도 제각각의 해석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 주변에 있던 너희들을 예수님께 해석을 직접듣고 온전한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성령님의 눈을 통해서 말씀을 읽고 묵상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럼 기도를 더 많이 해야 겠군요.

 

@pullipggot 

우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가르치시는 예수님. 저는 아이를 양육하면서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말을 듣지 않으면 화가 날때가 많습니다..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설명해야 하는 걸 알지만 그게 잘 안될때가 많았거든요.. 오늘은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게 잘 설명하는 엄마가 되어야 겠어요.

 

@victoria_seung     

알아 들을 수 있는 방법으로 말씀하시는 지혜로우신 예수님. 나도 예수님의 지혜를 닮고싶습니다.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은 아마도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닐까?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자기 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은 오직 아버지 안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시는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의 지혜와 오직 하나님 말씀하신 것 외에 말씀하지 않으시는 , 나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예수님의 고백처럼 그렇게 예수님을 닮고싶습니다. 예수님 당신의 지혜를, 지혜로운 말씀을 내게도 부어주세요 ..

 

@owlnme    

성경을 많이 읽은 것은 아니지만 성경을 읽다보면 '이런 내용도 있었나?' 하며 깜짝 놀랄때가 있습니다

마치 이 상황을 위해 감추어 놓았던 것 처럼 전에 읽을 때는 별 의미 없이 지나갔던 내용이 정말 필요한 순간에 내 눈앞에 확 다가올때도 있습니다.

, 가끔 이전 묵상내용 적어놓은 것을 보면 '이게 정말 내가 적은 것 맞아?' 할만한 내용이 있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럴때면 성경말씀을 아는 것은 나의 지혜가 아니구나 하고 정말 교만을 버려야 함을 절감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을 통해 저는 현재에도 적용할 수 있음을 감사합니다. 만약 그 시대에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면 우리시대와 너무 다른 상황 탓에 현재에는 맞지 않는 말씀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성경말씀은 현재에도 생명력이 있으니까요.

 

@hayea00    

혹시나, 제자들이 잘못 해석할까봐, 친히 해석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다시한번 느낍니다.

오늘도 주님의 사랑안에 하루를 보낼수 있어서 다시한번 감사합니다.

 

younmotgol@gmail.com    

말씀의 내용은 기도의 능력에 대한 언급인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앞에 기도하지 아니하면 좋은일을 계획했을지라도 이룰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